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7일.
먼 타지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만큼 설렌다.
이 두 가지 모두라면 얼마나 더 설렐까?
비록 다음 주에 바로 시험과 발표가 있었지만, 이모가 빌바오와 나름 가까운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오신다니 같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먼 타지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들. 이모 버프를 받으며 바르셀로나 곳곳을 여행하는 상상에 잠을 거의 못 이루고 아침 비행기를 탔다.
공항버스를 타고 서둘러 도착한 에스파냐 광장. 바르셀로나가 빌바오보다 훨씬 큰 도시라는 것이 광장에 다다르자마자 느껴졌다. 멋진 로터리의 동상과 몬주익 분수대로 가는 길목의 높은 쌍둥이 탑. 정신 바짝 차리고 다녀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신호등 앞에서 우연히 뒤를 돌아본 이모와 갑작스럽게 만났다. 역시 보자마자 서로 함박웃음부터 나온다.
프랑스를 거쳐 스페인 남부까지 여행하고 있는 진이이모와 다온이. 이모는 여전히 활기차고 다온이는 여전히 덤덤하다.
우리가 처음으로 간 곳은 '톱니바퀴 산'이라는 의미를 가진, 천재 건축가 Antoni Gaudí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던 멋진 바위산 몬세라트(Montserrat)이다.
에스파냐 광장 기차역에서 바르셀로나 근교인 몬세라트까지 가는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데, 역무원 분들이 친절하게 방법을 설명해주셨다. 역시 큰 관광지답다.
1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다시 산악열차를 갈아타며 도착한 몬세라트 수도원. 올라가는 길목에 꿀과 치즈 같은 특산품을 파는 사람들이 마치 우리나라 산기슭의 상인 행렬을 생각나게 했다.
길을 못 찾아 헤매다가 겨우 들어간 수도원. 사람들이 이 수도원을 많이 찾는 이유는 몬세라트에서 발견된 검은 마리아상을 보기 위해서도 있지만, 세계 3대 소년 성가대로 알려진 Escolania의 합창을 듣기 위해서도 있다. 우리도 합창을 보기 위해 날짜를 맞춰 왔는데 10분 정도 늦게 도착했더니 그새 왔다 갔는지, 그렇게 기대한 성가대는 온데간데없었다.
수도원 중앙의 검은 성모상도 밖까지 줄이 길게 서 있었고, 성가대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낙담한 우리는 그냥 수도원 내부만 슬슬 구경하고 나왔다.
하지만 실망도 잠시, 수도원 밖의 멋진 바위산을 배경으로 포토타임을 가졌다.
'그까짓 성가대!'라고 생각하며 더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해 몬세라트 정상 부근으로 푸니쿨라를 타고 갔다.
햇볕이 내리쬐는 몬세라트 정상에서 멋진 바위들과 더 가까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모든 자연물에 직선은 없다."라고 주장했던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 그의 말처럼 바위들은 마치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한 곡선의 웅장한 형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렇게 둥근 모양이 되기까지 바위들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려 서서히 변화를 겪었을까.
가우디의 신앙심과 영감을 주었다고 하는 이 풍경이 후에 구경할 그의 건축물에 모두 고스란히 녹아있다.
몬세라트는 푸니쿨라를 타고 금방 왔다가는 관광객이 많지만, 직접 발로 올라오는 등산객들도 많다.
산을 좋아하시는 엄마 아빠도 같이 오셨더라면 정말 좋아했을 텐데... 대신 영상통화로 이곳의 풍경을 조금이나마 전해드리고 산을 내려왔다.
먼 거리를 다녀오느라 지쳐버린 우리는 호텔에서 조금의 휴식을 갖고 저녁을 먹으러 출발했다.
미리 친구에게 받은 바르셀로나 맛집 목록에서 찾은 레스토랑 Les Quinze Nits. 저렴하면서도 고급진 요리로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맛집으로 소문나서, 한국어로 된 메뉴판까지 있을 정도다.
직원분들도 친절하고, 밖에서 먹는 식사 분위기도 좋고, 나오는 음식 하나하나가 너무 맛있었다.
상큼한 과일향이 풍부하게 녹아있는 샹그리아는 처음 도전한 이모의 입맛을 충분히 만족시켰다. 스페인에서 두 달 가까이 살고 있지만 제대로 먹어보지 못했던 해물 빠에야도 이곳에서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몬세라트에서의 여독을 이곳에서 먹으면서 전부 다 풀어버린 듯했다.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고 이제는 멋진 야경이 되어버린 거리를 구경했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 중 하나로, 스페인 유럽풍의 정취가 남아있는 고딕지구의 레이알 광장(Plaza Reial)에는 가우디가 만들었다는 가스 전등이 하나 세워져 있다. 역시 전등 하나도 독특한 디자인으로 만들었다.
고딕지구를 구경하면서 이런 아름다운 밤의 거리를 매일 볼 수 있는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넓은 도시와 북적이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정신없고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하지만, 멋진 도심 속 활기찬 사람들의 기운을 한껏 받은 듯했다.
