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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Sep 04. 2023

생각하지 않는 사회

'아.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해야 할 일들과 생각할 것들이 밀려있을 때 문득 머릿속을 채우는 문장이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이 이 복잡한 마음들을 진정시킬 유일한 해답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빠른 판단과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는 시간의 흐름이 더욱 빠르게 느껴진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했던가. 우리의 인생 시간 그래프를 그려보자면 정규 분포 그래프가 아닐까. (문과로서 이런 비유를 쓰다니 새삼 놀랍다.)

평균 수치가 가장 높고, 평균에서 멀어질수록 낮아지는 종 모양의 형태이다. 우리의 인생 시간의 속도는 청년기에 가장 빠르게 느껴진다. 아니, 그보다 지나고 나면 순식간에 삭제되는 듯 느껴진다. 어릴 적에는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이 많았다.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수영장이 떠오른다. 나는 5살 때부터 7년간 수영을 배웠다. 물론 지금은 간신히 물에 떠있는 수준이지만 말이다. 그때는 매일 수영을 했는 데에도, 수영이 싫었다. 수영장 안에는 작은 화장실이 있었다. 하루는 수영장에 들어가기 싫어서 맨 구석 화장실 칸에 숨어있었다. 수영장 내부에 있었던 화장실이라, 차가운 타일 바닥에 닿은 맨발이 움직일 때마다 찰박 찰박 소리가 났다. 수영장 공기는 늘 차가운 락스 냄새로 가득했다. 딱 붙는 어린이 수영복에 눈꼬리가 올라갈 정도로 당겨진 수영모를 쓴 채 두 팔로 몸을 감싼 내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이후 소름 돋게 반복되는 시험들과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학교생활. 어른은 이 지구에서 다른 종족인양 느껴졌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오늘의 끝만을 기다리던 아이가 성인이 되었다. 지금은 그때 놓친 시간들을 가져오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만큼 시간의 느낌은 주관적이다.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는 사람들의 특징은, 생각이 많다는 것이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행동까지 한다면,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몸이 바쁘고 불편해지면 시간을 느낄 새가 없다. 그래서 대다수 혹은 일부의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는 것'을 택한다. 생각은 질문이 만든다. 불편한 질문을 품는 순간, 용기가 필요하다. 고착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혁신을 만든다. 그 크기는 다르더라도 분명 변화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가까이서 보면 매우 불편하게 살아간다. 정해진 답이 없고, 성과의 시간도 보장되지 않는다. 그러니 시간의 흐름을 느낄 여유보다는 용기를 얻는 방법에 집중한다. 


반면,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은 하나씩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내려놓기로 한다. 세상이 정해주는 답들을 적절한 시기에 맞게 선택한다. 자신의 나이 기준으로 3년 뒤에는 무엇을 처리해야 하고, 5년 뒤에는 무엇을 처리해야 마땅한 미션들 말이다. 불편하게 살아가는 것을 암묵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고민들을 절대 무시할 수는 없다. 또한 그것이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을수록 중요한 것을 잊게 된다. 바로 자아다. 자신이 사회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유일무이한 창조물로써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놓치고 있을 수 있다. 불편한 무언가를 마주하면 무의식이 소리친다. '이해하려고 하지 마.' '생각하려고 하지 마, ' 그래야만 몸이 편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버티면 시간이 나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아이였던 시절이 있다. 그 시절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자. 분명 더 느리진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면 여유를 알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현재의 생각과 그때의 생각은 다르고, 현재의 몸과 그때의 몸은 다르다. 따라서 그 시간이 주는 가치의 색은 모두 다르다. 나는 여전히 불편한 생각들을 많이 하고 싶다. 때론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흐를 수 있지만 말이다. 그 시간들을 조금이라도 오래 붙잡아 두고 싶어서 하는 일이 바로 기록이다. 오늘도 기록하며 불안과 불편을 거름 삼아 살아간다. 거름으로 단단해지는 자아가 향하는 곳에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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