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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인혁 May 31. 2021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상상과 공상사이, 우리는 상상을 통해 성장한다.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되다.”

“The secret life of Wilter mitty”     

      

※ 위 글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평입니다영화를 추가적으로 즐기기 위한 감상일 뿐 절대적인 견해가 아님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또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어릴적, 나는 영웅이 되고싶었다.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고, 모두가 우러러보고 사랑해주는 그런 사람이 되는 상상. 나이가 들면서 막연한 상상들은 구체적으로 변했다. 특정 영화의 주인공이 되거나, 내가 좋아하는 이성이 나에게 단기간에 빠져드는 등,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삶을 원하고 꿈꿨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소비하는 수많은 문화 콘텐츠들이 어쩌면 나의 상상력을 자극 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조금은 찌질하고, 바보같아 보이는 상상을 극중 인물인 윌터 역시 보여준다.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상상을 하는 윌터 (일반인 보다 더 심한 몽상가다). 극 중 윌터는 우리가 흔히 봤던 영화들 속의 주인공으로 변신한다. ‘미션 임파서블’, ‘판타스틱 4, 실버서퍼의 위협’,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등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그리고 장면만 봐도 이해할 그런 영화들을 통해서 윌터는 사고하고, 상상한다. 이 속에서의 상상은 현재의 삶 속에서 경험하는 것들 그리고 본인이 바라는 것들의 간극을 극복하는 행위로써 느껴진다. 극 중 윌터의 상상은 상당히 멍청하고, 어수룩하다. 상상을 하는 동안에는  주변 시선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주변인들의 놀림을 받기 일쑤다. 극중 초반부의 상상은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는 그저 ‘몽상’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어쩌면  소시민적으로 그려진 윌터와 비교되도록 사회적으로 현실 속에서 더 잘나 보이는 (외모든, 직업이든) 인물들을 통해서 윌터의 상상은 더 평가 절하가 되버린다. 윌터 스스로도 상상을 현실의 도피행각 쯤으로 여겼던 월터는 잃어버린 마지막호의 표지 사진을 찾아 어쩌면 직장 마지막 미션이 될 수도 있는 모험을 떠나게  된다. 


감독은 여기서 관중으로 하여금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개체를 던지며 '몽상'으로 치부되던 '상상'의 위상을 변화시킨다. 잃어버린 마지막호의 표지 사진인 ‘25번째 사진’. 영화를 진행하는 포인트이자, 이야기를 끌어가는 중요한 소재. 나아가 관객들로 하여금 ‘상상’을 하게 하는 이 매개체는 좀처럼 그 정체를 가늠할 수 없다. ‘인생의 정수’라는 말 한마디를 통해 관객은 상상을 통한 영화에 몰입을 시작한다. 25번째 사진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윌터가 상상을 하는 행동은 점차 줄어든다. 행위의 단절을 통해서 어떤 것이 현실이고 어떤 것이 상상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시점이 다가오면서 덩달아 영화 주인공과 관객 간의 '동일화(identification)'역시 심화된다. 


윌터가 느끼는 아이슬란드의 풍경, 아프가니스탄의 석양. 아이들의 모습 등 형언할 수 없는 장면들이 점점 본인이 경험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앞서 답답했던 윌터의 모습 역시 직장 혹은 학교 등 사회 속에서 겪는 개인의 고통으로 이해하게 된다. 윌터가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를 응원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주저하지 않고 도전을 행하는 윌터를 통해 몰입하게 된다. 어릴적 즐겼던 스케이트 보드가 시간을 맞춰주는 마법의 양탄자로, 석양 밑에서 함께 한 아프간니스탄의 사람들 간의 축구도,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속에서 특별을 일상으로, 일상을 특별함으로 만들어갔다. 인생의 정수라는 말장난 안에 들어있는  ‘몰입’ 그리고 ‘상상’. 현실과 특별함의 모호한 경계를 만들어 낸 채로, 스스로만의 25번째 사진을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하도록 관객을 이끈 후 영화는 마무리된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겁이 많다. 영웅이 되고 싶었던 어린아이 역시, 위기가 무서웠고, 주변의 시선이 두려웠다. 호기심 가득한 미지의 길을 앞에 두고도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기라도 할까 봐, 무서운 괴물이 나타나기라도 할까 봐, 스스로 상상으로 만든 공포에 압도되어, 출발도 하기 전에 너무 많은 것을 걱정하다 제풀에 지쳐 방구석 완벽한 '상상의 세계'가 아닌 '몽상의 세계'로 도피해 버린다. 인생은 무료하고 따분하고 재미없다고 한탄하며, 신기루 같은 행복만을 기다리지만, 스스로 일어나 한발 내 딛기 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을 영화는 넌지시 보여준다. 과거의 행복한 기억들이 현실의 해결책이 되어주기도 하고,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윌터의 행동을 통해서, 삶을 살아가는 동안의 ‘나’라는 존재의 발걸음 자체가 귀중함을 전달하고 싶은 느낌이였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그의 저서 ‘순수 이성 비판‘에서 우리는 선천적인 인식 틀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본다고 말했다. 인식의 틀에서, 경험과 인식의 간극을 ’ 상상‘을 통해 극복한다는 주장은 상상이 가진 힘을 현실에 적용할 수 있음을 말한다. 단조로운 일상에 대한 하염없는 푸념. 인생을 살면서 나의 주어진 하루에 매일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을까? 지루하고 답답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상상은 어쩌면 인간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탈’이자 단조로운 일상에 대한 ‘반작용’ 일 수 있다. 하지만 역설스럽게도 이러한 '반작용’이라는 것은 인간의 발전을 도왔고, 인간의 발전은 상상으로부터 나온다. 우리가 소비하는 문화 콘텐츠인 영화 역시 이러한 상상의 산물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말이라도, 아니면 글이라도 좋다. 당신의 상상을 표현한다는 행위 만으로도 당신이 상상은 현실이 되어가는 지름길이지 않을까 싶다. 


상상하는 당신. 우리와 닮은 윌터의 모습이, 주변인에게 놀림을 받는 그저 그런 ‘몽상’에 머물 것인지, 그것을 넘어 기대했던 것들을 이루어 내는 ‘상상’이자 ‘현실’을 만들 것인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고 현실이 되지 않은 꿈을 꾸고 있는 당신에게 달려있음을 영화는 말한다. 어느덧 일상을 즐기기 시작한 윌터의 현실에 필요가 없어진 상상이지만, 인류가 끊임없이 발전한 원동력이 상상임을, 그리고 그 상상이 현실과 닿아있음을 깊이 닿기를 말하는 한 편의 구담 같은 영화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였다. 당신의 삶에 상상의 끝이 없기를.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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