바르셀로나 거리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있는 가우디의 건축물.
오늘은 그의 흔적을 따라 아침 일찍부터 가우디 투어를 했다.
어제저녁에 까탈루냐 독립 반대 시위가 있을 예정이라고 들어서 혹시나 여행 일정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직 교통도 원활하고, 순조롭게 가우디 투어가 진행되었다. 가족, 학생, 연인, 회사 동료 등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듣는 가우디 투어는 가우디의 드림타운, 구엘 공원(Parque Güell)에서 시작된다.
구엘 공원은 본래 주거단지를 조성하려고 했던 대부호 구엘의 원조로 가우디가 만들기 시작했지만, 상수도 공급 문제와 위치적 단점으로 인해 실패하고, 바르셀로나 시에 넘겨져 공원으로 조성된 장소이다.
일반 아파트 단지였을 텐데도 독특하고 자연적으로 건축하려 했던 가우디의 노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공사 현장에서 나온 쓸모없는 돌들을 그대로 이용해 필로티 등 산책로의 휴식공간을 만들었다는 점, 곡선으로 건물을 짓기 위해 도자기를 깨 모자이크 형식으로 붙여 장식하는 까탈루냐 전통 트렌카디스(Trencadis) 기법, 인부들의 허리 형태를 실제로 하나하나 본따서 만들었다는 벤치, 구엘 공원의 마스코트이자 사실은 도마뱀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진 그리스 신화의 용 분수까지.
주거단지 조성 계획이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모습은 과연 어땠을까.
약 100년 전 가우디가 살던 시절에는 이상하다며 손가락질받았을 수도 있지만, 지금이라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독특한 동네가 되었을 것이다.
다음은 바르셀로나 쇼핑의 천국 람블라스 거리 쪽에 있는 까사 밀라(Casa Mila)와 까사 바트요(Casa Batllo)를 구경하러 갔다.
까사 밀라는 부호 밀라와 그의 부인이 가우디에게 의뢰해 지어진 건물이다. 바다가 넘실대는 모양을 나타낸 곡선, 바다의 하얀 모래를 닮은 집 색깔, 바닷속을 연상시키는 내부구조. 하지만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 집이 놀림거리가 되었고, 밀라의 부인은 독특하게 지어진 집을 끔찍이도 싫어해서 집 내부 구조를 전부 바꿔버렸다. 하지만 스페인 은행 Caixa Bank의 소유가 된 현재는 내부구조를 건축 당시 그대로 복원하였고, 위층은 현재도 연립주택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내부 입장료는 약 20유로. 너무 비싸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거리 한가운데 하얗고 넘실대는 까사밀라는 매번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거리를 조금 더 걸어가면 까사 밀라보다 더 괴기스러워 보이는(!) 까사 바트요가 나온다. 가우디는 이 건물에 기사 조르디가 제물이 될 공주를 구하기 위해 창으로 용을 찔러 죽였다는 옛 신화 이야기를 그대로 담아냈다.
사람의 뼈를 닮은 외부 기둥, 두개골 모양의 테라스와 척추 뼈처럼 생긴 지붕 처마, 건물 맨 위 쓰러져있는 용을 형상화한 지붕까지... 섬뜩해 보이는 집이지만 의뢰자 바트요 씨는 정말 좋아했다고 한다. 어떻게 돌을 사용해서 이렇게 자신의 생각 그대로, 아름다운 곡선의 집을 만들 수 있는지. 정말 가우디는 천재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의 웅장한 모습을 보는 순간, 가우디가 천재라는 생각은 확신이 되었다.
가우디가 자신의 모든 재산과 말년을 바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그가 죽은 이후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기부에 의해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생전 직접 작업한 성당 정면의 '영광의 파사드'에는 예수님의 탄생 스토리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완벽주의자인 가우디는 건축당시 실제 사람의 얼굴을 본떠(심지어 갓난아이의 얼굴까지 본을 떴다고 한다.) 모든 장식을 만들었다고 한다.
성당 후면은 가우디의 유언에 따라 후세의 건축가가 자신의 건축물을 장식할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
영광스러운 일을 맡게 된 건축가 조셉 마리아 수비라치는 정말로 자신의 개성을 한껏 담아 '수난의 파사드'를 만들었다. 수난의 파사드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고난을 받는 과정을 성당에 그려냈다. 기하학적인 형태를 좋아하는 나는 개인적으로 수난의 파사드가 마음에 들었다.
성당 내부는 마치 우주를 담아낸 듯한 모습이었다.
별이 빛나는 것 같은 천장과 그 옆을 지탱하고 있는 수정 결정 모양의 기둥들, 해돋이와 노을을 계산해서 만든 빨강, 초록 색색의 스테인드 글라스. 미사를 드리러 오는 모든 사람들이 이 풍경에 넋을 잃어서 기도하는 것조차 잊어버릴 것만 같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말 그대로 가우디의 혼을 담아낸 것 같았다. 가우디가 죽은 지 100년이 되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완성된 모습은 과연 어떨지 나중에 꼭 와서 확인해봐야겠다.
