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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IGE Nov 21. 2021

나는 이렇게 조금씩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다.

스쓰일 003

조리원 때는 내가 중심이었다. 자연 분만하면 아무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철부지 같은 생각을 산산조각 내듯 몸도 부서질 듯 아팠다. 초반에는 자면서 식은땀을 흘렸고 회음부랑 항문이 아파서 밥 먹는 것도, 수유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 몸을 먼저 생각하고 내가 쉬는 것이 우선이었다. 모유가 잘 나오는 편이라 웬만해서 수유 콜을 다 받았지만 밤수만큼은 받지 않았다. 마사지 예약이 잡혀있을 때는 분유 보충을 요청하면서 최대한 몸을 회복하는 일에 집중했다. 주는 밥과 간식을 빠짐없이 챙겨 먹고 조리원이 익숙해질 무렵, 수유 콜 전화가 환청처럼 들리기 시작할 때 퇴소 준비를 했다. 뚝딱이가 17일 되는 날이었다.

세상 바깥으로 나온 뚝딱이는 30일까지 정말 많이 울었고 잦은 텀으로 계속 모유를 먹었다. 신생아이기에 먹고 자고 싸는 일을 반복하는 시기라고 생각했고 나는 이 또한 지나가는 시기일 것이라고 되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면서도 밤마다 양가적 감정이 들기 시작한다. 아이(신생아)의 일과를 체크하는 어플로 [뚝딱이가 많이 배고파요]라는 알람이 뜨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자라하고 마음속으로 외치면서도 그 알람의 기점으로 30여 분만 지나면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반려견을 키우면서 아이는 원목 침대에 따로 재우는데 내 생각보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자면 ㅡ통잠을 그토록 바랐으면서ㅡ 무언가 불안해 들여다보게 된다.

26일째 되는 날에는 밤(모유)수를 하고 아이를 재웠다. 신생아일 때 일명 이계인 소리라고, 밤새 끙끙거리며 용쓰는 소리를 낸다. 꽤 시끄러워 이 소리 때문에 잠 못 자는 부모도 더러 있다. 나도 초반에는 엄청 신경 쓰였다. 여하튼! 그날따라 얕은 잠에 들다 깼는데 용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일어나 하얀 속싸개까지 씌운 아이를 보면서 2시간 넘게 움직임 없이 자도 괜찮은 건지 알 수 없는 초보 엄마는 결국 손을 내밀어 아이의 가슴께에 얹는다. 갑자기 가슴에 얹어진 다른 촉감과 무게 때문인지 내 손길에 놀란 아이는 빠른 속도로 상황을 인지하고 미친 듯이 울기 시작했다. 정말 조용히 2시간만 자고 싶다 많이 바라지도 않는다 라고 말했던, 아니. 2시간 편하게 자게 해 줘도 아이를 건드려 깨우다니. 속으로 내가 정신 나간 인간이지 욕하며 아이를 오래도록 안아 달래고 재웠다.

간혹 커뮤니티를 둘러보면 아이의 수유 텀에 맞춰 알람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글들이 보인다. 어느 다큐에서 엄마는 아이를 낳으면서 뇌의 편도체가 열리는데 아이가 울거나 평소와 다른 소리를 낼 때 자동으로 눈이 떠지고 몸이 반응할 수 있도록 변한다는 것이다. 추가적인 연구에 따르면 엄마뿐만 아니라 주양육자가 남자더라도 주양육자가 되면 아이를 낳고 열리는 그 편도체가 주양육자에게도 생긴다고 한다. 아이에게 모든 촉각이 집중되는 시간은 새벽이고 낮이고 밤이고 상관없다. 알람보다 더 빠르게 일어나 진다. 어렸을 때는 잠귀가 어둡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만큼 내 가족을 믿고 편히 잤다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잠을 이겨낼 만큼 책임지고 해야 할 것도 없던 시절이었고. 아 돌아가고 싶다 그때로. 사람뿐만이 아니다 나는 개를 키우면서도 바뀌었는데, 새벽에 보보(반려견)가 자다가 호흡이 이상하거나 토하기라도 하는 날 역시 거의 반사적으로 몸이 일어나 진다. 난 제대로 자긴 하는 걸까.


