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여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생화학회(International Congress of Biochemistry). 젊은 무명의 미국 과학자 마셜 니런버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단상에 섰다. 그의 발표는 학회 마지막 날, 잘 알려지지 않은 세션에 배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발표한 내용은 그 자리에 있던 소수의 과학자들을 넘어 전 세계 생명과학계를 뒤흔드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DNA에 담긴 유전 정보가 단백질로 번역되는 과정의 비밀, 즉 '유전 암호'의 첫 글자를 해독해냈다는 소식이었다. 이 발견은 20세기 생명과학의 가장 위대한 성과 중 하나로 기록되었고, 니런버그에게 '생명의 언어를 최초로 해독한 인물'이라는 영예와 함께 196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안겨주었다.
마셜 워런 니런버그는 1927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앓았던 류머티즘 열 때문에 가족과 함께 플로리다 올랜도로 이주한 그는, 그곳의 풍요로운 자연환경 속에서 생물학에 대한 깊은 매력을 느끼며 성장했다.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동물학과 화학을 공부하고, 수서곤충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미시간 대학교에서 생화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생명 현상의 근본적인 질문에 다가서기 시작했다. 1957년, 그는 당시 생명과학 연구의 메카로 불리던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자리를 잡았고, 그곳에서 그의 운명을 바꿀 연구 주제, 바로 DNA와 단백질 사이의 정보 전달 메커니즘과 마주하게 된다.
1950년대 후반, DNA가 유전물질이라는 사실과 그 이중나선 구조는 이미 밝혀져 있었지만, DNA의 염기서열(A, T, G, C)이 어떻게 단백질을 구성하는 20가지 아미노산의 서열로 바뀌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마치 암호문처럼 존재하는 DNA의 언어를 해독하는 것은 당시 생명과학계의 가장 큰 숙제였다. 많은 과학자들이 이 문제에 매달렸지만, 뚜렷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니런버그는 이 '유전 암호' 해독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졌다. 그는 먼저 DNA에서 정보를 전달받는 RNA가 단백질 합성에 직접 관여할 것이라는 가설에 주목했다.
그는 독일인 박사후연구원 하인리히 마테이(J. Heinrich Matthaei)와 함께 대장균 추출물을 이용해 '무세포 단백질 합성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살아있는 세포 없이도 시험관 내에서 단백질 합성이 일어나도록 하는 정교한 실험 환경이었다. 여기에 인공적으로 합성한 RNA를 넣어 어떤 아미노산이 만들어지는지 확인하는 것이 그의 아이디어였다. 그들이 처음 사용한 인공 RNA는 오직 하나의 염기, 우라실(U)만이 반복적으로 연결된 '폴리-U(polyuridylic acid)'였다.
1961년 5월 27일 새벽, 역사적인 실험이 진행되었다. 폴리-U를 첨가한 시험관에서 방사성 동위원소로 표지된 아미노산 혼합물 중 유독 페닐알라닌만이 길게 연결된 단백질(폴리페닐알라닌)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RNA의 염기서열 'UUU'가 아미노산 '페닐알라닌'을 지정한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유전 암호의 첫 단어가 마침내 해독된 순간이었다! 이 발견은 "UUU=페닐알라닌"이라는 단순한 공식을 넘어, 유전 암호가 실제로 해독 가능하다는 희망과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이후 니런버그 연구실은 다른 종류의 인공 RNA(예: 폴리-A는 라이신, 폴리-C는 프롤린을 지정)를 사용하여 추가적인 암호를 해독해 나갔다. 특히 필립 레더(Philip Leder)와 함께 개발한 '삼염기 결합 분석법(triplet binding assay)'은 특정 염기 3개(코돈)로 이루어진 짧은 RNA 조각이 어떤 아미노산을 운반하는 tRNA와 리보솜에서 결합하는지를 확인함으로써, 모든 종류의 코돈을 훨씬 효율적으로 해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 혁신적인 방법과 다른 여러 연구 그룹(특히 하르 고빈드 코라나 연구팀)과의 경쟁적이고도 협력적인 연구를 통해, 1966년경에는 64개 코돈의 의미가 모두 밝혀져 유전 암호표가 완성되었다. 마치 생명의 비밀을 담은 사전이 편찬된 것과 같았다.
유전 암호의 해독은 생명과학 분야에 즉각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유전 질환의 원인을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고,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통해 인슐린이나 성장호르몬과 같은 유용한 단백질을 대량 생산하며, 특정 유전자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법을 개발하는 모든 현대 생명공학과 의학의 발전이 바로 이 유전 암호 해독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니런버그는 이후 신경생물학 분야로 연구를 확장하여 신경세포의 기능과 발달에 대한 연구에서도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니런버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뛰어난 과학적 발견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그는 복잡한 문제에 대해 단순하면서도 창의적인 실험 설계를 고안해냈고, 때로는 학계의 주류 의견과 다른 자신만의 길을 갔다. 그의 유쾌하고 낙천적인 성격, 그리고 동료들과의 협력을 중시했던 태도는 많은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2010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과학계는 생명의 가장 근본적인 언어를 밝혀 인류 지성의 지평을 넓힌 위대한 스승이자 선구자를 잃은 것을 애도했다.
마셜 니런버그. 그의 이름은 마치 로제타석을 해독하여 고대 이집트 문명의 비밀을 밝혔듯, 생명의 암호를 풀어 분자생물학 시대를 활짝 연 과학자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의 발견은 오늘날 우리가 생명을 이해하고 질병을 정복하려는 노력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를 이룬다.
출처 및 저작권: 본 내용은 [교과서 속 과학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에서 진행 중인 저작물의 일부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