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히든>.2005

by 비평언저리

*<퍼니게임>, <히든>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무자비하기로 소문난 영화 <퍼니 게임>을 본 관객 모두가 한 번씩은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가족을 괴롭히던 두 남자 중 하나가 난데없이 카메라를 보고 말하는 장면이다(가족이 아침 아홉 시까지 살아있을지 관객들도 내기해보라는 식). 그의 말 한 마디로 영화 속 로케이션은 혈투의 장이 되고 관객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쥔다. 관객은 무엇으로 고통 받나. 일면식도 없는 남자들한테 살해 당한 가족이 불쌍해서? 그것보단 이 참극의 순간을 보고'만' 있는 관객의 존재를 영화 속 인물들도 알고 있다는 데서 오는 당혹감, 배우가 관객을 모름으로써 생기는 관객으로서의 특권, 영화를 영화로만 볼 수 있는 특권이 사라졌다. 계속 영화를 보든 극장을 나가든 편하게 양자택일을 했던 관객은 모든 선택이 필패로 귀결될, 알면서도 빠져야 하는 깊은 함정을 내려다보고 있다. 아무튼 시간은 간다. 모든 가족이 죽었고, 두 남자는 다른 사냥감을 찾아 떠난다. 끝까지 자리를 지킨 관객은 극장을 떠나면서 안도한다. 더 이상의 게임은 없을 것이라며.

<퍼니 게임> 이후 8년이 지나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미스터리 영화 <히든>을 만들었다. 이 영화를 보다 조는 사람은 있어도 중간에 도망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덕적인 불편함을 야기할 순 있어도 보는 사람 속이 뒤틀릴 정도의 잔인함은 없다. 피 튀기는 스크린 앞에서 무기력한 관객을 우롱하는 <퍼니 게임>과 달리 <히든>은 관객이 영화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긴다. 그 촉매제는 영화 전체에 흐르는 미스터리한 기류다. 조르주네 집에 의문의 비디오테이프를 누가 자꾸 보내는가. <히든>에서 풍기는 미스터리함은 맛있는 음식이 내뿜는 향기 같다. 냄새에 매혹된 관객은 영화 속으로 자연히 이끌린다. 흔히 봐온 미스터리/추리 소설의 그것과 같아 친숙함을 얻은 관객은 조르주(다니엘 오떼유)와 같이 범인 찾기에 뛰어든다.

Cache AKA Hidden 2005 PROPER 1080p BluRay DTS x264-LoRD.mkv_20250112_170159.014.jpg 조르주 부부는 자기 집이 찍힌 비디오를 보고 있다.

우선 영화 전체에 흐르는 미스터리한 기운이 나로 하여금 이 영화를 일곱 번이나 보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말해야겠다. <히든>은 같은 감독이 찍은 <퍼니 게임> 처럼 선정적이지 않고 비윤리적인 장면도 없다. <히든>은 보다 정적이면서도 장르적인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난 후에 남겨진 질문들을 곱씹어보는 것도 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다. 비디오 사건의 범인은 누구였을까. 조르주는 과연 이 사건에 책임이 있을까. 영화는 끝났지만 질문은 풀리지 않는다. 제대로 된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러 번 이 영화를 본 나도 대단히 만족스런 답을 못 찾았으니까.

그건 아마 조르주도 마찬가지일 테다. 다섯 개의 비디오를 아무리 쳐다보고 있어도 이 혼돈으로부터의 탈출은 불가능해 보인다. 첫 번째 비디오를 본 조르주는 아들 피에로나 자신의 팬이 장난을 쳤다고 생각한다. 얼마 안 지나 그는 두 번째 비디오테이프를 받는다. 거기서부터 심상찮은 기운이 밀려오더니 한밤중에 피를 토하는 마지드의 얼굴이 그의 머릿속에서 '튀어나온다'. 비디오는 그때부터 가벼운 장난이 아닌 조르주가 탈출해야 할 감옥으로 바뀐다. 문제는 삽시간에 커졌다.

피를 토하는 어린 시절의 마지드

<올드보이>(2003)의 오대수는 누가 15년 동안 자신을 가뒀는지 모른다. <히든>의 조르주는 범인을 아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오대수는 진실을 찾기 위해 전국을 누빈다. 조르주는 진실을 알고 있기에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가만히 있는 그에게로 배달된 세 번째, 네 번째 비디오는 다른 사람이 범인일 수 있다는 일말의 가설까지도 지워버린다. 각각의 비디오엔 조르주가 어릴 때 살던 집, 마지드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의 주소가 나온다. 불안의 대상이었던 비디오는 어느새인가 든든한 조력자로 바뀐다. 비디오 사건에서 제기될 수 있는 수많은 의문과 가능성이 사라진다. (이제부터) 비디오의 주인은 마지드다. 어렸을 때 일로 앙심을 품은 그가 조르주를 괴롭히기 위해 만든 것이다. 확신에 찬 조르주의 시야는 마지드로 좁혀진다.

