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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용이랑 conmigoYY Aug 12. 2020

신사의 나라 영국, 나 홀로 런던 돌아보기

2017년 10월 6일.

처음 가 보는 영국은 매우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여행이었다.

같이 가는 친구들끼리 이번에는 각자 여정을 짜서 따로 돌아다니거나, 여행지가 겹치는 사람들끼리 다니자고 미리 입을 맞춰두었다. 학기가 끝나고 약 2~3주 동안 혼자 여행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이번이 나 스스로 여행 일정을 짜고 안전하게 돌아다니는 연습을 할 수 있는 첫 기회였다.


원래 목요일 밤 10시에 출발하는 비행기였지만, 1시간가량 딜레이 되는 바람에 결국 금요일로 넘어가고 나서야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갈 수 있었다. 나는 정말 비행기에 마가 낀 것이 분명하다.

스탠스테드 공항에서 런던 시내까지는 정말 먼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기차나 전철은 끊긴 상태. 여행 당일까지 숙소 사장님이 권하는 택시를 고민하다가 결국 타자고 결정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모두들 아침 일찍 일어나 각자의 일정대로 움직였다. 나는 미리 알아본 대로 런던 패스를 끊으러 가기 전 영국의 대표음식인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먹으러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Regency Cafe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서서 아침식사를 먹는 리젠시 카페. 오픈은 7시부터이다

살짝 늦잠을 자버린 탓에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토스트에 소시지와 베이컨, 베이크드 빈스와 구운 토마토 그리고 졸음을 깨우는 진한 홍차까지.


미현언니와 주훈오빠도 같이 온 덕분에 블랙 푸딩, 해쉬브라운 등 여러 가지를 추가해서 같이 먹을 수 있었다. 맛집답게 양도 푸짐하고 모든 재료가 신선한 맛이었다. 첫날부터 예감이 좋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English Breakfast. 나처럼 입이 짧은 사람에게 이 푸짐한 아침식사는 다 먹지 못해 슬플 뿐이다

이제부터는 혼자서 런던 패스를 수령하러 데스크로 향했다. 영국의 러시아워는 역시 심하긴 한가보다. 교통체증에 버스가 오지 않아 그냥 발 빠르게 걸어서 도착했다.

런던 패스(London Pass)는 신청한 일정 기간 동안 런던 브릿지, 웨스트민스터 사원, 유람선 투어 등 런던의 주요 명소를 무제한 관람할 수 있는 투어패스이다. 명소마다 표를 구매할 필요도 없고 빠르게 입장할 수 있어 미리 인터넷으로 예매해왔다.

런던 패스 안내데스크의 지하로 내려가서 바우처를 보여주면 런던 패스와 가이드북, 카드 목걸이를 받을 수 있다. 내가 주문한 런던 패스는 단 1일권. 오늘 하루 안에 입장권이 필요한 주요 관광지를 최대한 많이 구경해서 뽕을 뽑아야 한다!!

비수기인 10월인데도 길게 줄을 서서 들어가야 했다. 영국은 역시 사람이 많다

첫 번째 명소는 입구를 못 찾아 헤매다 겨우 들어간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

22파운드나 되는 입장료를 런던 패스로 끊고 한국어가 지원되는 오디오 가이드도 무료로 받아 들어갔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국의 왕 헨리 3세가 에드워드 수도원을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 재탄생시킨 성공회 성당이다. 1066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모든 왕과 왕비의 대관식 등 중요한 의식이 모두 이곳에서 열렸고, 영국의 왕족들과 위인(과학자 뉴턴과 찰스 다윈, 음악가 헨리 등)들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혀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내부에서는 사진과 비디오를 찍을 수 없다
대신 웨스트민스터 사원 홈페이지에서 이미지를 다운받을 수 있다 (내부사진 출처-www.westminster-abbey.org)

사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올 때까지 내부의 화려한 건축양식과 장식들, 책에서만 보았던 역사적 인물들의 무덤과 하나하나 의미가 담겨있는 예배당을 구경하면서 황홀함을 감추지 못했다.

웅장한 사원의 모습을 보면서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성가를 듣는 순간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나 홀로 투어 첫 번째부터 깊은 인상을 받고 사원 앞의 선착장으로 유람선을 타러 나왔다. 런던 패스를 가진 사람이라면 City Cruise에서 운영하는 유람선을 무료로 탈 수 있다.

시간표를 확인하고 기다리는 동안 북적이는 웨스트민스터 다리 위에서 우연히 언니 오빠들을 만나 반갑게 사진을 찍었다.

