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우리는 포기하거나 용서하지 않고 ‘복수’한다. 자신의 분노를 동력 삼는 복수는 결코 쉽지 않은 행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순간에 어떤 이유에서, 자신의 에너지를 불사르면서까지 복수를 감행하게 되는 걸까? 이수경의 전시 《먼길 이야기》는 작품 속 화자를 통해 ‘파괴’와 ‘복수’의 내러티브를 들려준다. 그동안 이수경의 작품을 읽는 익숙한 키워드는 다양한 존재 간의 ‘통합’ 혹은 현실의 ‘초월’에 있었다. 이 글은 ‘복수하는 힘’을 중심으로 기존과는 다른 관점에서 이수경의 작품을 읽어보고자 한다.
1. ‘파괴’와 ‘복수’, 서사를 이끌어가는 힘
전시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먼길 이야기》 속 이수경 작품의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영상 작업 <오, 장미여!>는 내레이션을 통해 여러 사건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기서 전시장 한쪽 벽면을 채운 회화 작업 <전생역행그림> 연작은 <오, 장미여!> 영상의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보조적인 이미지로 화면에 등장한다. 작가가 쓰고 책으로 만든 『먼길 이야기』 역시 동화라는 ‘이야기’에 방점이 있다. <오, 장미여!>와 『먼길 이야기』에서 분명하게 반복되는 전개는 ‘파괴’와 ‘복수’다. 지체 높은 남자와 결혼한 여인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속 화자는 여인뿐만 아니라 사슴이 되기도 하고, 군대의 침략을 당하는 부족의 일원이 되기도 한다. 이 중에서도 화자가 해일과 어느 부족의 전사가 되는 이야기의 한 장면을 살펴보자.
이야기의 중반쯤에서 화자의 일가족은 임금에게 오해받아 풍랑이 이는 바다 절벽으로 내던져진다. 이후 화자는 해일이 되어 마을을 쓸어버리고,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은 채로 ‘이제 모든 것은 깨끗해졌어’라고 말한다. 후반부에서 등장하는 또 다른 장면은 화자인 투탕클라가 속한 부족이 스페인 군대에 의해 공격당한 사연을 들려준다. 어느날 스페인 군대는 부족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살해했고 여기에 분노한 투탕클라는 그들을 공격하지만 결국 스페인 군대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다. 훗날 살해된 부족 사람들의 영혼은 바오밥 나무에 깃들고, 나무는 가장 무섭고 거대한 존재가 된다. 동화 『먼길 이야기』 역시 자신이 돌보던 소년을 잡아먹은 늑대에게 복수를 결심한 할머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물론 이야기 속에 용서나 포기의 정서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 혹은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를 ‘파괴’한 대상에 대한 ‘복수’의 전개가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힘으로 반복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전생역행그림_무제, 2014,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x228cm, 전경사진: ⓒ Kim YongKwan
2. ‘나’와 ‘너’의 경계를 넘나드는 화자
여러 단편을 이어 붙이듯이, 이야기 속 화자는 여인이 되었다가 사슴이 되고 해일이 되었다가 용감한 전사가 된다. 이러한 전환은 남성과 여성, 할머니와 소년뿐만 아니라 인간과 동물이라는 종의 경계까지 넘나든다. 이야기 속에서 영혼의 거주지를 계속해서 바꾸는 화자는 하나의 인물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주체로 끝없이 환생한다. 이 이야기들은 결론이라고 하기에는 모호한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일반적인 동화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난다. 하지만 <오, 장미여!>의 이야기는 ‘아무도 이 나무를 잘라내지 못하게 만듭니다’라는 복선으로 마무리되면서 오히려 곧 나무가 잘리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동화 『먼길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한 소년이 길을 가다가… (반복)’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되면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반복됨을 암시한다.
화자의 계속된 환생과 이야기의 끝없는 반복은, ‘이야기’와 ‘나’를 분명하게 구분해줄 ‘끝’을 유예하고, 화자가 ‘나’의 몸에도 머물 수 있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전시를 보는 이들은 이수경이 전하는 이야기 속에 자신을 투영하기도 하고, 그 이야기를 나의 것으로 만들기도 하면서 ‘나’와 ‘이야기’ 사이의 중간 지대에 머문다.
3. 서사를 주도하고, 전복하는 힘의 전달자
우리는 일상에서도 빈번하게 비극을 마주한다. 비극은 우리의 감정을 고양시키고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정의감을 불러일으켜, 보는 이를 한껏 몰입하게 한다. 하지만 이때 비극은 단조로운 일상의 조미료와 다름 없는 자극으로 기능하고, 억압된 감정과 불만을 해소시킴으로써 다시 규범적인 삶에 적응하도록 이끈다. 파괴와 복수가 끝없이 반복되는 이수경의 이야기 역시 비극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이수경이 전하는 이 비극은 무엇이며, 보는 이에게 무엇을 전달하는 것일까? 규범에 적응시키는 비극과 이수경의 비극은 어떻게 다를까? 작가는 어떤 이유에서 무엇보다 이야기에 자신을 투영하고 그것을 내면화하는 관람자에게 냉혹한 동화를 들려주기로 한 것일까?
이수경의 이야기를 다시 살펴보면, 그 안에서 ‘복수’는 단지 타인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오, 장미여!> 속 해일의 죄의식 없는 태도와 ‘모든 것이 깨끗해졌다’라는 발언을 통해, 작품 안에서 복수의 정서가 단순히 부정적 감정이 아닌 적극적인 인과응보이자, 세계의 정화 과정으로 다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우리를 굴복하게 하는 힘/권력에 대해 저항하고, 세계를 정화함으로써 나와 나의 집단을 수호하고자 할 때 ‘복수’한다. 이수경은 반복되는 내러티브를 통해서 ‘복수’하는 전복적인 힘을 전달한다. 이야기의 장면을 담고 있는 페인팅 작업 <전생역행그림> 시리즈는 기록물로서, 수녀로 짐작되는 인체와 왕관, 해태를 닮은 동물이 하나의 형상에 뒤섞인 조각 작품 <달빛 왕관> 시리즈는 파괴의 잔여물로 합체된 존재로서 전복적인 힘을 보존하면서 전시장에 자리하고 있다. 이수경의 전시장에는 매번 주술적 분위기가 감돈다. 억울한 일로 가득한 지상에서 당신이 극복의 서사를 이어나가기를 염원하는 이수경의 마음이 전시장 곳곳에 스며있기 때문일 것이다. 액운을 퇴치하고 행운을 불러온다는 부적의 재료인 경면주사가 <불꽃> 드로잉 시리즈 작업의 주된 재료로 사용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작가는 이 전시에서 우리가 익숙하게 마주하던 규범으로 회귀하는 비극이 아닌, 오히려 규범에 맞설 수 있는 상상력과 용기를 주는 비극을 제시한다. 결과적으로 이수경은 이 전시에서 우리들이 규범에 의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저버리지 않기를, 혹여 고통스러운 일을 겪더라도 그 이후를 그릴 수 있는 상상력을 가지게 되기를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