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음악 제작 도우미

5분 안에 만드는 '단 하나의 노래' 작곡가 유노

by 유블리안

주인공 : 이준수(28세, 이준영 동생)
보조 AI도우미 : 유노(음악 제작)


따스한 햇살이 통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카페 구석 자리. 두 사람 앞에는 이제 막 고른 청첩장 샘플과 복잡한 예식장 계약서가 놓여 있었다. 이준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생각보다 신경 쓸 게 진짜 많다. 그냥 적당히 하고 신혼여행에 더 투자할까?"
"남들 다 하는 건데, 우리도 잘 해내야지."

약혼녀 지수가 웃으며 그의 손등을 토닥였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떠올랐다는 듯 반짝이는 눈으로 준수를 바라보았다.

"있잖아, 오빠. 나 사실 축가... 오빠가 직접 불러줬으면 좋겠어."
"응? 아, 당연히 내가 불러야지. 누구 시키겠어."

준수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지만, 지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요즘엔 특별하게 직접 만들어서 부르기도 하더라고. 오빠가 우리 이야기를 담아서 직접 만든 노래를 불러준다면... 세상 어떤 선물보다 의미 있을 것 같아. 기대할게."

활짝 웃는 지수의 얼굴에 준수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내가? 작곡을?' 학창 시절 기타 코드 몇 개 겨우 외웠던 게 음악적 재능의 전부였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버린 그에게, 지수의 기대에 찬 얼굴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차마 '난 그런 건 해본 적도 없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약속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이 되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며칠 뒤, 약속의 무게는 냉혹한 현실이 되어 준수를 짓눌렀다. 방 안의 모든 빛은 노트북 화면에서 시작되어 그의 지친 얼굴 위에서 끝났다. 화면 중앙에서는 하얀 커서가 1초에 한 번씩, 그의 심장처럼 무심하게 깜빡였다.

무료 작곡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여 실행했지만, 수십 개의 버튼과 정체 모를 그래프들은 마치 외계어처럼 느껴졌다. 유튜브를 보며 피아노 건반을 몇 번 눌러봤지만, 불협화음만 방 안을 어지럽힐 뿐이었다.

책상 한구석에는 ‘지수에게’, ‘우리’, ‘사랑’, ‘결혼’ 같은 단어들만 의미 없이 적힌 채 구겨진 메모지들이 작은 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중얼거렸다.

"미쳤지, 내가 무슨 자신감으로..."

그때,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형 준영이 머그컵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방 안의 처참한 광경과 준수의 표정을 번갈아 보던 그가 혀를 찼다.

"아직도 그러고 있냐? 이거 마셔가면서 해."
"형. 나 그냥... 포기할까 봐.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괜히 약속했어."

준영은 구겨진 메모지들을 힐끗 보더니, 피식 웃으며 준수의 어깨를 툭 쳤다.

"야, 요즘 세상에 누가 혼자 끙끙 앓으면서 하냐? 전문가의 도움을 좀 받아."
"무슨 전문가. 이 시간에..."
"전문가. 아니, 전문가 이상이지."

준영이 빙긋 웃었다.

"형이 누구냐? AI전도사 이준영이잖아. 우리는 생각을 하고 지시하면 알아서 기막힌 작품을 만들어 줄 거야. 백날 고민할 시간에 한번 시도하라는 말도 있잖아."
"정말? 그게 가능해?"
"그럼. 세상이 변했어, 동생.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까 음악 만들어주는 AI도 있더라고. 이름이 '유노(YUNO)'랬나? 밑져야 본전이니까 한번 써봐."

반신반의하며 설치한 '유노'는 준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준수님. 당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드릴게요. 어떤 감정을 담고 싶으신가요?"

준수는 홀린 듯 '#따뜻한', '#감성적인'을 선택하고, 가장 소중한 키워드 세 개를 입력했다. [지수], [햇살 같던 첫 만남], [영원한 약속]

그리고 5분 뒤.

