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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25. 2024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소문난 칠공주’에서 나문희 여사께서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당시 돌리고 송으로 유행했던 이 노래 덕에 ‘돌리고 돌리고’라는 부분만 친구들이랑 얼마나 따라 불렀는지 모른다. 원곡 역시 2000년 초반에 대히트를 쳤기에 이 노래는 사실상 나에게 동요와 같았다.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하라는 그 메시지는 후회를 밥 먹듯 하고 사는 인간이라면 시대 장소 불문하고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후회라는 것을 괜히 하게 되는 것이 아니기에 이 노래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쉽지 않은 과정이 동반되었다. 한 방송에서 박명수가 그러더라 늦었다 생각이 들면 이미 늦은 것이라고. ‘고집’, ‘체면’, ‘자존심’. 이 비슷한 세 단어가 불러온 정말 늦어버린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누군가에겐 정말 쉬운 말과 단어가 나에겐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어려울 때가 있다. 그 말을 떠올리면 내 마음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심장 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오므린 입은 벌어지지 못한 채 목젖은 펌프질을 해대며 꿀렁거리기 시작한다. 두 눈을 질끈 감아보지만 내 마음과 달리 정말 그 말은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걸 두고 못한다고 해야 하나 안 한다고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안 한다고 하기엔 못해내는 스스로를 포장하는 것 같고, 못한다고 하기엔 내 의지를 부정하는 것만 같아 양심이 찔린다. 그러나, 이후에 모든 것은 내 의지였음을 깨닫는 순간이 오게 되었고 '하지 않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할머니는 내게 슈퍼맨이었다. 그 누구보다 나를 지켜주셨으며 항상 나와 함께 했다. 함께 가던 약수터가 나에겐 놀이터였고 새벽같이 깨워서 가던 목욕탕은 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장소였다. 밤잠 못 이루시고 접으시던 학과 뜨시던 가방은 내게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할머니와 사춘기가 되며 종종 싸웠고,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그녀는 쇠약졌으며 나는 점점 머리가 커져갔다. 그런 할머니가 싫어 못 본척하고 무시했다. 매일 같이 내게 호통을 치시던 할머니가, 내가 "들어가서 그냥 자라고!"라고 지른 소리 한 마디에 여린 소녀가 되어 "에구머니나"하고 방 안으로 도망치시던 모습을 보았을 때마저도 내 죄책감을 모른 채 하려 더 무시했다.

언젠가 그 여린 소녀에게 좋은 것들을 드릴 수 있는 때가 오면 그땐 잘해야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못난 손주는 할머니께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고,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는 말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머니를 떠나보내기 전, 중환자실 앞에서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그리고 할머니를 떠나보낸 지 1년이 되던 날 내가 하지 못했던, 아니하지 않았던 그 말들이 내 마음에 가득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할머니가 꿈에 나오신다면 나는 그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아닌 음절들이 모인 그 말 하나를 하늘을 날아 저 유럽을 가는 내가 어렵사리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결국 그때 하지 못했던 말들이 마음에 남아 지금의 나를 움직이며 살고 있다. 과거에 묶여 후회만 하지도 않게, 그러나 미래의 나에 대한 불안으로 지금 해야 할 것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간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은 현재에 집중하도록 나를 다시 이 자리로 끌고 왔다. 불쌍한 인생을 위한, 신이 인간을 지키기 위한 선물이 이런 깨달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 표현하지 못하면 땅을 치고 후회한다는 명백한 진리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해졌다. 그러나 그만큼 내 사랑 앞에서는 누구보다 강해졌다. 오늘도 나는 아버지, 어머니와 전화를 하며 고백한다. “사랑해요. 늘 키워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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