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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스토리 Feb 01. 2024

노망 난 노인네

"노망 났단다.. 노망" 할머니의 말씀이었다.

어릴 적 우리 할머니는 아랫집 할머니를 "노망 난 노인네"라고 했었다. 사실 우리 할머니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소위 '노망 난 노인네' 할머니는 무섭게 생기셨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 집 앞은 개울가가 있었고 그 할머니가 살던 집과는 작은 다리를 건너야지만 왕래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 우린 그 집 사람들을 '아랫집'이라고 불렀다. '노망 난 노인네'할머니는 아랫집 할머니였다. 어릴 적 동네에는 '노망 난 노인네'들이 더러 오랫동안 살고 계셨다. 특히나 그 '아랫집' 할머니의 모습은 섬뜩하게 무서운 날들이 많았다. 늘 하얀 소복 차림이었고 검은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하얀 머리카락으로 쪽을 졌었다. 그 할머니의 얼굴 모습은 그랬다. 머리카락은 늘 비녀로부터 삐져나와 한쪽 뺨에 흘러 내려와 있었고 그때는 몰랐지만, 입이 세로로 빼뚤어진 채 한쪽 눈이 삐뚤 린 입 때문에 쳐져 있었고, 한쪽 눈의 윗 눈꺼풀에 검은 눈동자가 매달려 있듯했고, 흰자위 면적이 넓어 어린 마음에 더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성인이 되어 안 사실이지만 '구안와사'라는 질병에 일찍 손을 쓰지 못한 탓에 삐뚤어진 입과 얼굴 모습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식사하실때 본적이 있었는데 밥이 자꾸만 흘러나왔었다. 어린 마음에 모든 동네 아이들에게도 나도 무서운 할머니였다. 그 할머니는 늘 집 앞 작은 다리에 나와 서서 앞서 말한 그 모습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욕을 하거나 성을 내는 일이 다반사였기에, 할머니가 나와계시면 그 집 앞을 지나갈 수가 없어 멀리 돌아가야 했었다. 실제로 그 할머니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정말 무서웠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지내시던 할머니는 아주 오랫동안 사셨고 내가 성인 되어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거의 성인이 될 즈음 언젠가 그 할머니의 늘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으셨던 것을 듣게 되는 날이 있었다. 어릴 땐 무섭기만 해서 가까이 근처에도 갈 수 없었지만, 우연히 그 작은 다리밑에서 빨래를 하게 되며 위에서 중얼중얼거리시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그 '노망 난 노인네 할머니'는 젊은 시절의 시집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계셨던 것 같다. 고된 시집살이가 힘에 겨워 하소연하듯 이말 저말 정리되지 않은 말을 하고 계셨다. 그리곤 누군가와 대화를 하듯 말을 하고 계시는 날도 있었다.   


오랜 과거의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어 마치 사람이 앞에 있는 듯 대화를 하고 계셨다.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재미있는 이야기도 가끔 있었다. 대부분 원망과 한이 서린 푸념들이었지만, 기억 속 이야기 중 하나라면 "닭을 잡아서 백숙을 끓여 밥상을 차렸더니 시부모님이 닭발만 내 밥그릇에 주고 다 처먹었네" 등등의 이야기였던 것 같다. 배고픈 시절 얼마나 한이 되었으면 백발노인이 되어 그 닭백숙을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그때도 들었다.


그렇게 혼자 말하는 것에 대해 그때는 전혀 이해할 수없었지만 '섬망'이라는 증상 중하나였던 것이다. 나는 그 '섬망'을 어릴 적 '노망 난 노인네'라고 불렸던 그 할머니의 모습을 시간이 지나서 마흔이 넘은 나이에 나의 할아버지로부터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자상하고 인자하며 내게는 우주 같은 우리 할아버지가 어릴 적 듣던 '노망 난 노인네'가 되어있던 것이다. 어린 시절과 다르게 지금은 사회복지가 잘되어 있고, 양로원이라는 곳에서 잠시 계시다 돌아가셨지만, 허공을 보며 마주 앉아 이야기하듯 손짓하며 할아버지의 엄마와 대화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옆에 있던 나에게 얼마나 야단을 치시는지 놀랐지만 담담하게 대했던 일이 떠오른다.


야단을 치셨던 이유는 그랬다. "왜 할머니가 왔다 가는데 밥을 안 드리고 그냥 보내냐! 우리 집에 온 손님한테 밥도 안 주고 보내냐"며 불같이 화를 내시는 모습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섬망'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아까 밥 차려서 맛있게 드시고 가셨어요"라며 할아버지께 말씀드리며 안심시켜 드린 적이 있었고, 바로 할아버지는 "그랬냐"하시며 금방 화를 거두시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보통 치매로 인해 소위 엉뚱한 소리를 한다며 가족들이 힘들어 가는 경우를 볼 때가 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열 번 같은 말을 물어보시면 열 번 대답해 주고, 화가 난 이유를 그때그때 맞춰서 원하시는 쪽으로 풀어드리면 된다. 어차피 금세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셔서 밤새 할머니와 장례식장에서 슬퍼하다가 할머니를 좁은 장례식장 방에서 주무시게 할 수 없어서 집에 들어가 주무시게 한 적이 있었다. 장례 마지막날 집 근처의 장지로 모시기 전 평생에 사시던 집을 한번 들려 가는 장례 절차에 할머니께서 나를 보며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할머니 역시 노인성 치매였다.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할아버지를 떠올리셨는지 전날밤까지 할아버지의 떠나심을 함께 슬퍼하셨던 할머니는 생전의 할아버지를 기억하시며 "할아버지 밥이랑 잘 잡숩고 있지야?"라고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슬프고 귀여웠다. 잊으신 것이다. 나는 할머니께 그렇게 대답해 드렸다. "그럼 밥도 잘 잡숫고 잘 있어 걱정하지 마"라고..


위의 경우들은 모두 치매에 속한다. 치매는 크게 두 종류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전형적 알츠하이머와 노인성 치매로 나눌 수 있다. 알츠하이머는 그야말로 질병이다. 물론 노인성 치매도 질병이지만, 노인성 치매의 경우는 노화로 인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노인성 치매는 이전의 모든 기억을 추억하고 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금방 있었던 일은 잊는다. 알츠하이머의 경우는 모든 걸 잊는 경우가 많다. 금방 한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결국은 거울을 보고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숟가락을 들고 밥을 입에 넣으며 치아로 오물거려 씹어 목으로 넘기는 것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다.


요즘은 이처럼 "노망 난 노인네" 그런데 노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젊은 층에도 이런 치매 증상이 많다는 연구통계를 보며 마음이 안타까웠다. 나 역시도 피해 갈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많은 연구 끝에 치매치료약이 개발된다고 하지만 역시나 불안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초고령화 사회에 이미 진입된 한국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일테고 노인에 대한 많은 지식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미 양가의 어른들을 다 보내고 나니 우리 세대가 걱정이 된다. 자녀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들을 하며 살아야한다. 어릴 적 '노망 난 노인네'가 혹은 가까이에 와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나에겐 어릴 적 '아랫집 할머니'의 추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지만, 요즘 MZ세대들에게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생각이 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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