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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길 Mar 05. 2022

걱정쟁이의 사업 시작

다른 사람과 동업을 한다는 것

“벼가 노랗게 익은 모양새를 볼 때 기분이 꿀꿀해져.”

“왜?”

“아. 올해도 갔구나 싶어서. 인간으로서 무력감을 느껴. 그럴 때.”

“인간은 원래 아무것도 아닌 거야. 인간이 시간을 붙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연을 멋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동업자와 길을 걸으며 나눴던 대화에서 닮은 듯 다른 우리의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졸업을 하자마자 사업을 시작했다.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동업자와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하는 나. 영화에 대한 애정과 지향하는 가치관이 비슷한 동업자는 올해 함께 영화를 만들자고 했다. 영화를 만들려면 돈이 필요했고 돈을 벌기 위해 얼레벌레 영상 스튜디오를 차렸다. ‘차렸다’는 표현이 민망할 정도로 아는 것 없이 무작정 뛰어든 일이었고 동업자도 나도 이제 막 배워가며 길을 만드는 단계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내가 사업을 하는 건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더구나 뭐든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동업이라니. 주위 사람들은 나의 동업 소식에 걱정과 놀라움을 표했다.


대충 세수를 하고 트레이닝복을 걸쳐 입은 뒤 집 근처 세무서에 가서 사업자 등록을 했다. 사업자 등록증이 그렇게 쉽게 나오는 건 줄 몰랐고, 이렇게 뭣도 없이 사업이라는 걸 해도 되는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의 불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업자는 드디어 사업자 등록을 한 기념적인 날이라며 함께 밥이나 먹자고 했다. 집 근처 시장에서 순대국밥을 먹으며 괜한 시간낭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닐지, 이 일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는지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인간은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을 습관처럼 뱉던 때가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말을 전적으로 믿진 못했던 것 같다. 무언가를 할 때마다 나는 나를 의심했다. 정말 해낼 수 있을까? 이걸 한다고 행복해질까? 하는 식의 물음이 꼬리를 물었으니까. 다만 뭐든 불가능한 건 없다고 되뇌어야 무엇이든 해나갈 힘과 동기가 생겼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속에 갇혀 있기 싫어서 스스로를 속이는 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매일 세우는 무리한 계획, 그걸 다 해내야만 한다는 강박과 할 수 있다는 말로 스스로를 몰아치는 채찍. 늘 쫓기듯 사는 나와 달리 동업자는 참 느긋한 편이다.

뭐든 계획대로 되지는 않아. 길게 보고 여유를 가져.”


동업자와 나는 생활 습관과 성격, 일하는 방식도 다르다. 눈치가 빠르고 행동을 먼저 하며 에너지가 넘치는 편인 동업자에 반해 나는 눈치가 없고 걱정을 먼저 하며 신중을 기하는 편이다. ‘하자 말을 하는 동업자와 ‘생각해보고라는 말을 하는 나의 대화는 창과 방패가 따로 없다. 어떨 땐 동업자의 행보를 내가 되려 막고 있는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도 거침없고 솔직한 그의 태도를 말리게 된다. 일을 익히기도 바쁜 시기에 우리는 서로 다른 성격과 방식을 확인하고 배우며 조정하느라 여념이 없다. 늘 약속 시간에 늦는 동업자와 헤어질 때 ‘안녕’이란 인사 대신 ‘늦지 마’라는 당부로 우리의 만남을 마무리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업자와 나를 잇는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세상에 대한 가치관과 영화에 대한 꿈이 우리의 바탕을 굳건히 하고 있다 믿는다. 미시적인 것보다 거시적인 것을 보자고, 그렇게 누군가와 함께 하는 방식을 배우자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오늘도 함께 하는 방식을 배워가는 삶은 미숙하지만 의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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