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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테의 꽃 Aug 15. 2024

J에게

L'hymne à l'amour - Céline Dion

너무 안타깝고 아까운 J야, 네가 있는 그곳은 이제 좀 편안하니? 오늘 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선생님들과 함께 네가 있는 곳에 다녀왔어. 너의 아버지께서 조문을 원치 않으신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혹여 상상 못 할 그 아픔에 더 큰 외로움을 보탤까 싶어 교육청 관계자 및 학교 관리자분들, 동료 선생님 몇 분만 분향소에 들어가고, 나는 동료선생님 한 분과 같이 로비에서 대기하면서 안쪽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어. 분향소에 들어가신 선생님들이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밖으로 나오지 못하시는 걸 보고 동료선생님과 조심스레 너의 빈소로 걸어가 보았지. 그래도 차마 그 안으로 들어가 너를 마주할 엄두가 나질 않아 문칸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네게 마지막 인사를 전할 수 있어 조금은 다행이었어.


우리 J, 쌤은 엊저녁에 네가 그렇게나 외로운 길을 떠난 줄도 모르고 오늘 점심시간에 누군가 내려주신 커피를 마시면서 유럽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오신 동료 선생님께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캐묻고 낄낄거리며 수다를 떨었어. 뒤늦게 너의 부고를 알게 되고 너무 놀라서 얼마 간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것보다 가장 먼저 밀려드는 마음은 지난 월요일에 불과 몇 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너를 스쳐 지나갔는데 '방학 잘 보냈니?‘라고 인사 한 마디 건네지 못했던 게, 그게 지금 제일 후회가 되고 안타깝구나.


우리 J, 정말 많이 외롭고 힘들었구나. 선생님이 그 고통을 더 많이 헤아려 주지 못해서, 힘이 되어 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구나. 너처럼 여리고 순한 영혼이 견디기에는 너무나도 삭막하고 치열한 이 세상에서 더 단단한 보호막이 되어 주지 못한 것 같아 네게 면목이 없구나. 너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미소를 보았을 때 그 순간이 얼마나 예쁘고 소중했는지 아니? 비록 찰나 같이 짧은 순간이었지만, 스치듯 너와 두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사실 많이 안도했었어. 너를 괴롭히는 그 무언가가 많이 호전된 줄 알았지. 쌤이 그렇게나 어리석고 아둔하구나. 내가 올해 보직을 맡지 않고 담임을 맡았더라면 너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이라도 더 친밀해질 수 있었을까? 이미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지나고 보니 후회되는 게 너무 많아. 무엇보다 너의 실기수업을 담당하고 계시는 외부 강사 선생님께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될까? 우연히 찾아간 교회에서 너무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1년 뒤 그 연주의 주인공이 네 실기수업 담당 선생님이 되어서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스러웠는지.. 연습실 쪽을 지나다가 너와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선생님이 한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보게 되었어. 그 뒷모습이 너무 예뻐 오래오래 눈에 담고 싶었지만, 누군가 서서 몰래 수업을 지켜본다는 걸 아시면 선생님께서 불쾌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 자리를 피했어. 대신 교사 연구실에 돌아와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려 선생님께 가져다 드렸지. 선생님은 무척 고마워하시며 몰래 설거지까지 해놓고 가셨더라. 덕분에 쌤도 뿌듯하고 감사했어! 모두 네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는데,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한 거니, J야?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너를 결코 탓하려는 것은 아니란다.

https://youtu.be/Gk0fN8VbgY0

책상 위에 놓인 탁상 달력을 보니 정확히 네가 떠나기 전 일주일부터 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심한 무기력과 피로감에 시달렸어. 그동안 살아오며 느끼던 어떤 일반적인 무기력이나 피로감과는 다른 낯선 것이었어. 방학 동안 여행도 안 가고 충분히 잘 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심한 무기력과 피로감이 느닷없이 찾아와 괴로웠단다. 피곤할 때 적절한 쉼을 가지면 금세 건강한 에너지와 의욕감을 느끼던 내겐 너무나도 낯설고 당혹스러운 것이었지. 지금 보니 무슨 신병처럼, 네가 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내 몸은 어떻게 알고 그렇게 반응했던 걸까? J야, 쌤이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오늘 같은 날은 매일 쿵쾅거리던 윗집 소음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들렸으면 했는데 깊게 가라앉은 이 고요와 적막감이 너무 싫고 불편하기만 해. 우리 나중에 천국 학교에서 다시 만나 행복하게 노래도 하고 피아노도 연주하자! 그곳에서는 부디 평안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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