Cache AKA Hidden 2005 PROPER 1080p BluRay DTS x264-LoRD.mkv_20250117_155816.679.jpg 몇 십 년 만에 재회한 두 사람

이후 <히든>에 나오는 모든 장면과 대사는 마지드에 관한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집 주소를 알아낸 조르주는 마지드를 찾아간다. 마지드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그를 반기지만 조르주는 과거에 대한 얘기는 일언반구 없이 비디오 얘기만 한다. 이런 짓 좀 그만하라며 으름장을 놓고 나가 버린다. 그렇게 해프닝은 끝난 줄 알았지만, 조르주는 가슴 한 켠에 있는 마지드를 떨쳐내지 못한다. 두 사람이 재회하고 며칠이 지나 조르주의 아들 피에로가 실종된다. 조르주는 경찰을 동행해 마지드의 집으로 간다. 마지드는 자기 아들과 함께 경찰서로 끌려간다. 무죄로 판명돼 철창 신세를 면한 그는 조르주를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또 무슨 일이냐며 조르주는 신경질을 낸다. "이 자리에 네가 있었으면 해서 불렀어." 주머니칼을 꺼낸 마지드는 자기 목을 긋고 자살한다. 차갑게 식어가는 마지드 앞에서 조르주는 패닉에 빠진다. 가정을 무너트리던 놈이 없어졌으니 기뻐해야 마땅한데 그럴 수가 없다. 범인은 마지드가 아니었나? 아니었다면 그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 해온 모든 일들이 무의미해진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두고 조르주가 할 수 있는 일은 눈을 감는 것이다. 그는 수면제를 먹고 해가 환히 뜬 창문을 커튼으로 가린 뒤 침대에 눕는다. 모든 일은 한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그에게 주어진 모든 미션에 실패한 셈이다. 비디오의 범인을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했다. 유력한 범인인 마지드는 그가 보는 앞에서 목을 그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썼지만 아내 안느(줄리엣 비노쉬)는 다른 남자와 은밀하게 교류한다. 안 좋은 과거를 청산했나? 기회는 충분했다. 마지드와 재회한 날 마지드 앞에서 조금이라도 참회의 모습을 보였다면 비극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여기서 그가 실패한 가장 큰 미션은 비디오테이프 그 자체다. 서두에서 말한 <퍼니게임>의 침입자가 '두 남자'였다면 <히든>에서의 침입자는 비디오테이프다. 둘의 차이점은 <퍼니게임>의 가족은 두 남자가 별장에 침입한 사실을 알지만 조르주는 비디오가 자기 집에 침입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앞의 '두 남자'는 한 가족의 별장에 무단으로 침입해 난동을 부리지만 조르주는 배달 온 다섯 개의 비디오를 한사코 거절한 적이 없다. 존재 자체로 문제가 있는 '두 남자'에 비해 비디오테이프는 그 존재만으로 위협적이지 않다. 조르주는 싫은 티를 내면서도 모든 비디오를 돌려봤고 거기서 마지드의 정보까지 캐내 그것의 도움을 받았다. 그 안전해보이는 물체가 어떤 비극을 초래할지 상상도 못한 채 조르주는 멍청히 앉아 텔레비전에 나오는 영상을 보고만 있는 것이다. 비디오라는 거대한 감옥 안에서 조르주는 생각하는 법을 잊었다. 디지털 매체가 대중화된 21세기에 지어진 감옥 안에서 지식인으로 불리던 조르주는 완전히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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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조르주를 보며 비웃을 수만은 없다. <히든>의 문제의식은 이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가만히 앉아 그것을 보는 우리는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 있다. 영화도 텔레비전처럼 시선을 한 곳에만 두는 매체다. <퍼니게임>에서 남자가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은 관객의 모여있던 시선을 분산시켜 혼란스럽게 한다. 이 장면은 대놓고 영화와 관객 간에 거리감을 만든다. 한 걸음 멀리 떨어져 비판적으로 영화를 볼 수 있게끔 관객은 이 장면의 도움을 받은 것이나 다름 없다. 의도 자체는 노골적이지만 효과만큼은 확실하다.

<히든>에서는 감독의 어떤 의도도 느껴지지 않는다. 평소에 영화를 대하듯 이 영화도 작품 자체로만 즐기면 그만이다. 누구도 <히든>을 다른 시선으로 보라며 강요하지 않는다. 어떤 영화든, 어떤 프로그램이든, 어떤 영상물이든 똑같다. 그 누구도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모두가 책임 없는 쾌락을 방조하는 시대에 어떤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볼지는 우리 스스로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