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케어센터와 돌봄의 손길

by 김영연

엄마가 낮 동안 가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이른바 노치원, 데이케어센터라고 불리는 곳이다. 처음 한 달 정도 집에서만 엄마를 돌봤을 때, 이것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처럼 사회적 돌봄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함께 버틸 수 있다는 것, 이런 제도가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토요일은 오후 네 시에 엄마가 돌아오고, 주일에는 우리가 온종일 엄마를 돌봐야 한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와 주말만 되면 엄마를 어떻게 모실지 늘 고민해야 한다. 주말 전담 도우미를 구하라는 조언도 들었고, 밤에 엄마와 함께 잘 ‘동반자 돌보미’를 찾으라는 말도 들었다. 더구나 명절이나 연휴가 길어지면, 나는 먼저 겁부터 났다. 하루하루 엄마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뚜렷한 대책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급할 때를 대비해, 수면제라도 챙겨 두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처음에는 주말이야말로 엄마에게 평소에 해드리지 못한 것을 해 드릴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여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새로운 곳에 모시고 가는 일이 엄마에게는 거의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아니, 의미의 문제가 아니라 위험과 걱정이 더 컸다. 어디를 가든 가만히 계시지 못해 금방 돌아와야 했고, 화장실을 간다고 사라져 놀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큰 빌딩 안에서 엄마를 잃어버릴 뻔했던 날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다행히 화장실에서 엄마를 찾았지만, 그 순간 ‘이 넓은 건물을 어떻게 뒤지고 다녀야 하나’ 싶어 다리가 풀렸다.


그런 엄마를 데이케어센터에서는 하루 종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붙들어 주신다. 혼자 돌봄을 할 때는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지만, 센터에는 여러 선생님들이 계시니 비교가 되지 않는다.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는 엄마도 잘 따라하지만, 오후만 되면 “집에 가야 한다”며 난리를 피운다고 했다. 그러면 선생님들이 달래고 달래다가 안 될 때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지금 집에 가고 싶어 빨리 데리러 와” 말씀의 반복이었다.
나는 “엄마, 아직 데리러 갈 시간이 아니에요. 지금은 멀리 있어서 시간이 조금 걸려요. 여섯 시에 갈 테니까 그때까지 선생님 말씀 잘 들으세요”라고 설득하지만, 엄마는 듣지 않았다.

“지금 당장 데리러 와라.” 가끔은 그럼 볼일 보고 오라고 하기도 했다.

어떤 날은 센터에 손님이 왔으니 수박을 몇 덩이 사오면 좋겠다고도 했다. 이 장면은 거의 매일 반복된다. 선생님들께 얼마나 힘이 드는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마를 마중 나가면, 먼저 선생님들의 얼굴빛부터 살피게 된다. 얼마나 수고가 많으셨을까 하는 마음에,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돌아왔다.


그래서 아침마다 엄마를 센터에 모셔다 드리면서 다짐을 받곤 했다.

“엄마, 내가 여섯 시에 모시러 갈 테니까 그때까지 잘 계셔야 해요. 전화해 달라고 하면 안 돼요. 센터의 어떤 할머니는 매일 빨리 집에 가겠다고 선생님들을 힘들게 한다네요. 엄마 센터에도 그런 할머니 계세요?” 그러면 엄마는 잠시 듣고 있다가

“그게 내 이야기네.” 하고 얼버무리듯 말할 때도 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묻었다.
“엄마, 오늘도 왜 빨리 집에 오겠다고 선생님께 전화를 여러 번 하셨어요? 선생님들 힘드세요.” 그러면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내가 언제 전화해 달라고 했노.”하며 시치미를 뚝 떼셨다.


어디를 가나 분위기를 밝게 하고, 모두에게 웃음을 주던 최긍정적인 우리 엄마가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있는 것 같아,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겠다.

“오늘부터는 좀 좋아질 수도 있어요.” 구차한 변명을 해본다. 날씨가 차가워서 그런 건지, 약을 바꾼 후유증 때문인지 집에서도 제대로 잠을 주무시지 못하시던 며칠이 있었다. 기력이 떨어지고, 의욕이 전혀 없는 날이 계속되다가 조금씩 회복되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루 종일 엄마를 돌봐 주시는 데이케어센터에서 언젠가 “이제 더 이상 오지 마세요”라고 하실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런 순간이 오면, 나는 혼자서는 엄마를 감당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내려놓고 요양원으로 모셔야 할 것이다.


얼마전에 막내 이모부께서도 집에 오셨다.

엄마에게 “딸을 힘들게 하면, 할머니 친구들이 많은 곳, 요양원에 가셔야 해요.” 하지만 엄마는 단호했다. 자식들이 자신을 요양원에 보냈다고 남들에게 창피를 당하면 안 된다며, 요양원은 절대 가지 않겠다고 했다. 요양원 가는 일조차 자식들의 체면을 생각하는 엄마이지만, 언젠가는 어쩔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을 대비하며, 나는 하루하루를 그렇게 미루면서 견뎌가고 있다.


하루는 엄마를 전담으로 돌봐주는 젊은 복지사님이 카톡을 보내왔다. 얼마나 귀여운 발상이고 고마운지 냉장고에 붙여 두었다.


보호자님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어두워서인지 어르신께서 귀가 희망을 평소에 비해 많이 하셔서 고민을 하다

혹시 편지처럼 글을 드리면 좋을까 싶어서

이런 식으로 적어 드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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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란 어르신


오늘은 여기 경로당 같은 곳에 잠깐 와 계시는 날이에요.

얼마 전에 혼자 다니시다가 넘어지셔서 크게 다치신 적이 있어서, 딸이 많이 걱정을 했어요.


딸은 일을 해야 해서 하루 종일 곁에 있을 수가 없어서

일하는 동안만이라도 사람들이 있는 곳에 안전하게

함께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래서 잠깐만 여기에서 쉬었다가,

딸 일이 끝나면 다시 만나기로 한 거예요.


어르신을 혼자 두려는 마음이 아니라,

다치실까 봐 너무 걱정이 되어서 이렇게 한 거예요.

여기 계신 동안은 편하실 때 쉬시고, 이야기도 나누시고,

차도 한 잔 하시면서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딸은 항상 어르신을 생각하고 있고,

오늘도 어르신 걱정하면서 일하고 있어요.


조금만 계시다가,

다시 웃으면서 오후 4시에 만나자고 연락이 왔어요.


다만 읽어봐주신 후에는 주머니에 넣고 잊으시기는 했는데 다양한 방법으로 어르신께서 안정하실 수 있도록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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