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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용이랑 conmigoYY Jan 19. 2020

프랑크푸르트 공항 체류 이틀째

2017년 8월 26일.

이제 진짜 빌바오로 가기 위해 조식을 먹고 일찍 공항으로 나섰다.

호텔 조식은 항상 마음을 설레게 한다. 빵이면 빵, 한 가지 메뉴로 간단하게만 해결하던 보통 때와는 달리 샐러드나 햄, 시리얼 등 이것저것 챙기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아침부터 과식을 하게 된다.


오전 11시 25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게이트에서 기다렸다. 석연찮았던 것은 비행기 편이 오버부킹 되어 자리가 확약되지 않은 티켓이었다. 자리가 나지 않는다면 다음 비행기를 기약해야 했다.

빌바오로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당연히 갈 수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웬걸, 끝까지 자리가 나지 않은 채로 탑승이 끝나고 말았다.

아침의 호텔 뷰

비행기를 떠나보내고 답답한 마음에 친구가 게이트 직원에게 따졌다. 우리 말고도 비행기를 못 탄 사람들이 수두룩했지만 직원의 말은 하나같이 "탑승은 이미 끝났으니, 서비스센터로 가서 말해보세요."였다.

그렇게 서비스 센터로 갔더니, 바로 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고 앞에서 직원들이 어떻게든 사람들을 걸러냈다. 아주 심각한 상황이 아닌 사람들을 빼내려고 무작정 그러는 것 같았다.

여기 말고 탑승 게이트에 가서 기다리던지,
출국장을 빠져나가서 카운터에서 다시 예약하세요.

할 수 없이 다시 예약을 하기 위해 메인 카운터로 갔다. 오버부킹으로 재예약을 하기 위한 사람들이 넘쳐나 거의 2시간 가까이를 또다시 기다렸다. 그동안 체크인 현황을 살펴봤는데, 아무리 봐도 오늘 비행기 편은 모두 자리가 꽉 차서 오늘 안으로도 빌바오에 가지 못할 것 같았다. 차라리 언제든 좌석 확약된 비행기를 끊어달라고 하고, 하루 프랑크푸르트를 여행하면서 놀면 어떨까? 점점 빌바오 가기를 포기하게 되는 우리들이었다.


그런데 카운터에서는 오늘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거라고 오후 4시 표를 끊어줬다.

"Are you sure?" 정말이냐고 못 믿겠다고 말해도 막무가내로 자기를 믿으라고, 무조건 된다고 하니... 결국 자리 확약된 비행기 표는 끊어보지도 못하고 다시 4시 항공편 게이트로 향했다.


그리고 아까와 똑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졌다. 게이트에서 어떻게 타야 되냐고 물어봐도 무조건 기다려라, 기다려라 하더니, 표 가진 사람들이 다 가고 나니 "여기는 탑승 끝났고 자리 안 났으니까 서비스센터로 가서 다른 비행기 예약하거나 하세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비행기를 놓치게 하고선 똑같은 말만 계속 되풀이하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비스센터에서는 카운터로 가라고 하고, 카운터에선 게이트로 가라고 하고 게이트에선 서비스센터로 가라고 하면 어쩌라는 거야?" "아까 카운터에서 분명히 탈 수 있을 거라고 들었다!" 아무리 말해도 대답은

That is not my business.
너희가 무슨 말을 들었든 간에 이미 탑승은 끝났고,
자리가 없는 것은 내 소관이 아니니 서비스센터로 가봐라.

이때부터 나는 이 '낫 마이비즈니스'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따지는 걸 잘 못하는지라 줄곧 뒤에서 듣기만 했던 나도 이제는 가만있을 수 없었다.

직접 서비스 센터 안으로 들어가서 처음부터 사정 설명을 하고 조치를 취해보기로 했다. 역시나 처음처럼 무슨 일이냐며 앞에서 우리를 막아섰다. "We already missed two flights today!" 비행기 두대나 날렸다고 씩씩거리자 그제야 들여보내 준다.


회화는 위기상황에 놓였을 때 급속도로 는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긴장돼서 영어로 질문도 잘 못했었는데, 직원 앞에 서자마자 나는 지금까지의 고충과 불만을 죄다 토해냈다.

"안녕, 우리는 서울 인천공항에서 출발해서 이곳을 거쳐 빌바오로 가려던 승객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어제 비행기가 도착 지연돼서 빌바오행 비행기를 못 탔고, 오늘 항공권은 죄다 오버부킹 돼서 우린 오늘 비행기를 벌써 두대나 날려버렸어. 그니까 나는 당장 우리 모두의 자리 확약된 비행기표를 요구한다!"

직원이 정말 미안해하면서 다음날 오전 비행기로 확약된 표와 석식, 조식이 포함된 숙소 예약까지 해주었다.

또 다른 숙소로 가는 공항버스 안에서

고생 끝에 얻어낸 값진 수확. 처음으로 낯선 외국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뿌듯함과, 드디어 지긋지긋한 공항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숙소로 가는 동안 짜증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아직 저녁이니 밥을 먹고 프랑크푸르트 시내 구경을 짧게나마 하자고 했지만, 방으로 돌아오자 하루 종일 쌓였던 피로와 스트레스가 몰려와 7시부터 뻗어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이틀 가까이 체류했지만 공항 구경만 실컷 하고 정작 관광은 하지도 못한 애증의 프랑크푸르트.

교환학생을 떠난 초장부터 다시없을 위기였지만 지금까지도 그때의 장면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유창하게 직원에게 요구와 불만을 토로하던, 조금은 과장된 나에 대한 뿌듯한 기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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