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ra 「Aida」 by Giuseppe Verdi
20여 년만에 조우한 베로나 Verona였다.
혼자서 런던에서부터 파리 - 밀라노 - 베로나 - 로마까지 종단하는 2주 일정을 계획하면서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베로나쯤 되면 체력이 많이 고갈되어 있을 거라는 걸.. 그래서 좀 아쉽더라도 베로나를 포기할까 했지만 애당초 런던 In - 로마 Out으로 일정을 뒤집은 이유도 베로나에서 오페라 아이다 Aida를 보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마음을 고쳐 먹고 취소했던 숙소를 다시 예약했다. 내 인생에 언제 또 베로나에서 오페라를 보겠냐며..
밀라노 중앙역 Centrale Stazione에서 베로나 포르타 누오바 Verona Porta Nuova행 기차를 타고 약 1시간 만에 도착한 베로나는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었다. 밀라노 유학시절 한인교회 지인들과 쥬제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Il Trovatore」와 「나부코 Nabucco」를 봤었다. 까마득한 기억이지만 유독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건 음향이었다. 아레나 원형극장 내에 제일 먼 자리였는데도 불구하고 무대 위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정확히 내 가슴까지 명중해서 울려 퍼지던 그 순간의 감동만큼은 잊히지가 않는다. 기원 후 30년에 완공된 고대 원형경기장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으면서도 현대적인 시스템과 기술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할 것 같은 음향의 신비로움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었다.
베로나는 도시 전체의 크기도 작을뿐더러 분위기도 고풍스러워서 밀라노와 같은 상업도시에 비해 훨씬 여유롭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 둔 숙소는 기차역에서부터 약 1km 정도 떨어진 조용한 주택가에 있었다. 이탈리아 현지인 아주머니의 친절한 안내를 받고 잠시 둘러본 숙소는 완벽할 정도로 깨끗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밀라노에서부터 방전되기 시작한 체력은 베로나에서 한층 누적된 피로감으로 나타났다. 나는 서두르거나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숙소 침대에 누워 내 몸이 괜찮다는 신호를 보낼 때까지 창 밖으로 시선을 둔 채 멍하니 누워있었다. 기운이 좀 나는 것 같아서 가져오길 잘했다고 두고두고 흡족해했던 검은색 롱 원피스에 선글라스까지 장착하고 아레나 원형극장이 있는 에르베 광장을 향해 나섰다. 베로나 시市에서 1905년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바탕으로 조성한 '줄리엣의 집 Casa di Giulietta'은 이번에도 시간이 늦어 들어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매력이 공존하는 고도古都 베로나의 아기자기한 골목들을 걷는 재미가 있었다. 오페라 페스티벌 기간이라 한껏 멋 부리고 온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에르베 광장 주변에 늘어서 있는 노천카페 중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공연 시간을 기다렸다.
한창 무더운 여름이라 베로나의 태양은 생각보다 길었다. 서서히 해가 가라앉는 걸 느끼며 드디어 아레나 원형극장으로 입성했다. 내 자리는 무대를 관람하기에 괜찮은 자리였지만 바로 뒤에 출입구와 통로가 있어서 시끄럽고 거슬렸다. 관크(공연장이나 영화관 등 공공장소에서 다른 관객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는 전세계 어디나 예외가 없는가 보았다. 하지만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을 보기 위해 전세계에서 방문한 관객들이 있는 만큼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원형극장 내 분위기가 너무 근사했다. 평소 관크에 예민한데도 불구하고 모든 걸 다 품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밤이었다. 이날 아이다 역은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소프라노인 안나 넵트렙코 Anna Netrebko였다. 넵트렙코의 노래를 실연으로 듣다니.. 특히 올해는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 100주년을 맞는 기념적인 해였다.
밤 아홉 시 반이 되어서야 시작한 오페라는 자정이 넘어 새벽 한 시쯤에야 막을 내렸다. 공연을 관람하는 동안 차도 없는 그 시간에 1.5km가 넘는 숙소까지 돌아갈 일이 은근 걱정이 되는지라 마지막 4막은 포기하고 중간에 나올까도 잠시 생각했지만, 살면서 언제 또 베로나에서 오페라를 보겠나 싶어 걱정은 일단 접어두고 현재를 즐기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공연이 끝나고 수많은 인파와 함께 광장을 지나 시내를 벗어날수록 점점 눈에 띄게 줄어드는 인적들.. 베로나가 치안이 안전한 도시라고는 하지만 사람일이란 모르는 거 아닌가? 급기야 주위에 사람이 몇 명만 남게 되자 나도 모르게 위축되면서 심장이 쫄아들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숙소까지 잘 찾아가야 했기에 구글맵 하나에 의지해 조심조심 발걸음을 재촉했다. 때마침 교차로 횡단보도에서 오페라를 보고 돌아가는 듯한 부부를 발견했는데 그게 그렇게나 안심이 될 수가 없었다. 외지인 여행객으로 보이던 부부는 그렇게 내 앞에서 한참을 앞서 걸어가 주었다. 나는 그들이 나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도록 몇 발치 뒤에서 적당히 간격을 조절하며 뒤따라 걸었다. 숙소에 거의 다다를 무렵에는 사람은커녕 가로등도 하나 없어 적막하고 어두컴컴했다. 말없이 앞서 걷고 있는 부부의 뒷모습이 내게는 마치 하느님께서 보내신 수호신처럼 느껴졌다. 만약 그 길을 혼자서 걸어야 했다면 너무 무서워서 심장이 날뛰는 부정맥을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부부는 대로변에서 숙소가 있는 골목으로 우회전하는 막바지 갈림길까지 나의 수호신이 되어주고는 걸음을 재촉하며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지난 여행 중 제일 아찔하고도 감사했던 순간이 언제인지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이때를 떠올릴 것 같다.
부부는 알지 못했을 거다. 그 밤, 수 천 킬로나 떨어진 낯선 도시에서 일면식도 없는 당신들의 존재에만 의지한 채 수 분 동안 용기를 낸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우린 어쩌면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 때로는 누군가의 등대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의 암초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이왕이면 누군가에게 길잡이가 되거나 빛을 비추어 주는 등대로 살아가야겠다. 물론, 이 험난한 세상 속에서 헐벗은 채로 풍파를 견디며 길을 잃거나 고립된 누군가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가 된다는 건 어리석고 바보 같은 삶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의 등대가 된다는 건 그렇게 거창한 무엇은 아닌 것 같다. 회전교차로에 먼저 진입한 차량을 배려하는 마음, 건널목에서 양손에 아이들을 붙잡은 채 불안한 듯 좌우를 살피는 그 부모들이 아이들과 먼저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도록 잠시 멈춰주는 여유, 손주들 용돈이나 조금 벌겠다고 사람 붐비는 지하철 입구에 서서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계시는 나이 든 어르신께서 주는 그깟 종이 한 장을 외면하지 않는 손길.. 내 기준에는 그런 따스한 마음들이 모두 등대와도 같다. 살아가는 동안 등대 같은 사람들을 많이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23. 7. 31. 베로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