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의 전공, 3명의 지도 교수님, 4년의 세월
2개의 전공, 3명의 지도 교수님, 4년의 세월.
남들보다 길어지는 2, 3, 4라는 숫자를 지켜보며 불안했던 대학원 시절로 돌아가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이제 숫자 세기를 마친 나는 우수논문상과 함께 석사를 졸업했고, 논문을 잘 다듬어 책을 출판하려 준비 중이다.
우연과 노력의 복잡한 작용 끝에는 생각보다 괜찮은 결과와, 생각지 못한 기회가 찾아온다. 아득했던 석사를 지나, 나는 박사 첫 학기가 주는 막막함을 다시금 마주하고 있다. 두려운 순간은 반드시 찾아오지만 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도 당신도 그걸 항상 기억했으면 한다.
그동안 나는 미술비평의 아름다운 수사와 언어 속에서 타인에 대한 글을 써왔다. 여기서는 까마득한 어딘가를 향해 자기만의 길을 가는 모든 사람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내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2개의 전공
미술대학을 졸업한 뒤, 10:1에 가까운 경쟁률을 뚫고 대학원에 들어갔지만, 막상 나는 대학원에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미술 작가의 삶에 보상이 희박하다는 익히 알려진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작가는 보통 '전시'를 통해 자신의 작업물을 타인에게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는다. 하지만 나에게 전시를 준비하고 피드백을 기다리기까지의 시간은 너무 지난했다. 심지어 전시를 한다고 해서 피드백이 반드시 돌아온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학교에는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교수님들이 계셨고, 그분들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그분들에게 받는 피드백은 작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작가의 크리틱이지, 작품을 그 자체로 즐기는 사람의 피드백은 아니었다. 그런 크리틱은 오히려 나를 지치게 했다. 게다가 전시를 열기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 등의 꽤 큰 자본이 필요했다. 어느새 무기력과 외로움을 느끼는 나를 발견했다.
방황하던 중,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불현듯 학교에서 동료 작가를 인터뷰하고 작업에 대해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그 글을 들고 읽어봐 달라고 동료나 교수님들께 찾아가기도 했고, 브런치 등의 온라인 플랫폼에 공유하기도 했다. 글의 가장 큰 장점은 미술이 다양한 자본이 필요한 전시를 통해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는 점과는 달리, 언제 어디서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반응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내가 쓴 글에는 항상 단 한 명이라도 독자가 있었다. 바로 내 글의 주인공인 '작가'였다. 무엇보다 나의 글이 작가와 관람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의미로 다가왔다. 나는 관람자를 만나지 못해 괴로웠던 과거의 나에게 글이라는 징검다리를 놔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그렇게 전시를 보고 글을 쓰는 일을 지속하게 되었다. 뜻밖에도 미술 대학원에서 글쓰기의 적성을 발견한 것이다.
3명의 지도 교수님
학교를 다니던 중 운이 좋게 우리 과에 '예술이론' 전공이 새로 생겼고, 나는 미술 비평을 더 깊게 공부하기 위해 전공을 바꿨다. 이때부터 대학원 생활이 조금 복잡해졌다. 전공을 바꾸면서, 예술이론 전공의 교수님으로 논문지도 교수님을 바꿔야 했다. 두 번째로 지도를 해주셨던 교수님은 예술을 보는 관점에서부터 소통의 방식까지 나와 너무나 다른 분이셨다. 우여곡절 끝에 한 학기 수업을 끝마치고, 교수님께서는 내가 '페미니즘 미술'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그 분야 연구를 하고 계신 다른 교수님과 나를 연결해 주셨다. 그렇게 세 번째 지도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지금은 그 교수님이 계신 곳으로 박사까지 하게 되었다.
4년의 세월
세 번째 지도 교수님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논문에 대한 공부와 연구가 시작되었다. 처음 교수님 연구실에 가서 논문에 대해 상담을 받던 때를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연구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교수님께서는 지도 교수님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 주셨다. 바쁘신 와중에도 몇 시간씩 피드백을 해주셨고, 배움의 배경이 다르고 성장의 시간이 필요했던 나를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셨다. 그럼에도 연구라는 것은 어쨌든 내 몫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교수님의 피드백을 듣고 있으면 논문을 쓰는 게 쉽게 느껴졌지만, 막상 내 연구로 돌아오면 다시 미궁에 빠지기 일쑤였다. 결국 연구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직접 부딪히면서 하나씩 스스로 깨쳐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나는 1년 반을 조형예술 전공 학생으로, 1년을 예술이론 전공 학생으로, 2년을 논문 쓰는 수료생으로 보냈다. 휴학 기간을 빼고도 졸업까지 약 4년의 세월이 걸렸다. 중간에 휴학을 한 기간까지 합치면 졸업까지 총 6년 6개월이 걸린 셈이다.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또 다른 곳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계속 움직이는 내가, 혹시 어디선가 굴러들어 온 돌처럼 여겨질까 봐 항상 마음이 불편했다. 그럼에도 나는 나와의 믿음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석사 논문을 꼭 끝내고 싶었다.
그렇게 안갯속을 걷는 기분으로 논문 주제를 찾으며 이곳저곳 손을 휘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