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렇게 좋은 걸 이제야 알았다니-
이번 주말(10월 18일~10월 20일) 독립출판 페어 ‘퍼블리셔스테이블 2024’가 진행되었다. SNS를 보다 보면 올해 6월 서울국제도서전의 흥행 이후 북페어에 대한 관심과 책을 둘러싼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듯하다. <기획회의> 615호는 북페어라는 '사건'을 주제로 다양한 각도에서 독서 생태계의 중요한 변화의 흐름을 짚어본다. 매 호 하나의 주제(이슈)에 대해 4개의 글을 싣고 있는데 이번 호는 아래의 글들이 실렸다.
1. 서울국제도서전의 흥행, 그 뒤에 남은 질문들
2. 아트북페어 현황과 전망
3. 도시의 콘텐츠, 전주책쾌의 가능성
4. 제주 북페어, 지역 독서 생태계를 확장하다
서울국제도서전의 유례없는 흥행은 위에서 말했듯, '사건'이라 불릴만했다. 앞서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 곤두박질 치고 있는 성인 독서율은 어려운 출판계에 더이상 희망따위 갖지 말라는 선고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서울국제도서전에 몰린 수많은 인파에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출판계는 고무됐고 아직 희망이 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여러 분석들이 나왔지만 그다지 설득력있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 <기획회의>를 보다가 '도서전을 팬덤이 지배하게 되었다'는 문장을 보고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한쪽에서는 반쪽짜리 도서전이라는 소리도 있지만(미참여 출판사도 많고 도서전을 찾은 독자들의 연령대가 2030에 쏠려있다는 점이 그렇다)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을 통해 "책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문장도 와닿았다. 그렇지. 책은 아직 살아있다. 도서전은 책을 팔고 사는 시장으로서의 의미보다 이제는 '책을 발견하고, 흥미를 일깨우고, 비독자를 독자로 전환시키는' 네트워킹의 장으로 기능한다. 도서전이 팬덤의 지배하에 놓였다는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팬덤이 어디에 작용하는지 생각해보면 작가를 넘어 출판사, 서점, 개인제작자, 일러스트레이터, 편집자, 심지어 과거에는 독자가 알수도 없었을 출판사 마케터까지, 팬덤의 영향권에 있다. 오늘날 독자(특히, 2030세대의 독서생활을 즐기는)는 매우 능동적으로, 입체적으로 책을 즐기고 있다. 책을 읽고, 출판사가 업로드한 관련 영상을 시청하고, 출판사 SNS에서 다른 독자들의 감상과 나의 감상을 대조하고 공감하며 2차 독서를 즐긴다. 출판사 편집자나 마케터의 개인 계정에서 스스럼없이 팬심을 드러낸다. 팔로우하는 동네서점에서도 내가 읽은 책에 대한 피드를 올리면 좋아요를 누르고 팔로우 중인 계정을 파도타기하며 책의 여운을 즐긴다. 혹은 온오프라인 북클럽에 가입하여 적극적인 함께 읽기에 도전하기도 하고.
팬심이 이렇게 가득한데, 평소 팔로우하던 출판사, 서점, 편집자, 작가를 코 앞에서 만날 수 있는 도서전, 북페어는 독자들에게 매력적인 이벤트일 수 밖에 없다. 북페어가 이제 제주, 전주, 군산, 인천 등 전국 각지로 확산되고 있다.
국제도서전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이제 독립출판북페어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바로 앞의 문장에 기술한 전국 각지로 확산되는 북페어는 사실 독립출판 북페어에 가까운데, 임경용 더북소사이어티 대표는 독립출판 북페어는 사실 '아트북페어'라는 범주에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라 말한다. 그는 독립출판 북페어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다루는 지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북페어는 어떤 활동을 위한 네트워크에 가깝다고 한다. “소비자는 언제든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DIY 정신이 북페어에도 녹아 있으며, 이는 독자와 출판사(독립출판, 동네서점 등)와의 느슨한 “연대의식”의 산물이기도 하다고.
