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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May 20. 2021

시누이의 도덕

'시'자가 붙어 미안

내 동생은 스무 살 때부터 만난 동갑친구와 스물일곱 되던 해에 결혼했다. 현재 아들이 둘 있고, 나는 우리 집 새 식구의 '결혼 안 한' '손위' 시누이 되시겠다(부디 올케에게 '이단콤보' 인식되지 않길 빌며). 우리는 서로 다른 지방에 살기 때문에 만날 일이 일 년에 한두 번뿐이다. 카들이 더 어렸을 때는 내가 자주 영상통화를 걸었지만 지금은 애들이 유튜브를 더 좋아하는 바람에 (휴대폰 속 내 얼굴 앞에 앉지를 않아) 랜선 관계를 유지하기도 힘들다.


올케는 좋은 사람이다. 성격이 무던하고 가식이 없고 부지런하고 알뜰하. 우리 가족이 복을 받은 거라 생각한다. 그간 여러 사람들의 시월드 얘기를 들어왔고, 나도 (언제 일진 몰라도) 여자로서 장차 그 세계에 입성하게 될 테니 '시'에 대한 어감이 좋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내가 직접 겪은 건 아직 아무것도 없는데 지금까지 들어온 배경지식과 사례들이 이미 견고하게 자리 잡은 것이다. 옛말 틀린 게 하나 없지, 멋모를 때 해야 한다고.


내가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를 재잘대며 "우리나라는 이래서 안돼"하면 엄마는 "요즘 그런 시어머니들이 어디 있냐,  며느리한테 잘 보이려고 얼마나 잘하는데" 하신다. 지금은 옛날처럼 아들 가진 유세가 통하는 시대도 아니고 다들 귀하게 자란 장남, 장녀들이라 양가에서 그만한 대접을 해주는 분위기이긴 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최근, 시집 잘 갔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친구가 갑자기 이혼 소식을 전했을 때 그 사유를 듣고 우린 얼마나 경악했던가.

  

우리 가족은 유전자가 그런 건지, 민폐 끼치는 걸 극혐한다. 특히 엄마는 남에게 한 개를 받으면 최소 다섯 개는 줘야 홀가분한 사람이다. 그런데 아들이 있는 한국 가정이다 보니 어느덧 '존재만으로 불편한' 대상이 되어버린 현실. 우리 집 장남이 결혼을 하면서 우리가 단체로 '시'자를 다는 집단이 된 것이다.

시댁,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누이, 시동생.
여기에 시이모, 시고모, 시할머니, 시큰아버지, 시조카..
언어의 힘이란 게 무서운 건데, 차라리 '시'를 빼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지지 않을까. 'in-law'를 붙이며 '법적인' 아버지, '법적인'어머니 등의 표현을 하는 영어가 더 삭막해 보이긴 하다.


아무튼 우리는 새 가족 구성원에게 최대한 덜 불편해지고자 나름의 노력을 기울인다. 게 얼마만큼의 효과가 있는지는 솔직히 모른다. 아무리 잘해준다 해도 내 부모가 아니고 내 언니가 아닌데 어찌 친정과 비교가 되겠는가. 백지장도 엄연히 두께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사실 엄마도 며느리가 오면 부담을 느끼신다. 뭘 해서 먹여야 하나, 뭘 더 해줘야 하나, 고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엄마를 보면 여자의 일생이 서글프다. 조부모님 살아계실 땐 장남 며느리라고 이리저리 불려 다니고, 본인 며느리가 생겨서는 대접할 이가 하나 더 늘었다(물론 다 '내 새끼들'이지만). 여기서 이 집 시누이(=나)의 역할은? 엄마의 시다이자 설거지하는 이모님 정도? 나는 전부터 해오던 대로 내 일을 하는 것일 뿐, 동생이 한 명 늘었다는 것외에 변화가 없으므로 당연하게 생각한다.


부모, 형제 없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내 친구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고 현재 시댁의 사랑을 받으며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다. 세상만사 모든 건 케바케다. 우리 집 새 식구가 가족에 합류한지도 한참 지났는데, 부디 그녀가  '시'금치도 안 먹겠다는 의지를 북돋을 일 없이 주욱 마음 편하길 바란다. 그리고 아들들 키우느라 고생이 너무나 많지만 전혀 티를 안내는 올케의 매일이 평안하면 좋겠.

 

나는 시댁도 없는 사람이지만 그에 대한 (불편한) 얘기들이 이제는 해가 갈수록 드라마 속 얘기나 엄마 세대의 하소연이 아닌 내 또래 주변인들의 실제 상황이 되어가니, 내게 달린 '시' 자가 몹시 무겁게 느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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