39일째 되는 날 밤수를 끝내고 잠을 자려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계속 얕은 잠을 자야 했고 모유수유로 주말까지 온전히 내가 아이를 봐야하는 점, 아이가 모유를 조금이라도 게어내면 내가 충분히 트림을 시키지 못했다는 미안함 뭐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다가온 때였다. 아이가 울면 시도 때도 없이 젖을 물려야 하지 않겠냐는 악의 없는 남편의 말이 미웠고, 4kg가량의 가벼운 아이지만 낮은 종일 안아재워야 해서 옷을 갈아입을 때 옷을 들어 올리는 일이 힘들 만큼 쑤시고 아픈 어깨와 팔에 화가 났다. 새벽 4시에 수유를 하다가 졸면서 깜짝 놀라 정신 차려야 된다고 나를 다그치는 시간들이 속상했고,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고 있을 때 보보가 자다가 나와서 내 옆에 앉아있으면 고맙고 미안해졌다. 종일 너랑 나랑 바깥 한번 나가지 못하고 우리 뭐하고 있는 걸까 싶었다. 팔뚝만 한 작고 소중한 신생아 이 시기는 지나가버리는 때라고 나중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그리워질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힘들었다. 내 욕심으로 낳은 아이인 만큼 잘 돌봐야 하지 않겠냐, 하면서도 나도 인간인지라 너무 예쁜데 지친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역시 그 또한 지나간다.

엄마가 씻고 올동안 참지 못하고 우는 내 껌딱지

50일의 기적 아니면 기절이라는 50일 무렵, 나는 기적이라기보다 이제 신생아 티를 조금 벗어내려는 아이와 합을 맞춘 시기라고 생각한다. 식은땀도 나고 남편이 가장 예민해지던 목욕시키는 법도 남편과 나의 역할을 찾아 수면 의식처럼 매일 자연스럽게 하게 됐고, 큰 일 보신 아가 뒤처리를 하면서 아기를 떨어뜨리진 않을까 걱정하던 내가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똥 밟았네 노래 부르면서 처리해드린다. 무엇보다 이쯤에는 아이가 배고파서 우는 건지 잠투정으로 우는 건지 알게 됐다. 조리원 때는 너무 아파서, 내가 중심이어서 보이지 않았던 아이의 얼굴과 행동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아이가 너무 예뻐서 볼에 입을 맞추고 눈을 맞추고 많이 안아주게 되던 때다. 너무 짧았던 수유 텀이 두세 시간으로 시간을 갖추기 시작했고, 남편과 나 그리고 아이까지의 패턴을 맞추고 나니 23시부터 02시까지는 안전한(?) 휴식시간이 생기기도 했다. 보보랑 더 편하게 밤 산책이 가능해졌고 동네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모유의 양과 아이가 모유를 잘 먹는지 체크할 수 없어 걱정이었던 마음을 내려놓을 만큼 아이는 포동포동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모유수유는 두둑한 소변의 양과 믿음으로 지켜내야 한다(?)

집은 난장판이지만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평일은 혼자 아이를 케어하다 보니 밥 먹는 게 일인데 역류방지 쿠션에 모빌 놓고 놀게 하다 울면 못 들은 척 밥을 먹기도 하고. 평일에는 내가 너무 힘들어서 젖을 물려 재우는데 급급한 나머지 모유를 게워내게 하기도 하고 (이기적인 엄마라 미안해) 도저히 안 되겠어 쪽쪽이(공갈 꼭지)를 이것저것 사서 물려보는데 안 물어 억지로 물리게 하다 울리기도 한다. 이제 막 60일을 벗어났는데 엄마품을 귀신같이 아는 예민한 뚝딱이를 모른 척 아빠한테 밀어낸다. 그래도 엄마는 뚝딱이를 사랑해(?)

다행히도 낮 시간에는 아이가 잘 자주는 편이라 밀린 빨래들을 처리하고 배고픈 내 배를 대충 달래고 반려견 보보 밥을 주고 강아지 패드를 치우고 빨래를 개고 기저귀들을 정리하면 또 수유시간. 누워서 수유하면서 새벽에 못 잔 잠을 채우다 보면 금방 2-3시가 된다. 너무 아이를 재운 것 같아 초점책도 보여주고 좀 놀다 보면 금방 5시, 또 아이를 재우고 청소기 돌리고 어질러진 정리 하면 남편이 온다. 엊그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 너무나 루틴 한 요즘. 다만 매일 목욕하면서 자라나는 아이를 보며 우주복 바깥으로 뾱- 하고 나온 손을 보면서 너는 자라고 있구나, 오늘에 나는 없어도 오늘에 너는 있구나. 커가고 있구나 하며 나의 하루를 안도한다. 나는 이렇게 조금씩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다.

*스마트폰으로 쓰는 일인데도 생각보다 시간이 나지 않는 신생아 키우기, 하고 싶은 말들은 너무 많은데 쓰다 멈추고 쓰다 멈추고 하나를 완성하기가 쉽지 않네. 기록용이니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풀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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