35p. 독립출판의 중요한 윤리 가운데 하나로 자주 언급되는 ”D.I.Y(Do it Yourself, 직접 기획, 제작, 유통해라)“ 정신과도 연결된다. 여기서 생산자와 소비자는 명학하게 구분될 수 없으며, 북페어의 주요 소비자가 언제든 (잠재적) 생산자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이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느슨한 동료의식을 가지게 만든다. 이 문화에서 책을 구입하고 아트북페어를 방문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이 네트워크를 경험하고 입장하기 위한 티켓이 되기 때문이다.
37p. 개인이나 공동체의 역량을 일시적 행사로서 북페어에서만 발현되게 하기보다, 우리 일상 곳곳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상대적으로 생존력이 약한 독립출판물이 3일~4일에 불과한 북페어 기간 이외에도 사람들에게 노출되고 논의될 수 있도록 기록, 보존되어야 한다. 도서관이든 소규모 서점이든 혹은 다른 성격의 공간이든, 소규모 출판물을 보존하고 연구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하는 문제가 시급하다. 무엇보다 치열한 선별과정과 여러 출판사 사이의 판매 경쟁에 기반한 페어의 자리에, 미스리드의 공동 창립자이자 작가인 모리츠 그륀케가 자신의 진(zine) <아트북 페스티벌의 미래>(더북소사이어티)를 통해 언급햇듯이 , “집단적 과정과 공동 작업, 자원의 공유, 서로에 대한 책임”이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이런 문화에서 책을 사고 북페어에 방문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이러한 연대에서, 이 네트워크를 경험하고 ‘입장’하기 위한 티켓이 되기 때문이다. 북페어를 인증했다는 것은 “나는 독자이고, 이러한 출판, 서점, 제작자, 편집자와의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증하는 것”과 같다.
위에서 언급되었듯이 3~4일에 불과한 북페어 기간 외에도 책 또는 출판물(독립출판물)이 북페어 기간 외에도 대중에게 노출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근래의 북페어 '트렌드'는 반갑기만 하다. 서울국제도서전 외에도 와우북페스티벌, 파주북페어 등이 기존에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각 지역들이 지역의 이름을 걸고 전주책쾌(7월), 군산북페어(8월), 인천아트북페어, 서대문구 책부상 등 크고작은 북페어를 앞다퉈 열고 있고, 퍼블리셔스 테이블이나 언리미티드 에디션과 같이 독립출판물을 중심으로 하는 큰 행사도 매년 진행이 되고 있다.
올해 서대문 '책부상' 북페어의 경우 '골목과 문화 예술의 연결', '작은 서점 어떻게 꾸릴까', '모두가 작가인 시대, 어깨에 힘빼기' 등의 세션을 통해 사회문화적 이슈를 제기하고 출판계와 지역사회에 질문을 던졌다. 꼬메아미꼬갤러리에서는 마티출판사, 몇몇 동네서점들과 함께 '책 너머는 책이다'라는 행사도 곧 열릴 예정이다. 마티 출판사가 군산북페어에 만들어갔던 책갈피를 갤러리에 전시한다고. 이는 북페어의 후속이자 확장된 경험을 제공하고 책 너머 책으로 이어지는 계속된 움직임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원래 책을 한 권 살까말까였는데 북페어 다녀온 뒤로 무슨 책을 계속 사게 되네” 라는 어느 트위터리안(현 X)의 말이 자꾸 생각난다. 북페어는 비독자를 독자로 만든다. 북페어에 다녀오면 책이 좋아질 것이라 확신한다. 책이 좋아서 북페어에 가는 사람, 우연히 북페어에 갔다가 책이 좋아진 사람. 출판계는 늘 '분투'중이다. 독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독자와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중이다. 이제는 독자들 차례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온 나라가 축제분위기로 떠들썩했다. 책은 생각보다 정말 재밌다. '돌아온' 독자들과 '새롭게 찾아온' 독자들은 이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책, 이렇게 좋은 걸 이제야 알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