유람선을 타고 템즈 강을 거슬러 런던 타워까지 약 30분가량 투어를 했다. 가는 동안 강 주변에 있는 대관람차 런던아이, 밀레니엄 브릿지, 더 샤드 등 많은 명소들을 구경할 수 있는데, 특히 강 한가운데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는 타워브릿지가 인상적이었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런던아이와 해군전함 HMS 벨페스트, 그리고 타워브릿지

타워브릿지까지의 투어를 마치고 유람선에서 내려 서둘러 런던 탑으로 향했다.

런던 타워(The Tower)는 중세 영국을 지키기 위한 요새와 포로, 왕족들을 가두어 두는 교도소의 역할을 했던 건축물이다. 가장 높이 솟아있고 또 잘 알려진 화이트 타워는 노르만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건물 내부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옛날 무기들과 조공품 등이 전시되어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타워브릿지 전망대를 갈 걸 약간 후회가 되었지만, 공원처럼 넓은 요새를 돌아다니며 잠깐의 여유를 가졌다. 

요새 너머로 멀리 보이는 타워브릿지. 런던 탑의 까마귀가 떠나면 런던에 흉조가 든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런던 타워를 돌아본 후, 세인트 폴 대성당(Saint Paul Cathedral)을 향해 버스를 타고 갔다. 시간에 쫓기며 다니는 나 홀로 투어의 마지막 코스이다.

세인트 폴 대성당은 1666년 런던 대화재 때 소실된 것을 도시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이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살려 복원해 오늘에 이른 건축물이다. 가장 유명한 부분은 높이 100m 이상에 달하는 중앙 돔으로, 사도 바울의 생애가 흑백 벽화로 그려져 있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돔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속삭이는 방(Whispering Gallery)에는 벽에 대고 속삭이면 반대쪽에 있는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과학적인 건축기술이 담겨있다고 한다.

세인트 폴 대성당도 역시 내부 사진 촬영 금지 (내부사진 출처-www.stpauls.co.uk)

우연한 기회에 오후 5시에 이뤄지는 성가 합창을 볼 수 있었다. 나이 어린 소년부터 지긋하신 아저씨까지 다양한 연령으로 이루어진 성가대가 우리가 앉아있는 중앙 돔부터 제단까지 노래를 부르며 걸어 나왔다.


가까이서 실제로 듣는 성가대의 목소리가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소년들의 때 묻지 않은 목소리가 나뿐만 아니라 성당 안의 모든 관광객의 마음을 경건하고 황홀하게 만들었다. 

점심도 못 먹고 구경했지만, 마음만은 아직 배가 불렀다.

저녁은 영국 커리를 맛보러 Masala Zone이라는 인도 음식점으로 향했다.

날씨가 추워서 덜덜 떨면서 안으로 들어갔지만, 예약이 꽉 차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 같이 먹기로 한 언니 오빠들의 뮤지컬 시간 때문에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는데, 다시 이야기해보니 소파 테이블이 아닌 입구 쪽 테이블에서는 바로 식사가 가능하다고 해서 빨리 자리를 잡았다.

내가 주문한 Butter Chicken과 난, 인도 레모네이드 Nimbu Pani

코코넛 밀크를 넣어서 담백하고 독특한 맛의 커리. 향신료 때문인지 다 먹고 난 뒤에 열이 확 올라왔다. 님부 파니는 인도의 향이 풍기는 레모네이드? 굉장히 독특한 맛이었다.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간 음식점이었지만 런던 답게 비싼 저녁식사 가격에 놀랐고, 카운터의 백인 여직원은 성의 없고 눈치를 주는 것 같았다. 마치 레스토랑에 어울리지 않는 돈 없는 여행객을 홀대하는 느낌이랄까.

우리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남자 직원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엽서로 감사함을 전하고 음식점을 나섰다.

팁도 줬어야 했는데..

런던의 브로드웨이인 코벤트 가든의 웨스트엔드 거리에는 밤이 되면 뮤지컬 광고판으로 화려하게 빛난다

저녁식사 후, 시간이 없어서 낮에 보지 못했던 현대미술관 Tate Modern에 갔지만 피곤하고 기분도 좋지 않아서 제대로 구경하지는 못한 것 같다.

테이트 모던의 상설전시관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백남준 작가를 포함해 세계 여러 나라 작가의 현대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이해력이 부족한 나는 역시 미술관이 아닌 박물관 체질이다.

테이트 모던 10층에는 카페와 런던 시내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저 멀리 제2롯데타워 같은(!) 더 샤드와 템즈 강 위에서 빛나는 다리들, 불이 훤하게 켜져 있는 많은 마천루들을 보면서 잠시 힐링타임을 가졌다.

테이트 모던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런던 야경도 멋지다

숙소에 모여서 각자 간단하게 오늘의 하루를 이야기하면서 런던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했다. 나는 여유 없이 바쁘게 돌아다닌 데다가 날씨가 스페인보다 훨씬 추워서인지 감기 기운이 있어 일찍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날씨가 정말 좋았던 어제와는 달리, 먹구름이 잔뜩 낀 둘째 날이다.