빡세게 돌아다닌 가우디 투어가 끝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성당 근처의 타파스 식당 Singular를 찾았다. 일찍부터 일어나 걸어다녀서 지치고 힘들었는데, 그 가운데 먹은 이베리코 흑돼지 스테이크와 지중해 파스타는 정말 꿀맛이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 꿀맛 같은 낮잠을 자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멋진 조명과 분수가 켜져 있는 까탈루냐 광장과 낮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까사 바트요, 길거리의 그저 예쁜 가로등 벤치에서 사진을 찍으며 맛있는 해산물 식당 'La Paradeta'로 향했다.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찾아간 식당 문을 열자마자 오징어, 새우, 조개, 랍스터까지 싱싱해 보이는 해산물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걸크러쉬 언니들이 숭덩숭덩 담아주는 해산물을 뒤로하고 자리에 앉아 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굽고 튀기고 쪄서 바로 나온 우리의 메뉴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꼴뚜기 튀김은 맥주와 환상궁합인 데다가 간이 삼삼하게 잘 된 쫄깃한 맛조개, 담백한 갑오징어, 삶은 문어에 파프리카 향신료를 뿌린 Pulpo a feira까지.
더 먹고싶은데... 런던 아침식사 이후로 작은 위장을 가진 나 자신이 다시금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배 터지게 식사를 마치고 산책 겸 들른 장소는 세계 3대 분수쇼 중 하나로 유명한 몬주익 분수(Font de Montjuïc)이다. 음악에 맞춰 아름답게 쏟아지는 분수를 보러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역시 사람들은 분수를 좋아한다. 물이 높이 솟구쳐 오를 때마다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기분이어서일까.
음악소리는 크지 않아 잘 들리지 않았지만, 색색의 조명과 함께 포물선을 그리면서 다양한 방향으로 퍼져나가는 물줄기는 많은 사람들의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만들었다.
황홀한 야경을 구경하면서 바르셀로나의 아름다운 마지막 밤을 보냈다.
새벽 6시 30분, 이모와 다온이가 다음 여행지인 세비야로 출발하기 위해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하룻밤을 보낸 사이에 유럽의 Summer Time이 끝나고 한국과의 시차가 8시간이 되었다.
오늘 바르셀로나 곳곳에서는 최근 까탈루냐의 독립을 선포한 데 대해 반대 시위가 있을 예정이어서 교통이 불편할 것이라는 소식도 있었다. 혼자 남겨진 나는 호텔에서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무리한 일정 대신 거리를 걸으며 천천히 피카소 미술관으로 향하기로 했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중에 우렁찬 함성소리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까탈루냐의 기 'Estelada'를 두르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별이 없는 빨강과 노랑 줄무늬 에스텔라다를 가진 사람들은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시민들이다. 줄곧 독립시위만 뉴스로 봐왔지만, 반대시위도 그에 못지않게 크게 열렸다. 모든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독립을 원하지는 않나보다.
바르셀로나는 큰 도시인만큼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독립을 선포한 까탈루냐의 바르셀로나가 이제 어떤 국면으로 접어들지, 시위를 구경하며 발을 옮겼다.
피카소 미술관은 스페인이 낳은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유년시절부터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에 머물 당시 그렸던 습작들을 전시해 놓았다.
국제학생증을 가진 학생이라면 미술관의 모든 전시실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드디어 나의 국제학생증이 빛을 발하는 순간..!! 5유로를 내고 대여한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천천히 피카소의 작품을 관람했다.
촬영은 금지라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10대 소년에 불과했던 피카소가 노련한 화가 수준의 그림을 연습 삼아 그려낼 수 있는지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며 구경했다. 시간이 흐르며 여러 사상과 문화에 영향을 받아 바뀌는 그림체와 형식은 어느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입체파 그림이 되었고, 이곳에 있는 많은 습작들이 지금의 유명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은 데다가 시위 때문에 교통도 불편하고...
결국 다른 곳을 들러보려는 계획을 지워버리고 여유롭게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공항으로 일찍 돌아가기로 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츄러스 맛집 Xureria는 개인적으로 산탄데르에서 먹었던 츄러스보다는 별로였다;; 생각난 김에 츄러스 먹으러 다시 산탄데르에 가야겠다.
시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공항으로 가는 버스는 정상 운행하길래 3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면세점을 구경하다가 느긋하게 비행기에 올랐다. 해돋이를 보며 도착했던 바르셀로나는 돌아갈 때는 아름다운 무지갯빛 석양을 보여주었다.
그리웠던 사람들과 함께했던 멋진 바르셀로나 여행,
이모의 배려 덕분에 고급진 여행을 즐겼다.
넓은 바르셀로나의 외곽까지 가지 못한 곳이 많이 있었지만,
오히려 아쉬움 없이 다음을 기약하며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