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을 보이자 해외에서 유입된 미세먼지가 한바탕 기승을 부리고 있다. 좋은 것들, 인간에게 유익이 되는 것들은 언제나 함께 오지 않는다. 하나가 오면 꼭 다른 하나를 잃어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온다. 교만하지 말고 늘 겸손하라는 신의 뜻이 아닐까?
이번주 새 학년 준비기간으로 내내 바쁘기도 했고, 얄궂은 미세먼지 때문에 퇴근 후 거의 열흘 만에 산책에 나섰다. 적당히 쌀쌀함을 느끼며 익숙한 산책로를 가벼운 발걸음으로 맞이했다. 시야에 담긴 풍경이 대단할 것은 없었지만, 미세먼지 때문에 맘 놓고 산책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낀 후라 밤공기가 더욱 청량하게 느껴졌다. 인생에도 꼭 그런 면이 있다. 풍요만이 늘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결핍이나 고난을 통해 우리 삶은 더욱 깊어지고 단단해지며 행복의 의미를 소중히 여기게 된다.
산책로를 빠져나와 집 근처에 다다르니 큰 대로변 모퉁이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겨우 소모한 열량이 도루묵이 되는 것 같아 잠시 주저했지만, 산책 후에 먹는 아이스크림은 유난히 달콤하다.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으니 가게 안으로 들어온 4인 가족.. 다섯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어린 딸들과 부부였다. 유리장 안에 진열된 형형색색의 아이스크림은 어린아이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이윽고 아이 엄마가 "OO이 어디에 앉을 거야?" 하고 묻자 아이가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와 여기 빈자리에 앉겠다고 말하며 내 눈을 빤히 응시한다.
나 여기에 앉을 거야!!
아이를 향해 "여기에 앉을 거야?"라고 되물으며 아이와 눈이 마주쳤던 불과 몇 초간.. 나는 너무나 맑고 투명한, 예쁜 구슬을 보았다. 그 어떤 사심도 없고, 공포도 두려움도 의심도 담겨 있지 않은 순수 그 자체의 수정체! 아침에 출근하면서 차 안에서 잠시 기도를 하고 하루를 시작했는데 짧았던 그 2-3초가 하루의 피로를 다 씻게 할 만큼 선물처럼 느껴졌다. 나를 향한 누군가의 시선.. 그토록이나 맑고 순수한 눈망울을 본 게 언제였던가? 10년 전? 20년 전? 게다가 머리가 큰 성인들은 아무 의자에나 앉지 않는다. 일단 곁눈질로 쓱- 분위기를 한 번 훑거나 엿고 나서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람, 힘이 될 사람, 이득이 될 사람을 그 짧은 순간에 재빠르게 스캔하고 판단한 후 충분히 계산기를 두들긴 다음에야 어느 자리에 가서 앉을지를 결정한다. 아까 그 귀여운 꼬마 아이처럼 아무 계산도 하지 않고, 그 무엇도 재지 않고 내 곁으로 다가와 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요즘 같은 세상엔 행운과도 같은 일이다.
Golliwog's Cakewalk(Children's Corner, L.113) by C. Debussy _Seongjin Cho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는 프랑스 출신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로 인상주의 음악의 기틀을 마련하여 근대와 현대의 가교 역할을 했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 중 한 명이다. 파리음악원에 입학하였으나 작곡 부문에서 1883년 로마대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상징파 시인, 인상파 화가들과 절친하게 지냈으며, 반바그너파로서 독일 음악의 감정적인 표현과 철학적인 표제를 혐오했다. 드뷔시에 의하면 음악은 다른 장르의 프랑스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감각적인 호소에 그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음악이 우리가 잡으려는 노력 없이도 감지되는 즉각적인 기쁨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깊은 감정을 표현하거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낭만주의 음악과는 달리 드뷔시의 음악은 대개 기분, 느낌, 정취 또는 장면을 환기한다. 상징주의 시에서처럼 표준적 통사가 위반되어 우리의 주의는 오히려 작품의 구조와 의미를 운반하는 개별 영상에 기울여진다. 그는 동기, 화성, (온음음계, 8음음계, 5음음계 등의) 이국적 음계, 악기의 음색 등을 통하여 만들어 낸 음악적 영상들을 병렬하는 방식으로 작곡했다. 이런 이론적인 내용들은 머리만 아프니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개인적으로 드뷔시의 음악은 인상주의 화풍처럼 빛이 반짝이는 듯 감각적인 분위기가 있다. 동시대의 에릭 사티와도 비슷한 느낌이 있지만 사티는 드뷔시에 비하면 훨씬 단순하고 절제된 특징이 있다.
'골리워크의 케이크워크 Golliwog's Cakewalk'는 미국 래그타임(RagTime)의 경쾌한 리듬이 느껴지는 곡으로 드뷔시의 피아노 모음곡 <어린이의 세계>에 수록된 여섯 개의 작품 중 마지막 곡이다. 이 곡은 '슈슈'에게 헌정한 곡인데 '슈슈'는 그의 딸인 클로드 엠마의 애칭이다. 수많은 여성과의 불륜으로 평판이 그리 좋지 않았던 드뷔시는 이미 기혼 상태였던 엠마와의 사랑으로 다시 한번 구설수에 올랐으나 그는 첫아이였던 슈슈를 끔찍이도 아꼈다고 한다. 드뷔시는 슈슈가 5살이 되던 해, 3년에 걸쳐 작곡한 <어린이의 세계 Chidren's corner, 어린이의 세계 또는 어린이의 차지라고도 함)>를 "이 모음곡을 슈슈에게 헌정한다"며 발표했다. 또 이 작품이 발표된 19세기는 중산층 가정에 피아노를 두는 것이 유행하던 시기로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 소품곡들이 많이 작곡되었는데 슈만의 <어린이 정경>, 무소르그스키의 <어린이의 방> 등 다른 작곡가의 작품이 어른의 시선에서 어린이를 묘사하거나 어린이의 피아노 교습용으로 작곡된 데 반해, 드뷔시의 <어린이의 세계>는 어린이의 입장에서 바라본 세상을 그린 작품이다. 드뷔시가 상상했던, 슈슈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정상적이고 건강한 어린이라면 걱정과 고민을 끌어안고 살지는 않는다. 아무 선입견도 없고 편견도 없는 마냥 깨끗하고 하얀 도화지를 아이들에게서 오래오래 지켜줘야하는 건 당연히 우리 어른들의 양심이자 책임이어야 한다.
귀여운 꼬마야, 아까 고마웠어!
아무 것도 재지 않고, 따지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나한테로 성큼성큼 다가와줘서..^^
- 음악사 및 작곡가 내용 발췌:
Donald J. Grout 外 「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하)」, 이앤비플러스, 2013
허영한 外「새 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2」, 심설당, 2014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005221505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