날씨도 안 좋으니 대영박물관에 가서 실컷 관람이나 하고 오자는 생각에, 오늘은 여유롭게 숙소를 나섰다.  박물관까지 2층 버스를 타고 가는데 어느새 2층 자리에 우리만 남아서 신나게 사진을 찍으며 갔다.

2층버스의 핫스팟은 맨 앞자리
파르테논 신전을 연상케 하는 대영박물관 입구

대영 박물관(The British Museum)에는 전 세계 각국에서 입수한 유물들이 시대별, 나라별로 전시되어있다. 그 많은 유물들을 크기나 특징에 맞게 어떤 것은 크고 웅장하게, 어떤 것은 이야기를 읽듯이 이어지도록 구조를 잘 맞춰놓았다.


사람이 워낙 몰린 데다가 많은 전시실을 다 돌아볼 수는 없어서 가장 관심 있었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전시실을 중심으로 관람했다. 다음에 또 올 기회가 된다면 6파운드로 대여할 수 있는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조용하고 여유롭게 박물관을 관람하고 싶다.

그리스, 이집트, 페르시아, 일본 등등 전 세계의 유물이 이곳에 전시되어있었다 (얼마나 훔쳐온 거야)

점심때가 지난 애매한 시간에 싸고 맛있어 보이는 메뉴를 찾아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그냥 들어간 Wok on Fire밥이 먹고 싶어서 굴소스와 간장소스, 소고기 토핑이 들어간 볶음밥을 주문했다.
그 자리에서 재료들을 담아 바로 볶아서 내주는데, 양도 많고 소스의 조합이 성공적이었다. 고급진 학식을 먹는 것 같은 익숙한 맛에 금세 행복해졌다.

값싸고(그래 봤자 9000원) 정말 맛있었던 Wok on Fire의 아시아 퓨전 볶음밥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어제 못 본 버킹엄 궁전을 보러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와 그린파크를 가로질러 갔다.
대형 전광판이 인상적인 피카딜리 서커스는 기대와는 달리 그저 큰 거리의 한 복판이었고, 버킹엄 궁전 바로 옆에 있는 그린파크는 정말 사방이 초록색으로 둘러싸인, 가을이 잘 어울리는 낭만적인 공원이었다.

피카딜리 서커스와 그린파크. 런던다운 길거리 풍경

버킹엄 궁전 앞은 근위병 교대식이 없는 흐린 날에도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빅토리아 기념비 앞에서 궁전을 바라보다 성민이와 함께 세인트 제임스 파크로 이동했다.

멀리 보이는 버킹엄 궁전과 런던아이가 인상적인 세인트 제임스 파크는 동물들의 천국이다. 지나가는 사람들 바로 옆에 오리들이 돌아다니고 도토리를 까먹는 다람쥐를 몇 마리씩 볼 수 있었다.


어제 힘들게 돌아다닌 피로가 아직 풀리지 않은 탓일까, 갑자기 피곤해져서 혼자서 숙소로 돌아가서 저녁까지 휴식을 취한 후에 밤에 다시 나오기로 했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공원에서의 사진

푹 자고 다시 일어나 숙소를 나섰다. 비도 오고 살짝 귀찮았지만, 런던의 마지막 야경을 봐야 했고 영국의 대표음식 Fish & Chips도 꼭 먹어야 했다.

런던 타워 입구 바로 옆, 테이크아웃 컨테이너에서 파는 피시 앤 칩스를 사서 타워브릿지로 향했다.

런던 타워 앞 테이크아웃 가게에서 처음 피시 앤 칩스를 맛보다

타워 브릿지가 보이는 런던의 야경을 바라보며, 나무에서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먹는 피시 앤 칩스의 맛은 환상적이었다. 식초를 살짝 뿌려 느끼한 맛을 없애고, 담백하고 부드러운 대구와 아직 따뜻하고 바삭한 튀김옷이 정말 잘 어울렸다.

비를 맞으며, 야경을 즐기며 먹는 피시 앤 칩스의 맛이란..!

정신없이 먹다가 다리를 보니, 어느새 타워브릿지가 열려있었다.
대형 유람선이 지나다닐 때마다 볼 수 있는 타워브릿지의 도개 장면을 우연찮게 보게 되다니, 시간이 맞지 않아서 못 볼 줄 알았는데 행운이었다.

런던 여행의 마지막인 만큼 영국의 풍경을 충분히 눈과 카메라에 담아두고 숙소로 돌아가 친구들과 장 본 음식들을 나눠먹으며 밤을 보냈다.

황홀한 타워브릿지 앞 전경
길고도 짧은 런던 여행이 끝났다.
신사의 나라 영국은 한없이 젠틀하진 않았지만,
처음으로 혼자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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