노트북 화면은 장대한 우주처럼 펼쳐졌고, 음표와 화음, 가사가 한 편의 예술처럼 조립되었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따뜻한 어쿠스틱 기타 반주 위로 그의 목소리 톤을 닮은, 미세한 떨림과 숨소리까지 구현된 감미로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햇살 같던 그날, 처음 본 너의 미소
내 세상의 모든 계절이 시작되었지...


준수는 눈을 감았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것은 단순한 기계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표현할 방법을 몰라 그의 마음속에서만 맴돌던 진심이,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구현된 기적이었다. 이 노래를 들으며 환하게 웃을 그녀의 모습이 흐릿한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완성된 노래는 마음에 드시나요? 혹시 몰라 3가지 버전으로 만들어 놨으니 맘에 드는 곡으로 고르시면 되고 혹시 직접 부를 경우를 대비해 MR버전도 있습니다."

"내가 직접 부른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데이터 분석과 가사 내용을 보아 결혼식 축가라고 여겨집니다."


드디어 결혼식 당일,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지수는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사회자가 특별한 축가가 준비되었다고 외쳤다. 긴장된 표정의 준수가 마이크 앞에 섰다. 땀으로 축축한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객들의 따뜻한 시선이 모두 그에게로 쏠렸다.

"어... 많이 부족하지만, 오늘 제 아내가 된 지수를 위해 직접 만들었습니다. 처음이라 많이 서툴지만, 제 마음이 닿기를 바랍니다."

객석에서 감탄과 격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준수는 심호흡을 하고, 오직 한 사람, 지수만을 바라보며 노래를 시작했다. 연습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목소리가 떨렸지만, 진심을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


햇살 같던 그날, 처음 본 너의 미소...


첫 소절이 울려 퍼지자, 지수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그저 그가 자신을 위해 용기를 내준 것만으로도 감동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노래가 계속될수록 그녀의 표정이 조금씩 변해갔다.


내 세상의 모든 계절이 시작되었지


그 가사를 듣는 순간, 지수의 머릿속에 도서관 창가에 앉아 있던 준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잿빛 취업 준비 기간, 처음으로 준수를 만나고 세상이 총천연색으로 변하는 것 같았던 그날의 감정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수많은 별들 아래, 단 하나의 약속
지수, 나의 영원이 되어줘...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그들의 추억이 담긴 키워드들이 가사 속에 녹아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지수의 눈에 투명한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냥 좋은 노래가 아니었다. 서툴고 무뚝뚝한 준수가 그녀에게 보내는, 세상에서 가장 진솔한 편지였다.

AI가 만들었든, 누가 만들었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 노래에 담긴 것은 온전한 준수의 마음이었으니까. 노래가 끝나고, 하객들의 뜨거운 박수 소리가 식장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준수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눈물을 흘리면서도 세상 가장 환하게 웃고 있는 지수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다. 5분 만에 만든 노래였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의 깊이는 영원이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떠나기 직전, 준수는 잠시 짬을 내 형을 찾았다.

"형, 덕분에 결혼식 잘 마쳤어. 진짜 고마워."
준영은 쑥스러운 듯 손을 내저었다. "됐다. 좋았으면 그만이지. 얼른 가봐, 지수 씨 기다리겠다."
"아, 맞다. 형! 우리 신혼여행 가서 사진이랑 영상 많이 찍을 거거든? 그걸로 나중에 추억 영상 같은 거 만들고 싶은데… 그것도 방법이 있으려나?"


준수의 눈이 다시 한번 기대감으로 빛났다.


"그건 일단 실컷 즐기고 와서 생각해. 방법이야 또 있겠지."
준영이 든든하게 웃어 보였다. 그 말에 안심한 듯, 준수는 환하게 웃으며 지수가 기다리는 곳으로 달려갔다. 준영은 설렘을 안고 멀어지는 동생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