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자주 여닫는 문짝에는 좀이 먹지 않는다." -『여씨춘추』
변화야말로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물이 흐르며 스스로를 정화하듯, 문짝이 열리고 닫히며 바람을 맞아 썩지 않듯, 우리 삶 또한 변화 속에서만 생동할 수 있다. 그런데 막상 변화의 순간이 다가오면 우리는 움츠러든다. 왜 그럴까?
화학반응은 참으로 신비로운 현상이다. 단순히 물질의 상태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 자체가 변화한다. 안정된 반응물들이 활성화 에너지라는 보이지 않는 언덕을 넘어서는 순간, 원자와 분자들이 재배열되며 전혀 다른 생성물로 변모한다. 흥미로운 점은 최종적으로 에너지가 낮아지는 발열 반응이든, 높아지는 흡열 반응이든 상관없이 모든 변화에는 반드시 에너지를 흡수하여 불안정한 구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반응물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 안정성을 깨뜨려야 한다. 불안정해야 반응이 진행되고 변화가 나타난다.
우리의 생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익숙함이라는 에너지 골짜기에 안주하며 살아간다. 그 골짜기는 편안하고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하거나, 관계를 재정비하거나, 진로를 전환하려 할 때마다 두려움과 낯섦이 높은 벽처럼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그 순간의 불편함과 혼란은 마치 화학반응의 활성화 에너지와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불안정한 구간을 피하려 한다. 하지만 불안정함이야말로 변화 가능성이 저장된 잠재적 에너지이며, 일시적 혼란이야말로 변화의 시작 신호라는 것이다.
화학에서 촉매는 흥미로운 존재다. 반응의 최종 결과는 바꾸지 않으면서도 활성화 에너지의 높이만 낮춰 반응을 촉진한다. 반응이 끝나면 자신은 원래 모습 그대로 남아 다음 반응을 도울 준비를 한다. 인생에서도 촉매 같은 존재들이 있다. 현명한 멘토, 깊이 있는 독서, 소중한 경험들, 때로는 뼈아픈 실패까지도 우리의 촉매가 된다. 이들은 우리가 변화의 언덕을 좀 더 쉽게 넘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촉매가 아무리 훌륭해도 실제로 변화의 언덕을 넘어가는 주체는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점이다. 촉매의 도움을 받되 그것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변화를 선택하고 실행해야 한다.
교실에서 학생들을 바라보면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실험관 속 입자들이 연상된다. 새로운 개념을 만났을 때, 문제에 막혔을 때, 관계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아이들은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 그 순간 그들은 마치 활성화 에너지 구간을 지나는 분자처럼 떨리고 요동친다. 교사는 이때 촉매의 역할을 한다. 아이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동기를 부여하며, 더 낮은 에너지로 변화의 순간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실제로 깨달음을 얻고,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은 오직 그들 자신이다. 교사는 반응에 직접 참여하지 않으며, 반응이 끝난 후에도 원래의 모습으로 다음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들은 모두 불안정한 시기에 찾아왔다. 대학원을 나왔을 때의 막막함, 첫 교직생활을 앞둔 긴장감, 새로운 관계에서 느끼는 어색함, 글쓰기를 시작할 때의 두려움까지. 그 모든 순간들이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어준 화학반응이었다. 안정은 편안하지만 정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불안정은 불편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화학이 알려준 이 단순하지만 깊은 진리 앞에서, 나는 이제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피어날 새로운 나를 기대하게 되었다. 불안정함이야말로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변화할 수 있다는 축복이라고.
지금도 나는 매일 작은 변화들과 마주한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며 느끼는 낯섦, 새로운 문항을 만들고 평가를 준비하는 막막함,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 어색함. 예전엔 그런 순간들을 피하려 했다. 익숙한 학생들과 활동을 하려 하고, 편한 사람들과만 어울리고, 같은 교과목과 업무만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불안정함을 받아들인다.
흐르는 물이 바위를 만나 방향을 바꾸듯, 자주 여닫는 문짝이 계절의 바람을 맞으며 단단해지듯, 우리도 변화의 순간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난다. 불안정함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신호이다. 화학반응처럼, 삶의 변화도 결국 더 안정된 상태를 향한 반응이다. 다만 그 반의 과정에서 우리는 잠시 흔들리고 요동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