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나를 말하다
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지독한 가난과 각자의 어깨에 짓눌려있는 짐덩이에 허덕이는 부모님을 보며, 암담하고 답답했던 현실보다 막연한 어린 시절 상상 속의 미래가 너무나 달콤했더랬다.
그 미래 속의 세련되고 열정적인 인생에는 의사라는 직업이 제일 잘 어울렸다. 그대로 굳어진 이상향에 나는 끼어 맞춰지고 싶었다.
그 조형틀이 내 것이 되도록 많이 노력했다. 지금의 나는 너무 형편없지만, 이상적인 그 사람이 된다면 나는 완벽한 사람이 될 거라고, 나 자신에게도 세상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그러면... 나를 둘러싼 이 꿉꿉하고 눅눅한 세상이 탁 트인 바다처럼 빛이 들어오면서 반짝거릴 거라고.
그렇게 순진했다. 언제나 직언을 서슴지 않는 아버지는 뭐 하나만 되면 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냐고 정신 차리라고 했었다. 지금 당장 내 체중 하나 해결 못 하면서 꿈에 부풀어있던 나를 비웃었다-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비만이었다-그 말은.. 맞는 말이 되었다. 수능에 실패하고 대학을 다니면서도 나는 내가 생각했던 이상향의 인물이 아니었다. 세련되지도 쿨하지도 여의사가 어울리는 뇌가 섹시하고 이성적인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꿈에 중독되었다. 꿈꾸지 않으면 삶의 이유가 없었다. 계속 무엇을 해야만 했다. 나의 현실은 변함없이 갑갑했으니까. 주변 상황이 어찌 되든 나는 도전만 했다. 세상 가장 이쁘고 좋은 나이 20대를 달려들기만 했다. 그렇게 꽃 같은 시절을 한없이 좌절하고 참아낸 결과로 나는 30대가 훌쩍 넘어서 의사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버지 말이 맞았다. 현실은 변하지 않았고, 나는 힘든 수련 생활 속에서 환자를 보는 책임감과 가끔 무너질 듯 밀려오는 좌절감에 괴로웠다. 내 탓을 하는 버릇은 언제나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심장을 쑤시는 스트레스가 되었다. 누구나 담담하게 보낼 수 있는 일들에도 나는 스스로 가라앉았다. 타인과 나를 비교했고, 그런 마음가짐들이 더 내 이상향과 멀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내 탓을 했지만, 사실 이기적으로 나를 보호했고, 실질적 마음가짐의 문제를 외부에서 원인을 찾으려 했다. 그러면서 더 조형틀엔 들어갈 수 없어졌다.
이런 나라는 것을 인정하고, 이상향의 조형틀과 진짜 나 사이에 타협점을 찾으며, 심적인 안정을 도모하게 된 계기는 아이가 태어난 뒤였다.
남편을 닮길 바랐던 아이는 나의 쳐지고 쌍꺼풀 없는 눈을 닮았다. 그래도 미소는 아빠를 닮았다. 이제까지의 사람이든, 동물이든, 내가 아끼고 소중했던 존재들에게 가졌던 그 어떤 사랑의 모습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 요동치게 되었다.
그래서 달라져야 했다. 나를 닮은 나의 아이가 나처럼 살지 않게 하기 위해. 조형틀은 이성적인 커리어우먼이지만, 나는 감성적인 커리어우먼이며, 아름답고 당당한 전문직 여성이었지만.. 그냥 전문직 여성이기만 하더라도.. 조형틀엔 없었던 엄마이자 누군가의 부인이 되었다.
꿈은 달콤했고, 외롭고 움츠렸던 시절 버틸 수 있었던 마약 같은 것이었다. 돌이킬 수 있다면.. 그렇게 열심히 살고 싶지 않다. 그 시절에 할 수 있는 것을 누리고 살아보고 싶다. 지금 그 열매가 달아도 쓰디쓴 떨떠름함은 여전히 입을 오물거리게 하고 가끔 부족한 나를 괴롭히는 우울함의 원천이 된다.
지금 우울하다면, 꿈을 꿔라. 그 대신 꿈이든 우울함이든 빠져나올 수 있게 끝없이 헤엄쳐야 된다. 꿈속에 허우적대다 등대같이 빛나는 목적에 안착해도 자신의 지친 마음까지 보듬어서 자신을 알아가야 진짜 등대 안에 들어가게 되는 것 같다. 난 아직 과정 중에 있으며, 여전히 나를 보듬는 연습 중이다. 이 글은 그 과정의 일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