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부르면

by lemonfresh

네가 부르면 나는 가겠다.

나의 시간을 너에게 쓰겠다.


훗날 네가 부르지 않는 날에는

나를 불렀던 날들을 기억하겠다.


귀에 익은 어조와 음성을,

함께 나눈 이야기들을 떠올리겠다.


나의 시간이 다하는 날에도

내 손을 잡고 나를 불러다오.


나는 그 목소리에 힘입어

용감하게 먼 길을 떠나가겠다.


* * *


나는 날마다 시간을 쓴다.

밥을 짓기도 하고

세탁기를 돌리기도 하고

설거지를 하기도 한다.

필요한 물건도 사고

유튜브도 보고

카톡 답장도 하고

어질러진 집안을 치우기도 한다.

언젠가는 내 시간을 다 쓰게 될 것이다.


호수는 자주 나를 부른다.

그럴 때 나는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호수에게 가는 시간을 지연시키곤 한다.

'조금 기다려. 이것만 하고 갈게."

"할머니 지금 못 가. 설거지 중이야."

"가스 불 켜 놨어. 지금 부르지 마."


그러다 오늘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중엔 필경 아이들이 나를 부르지 않는 날이 올 텐데..."

생각을 하고 보니 정신이 번쩍 났다.


"할머니, 나랑 포켓몬 카드 게임 할 수 있어?"

"지금?"

"아니, 할머니 시간 날 때."

"아니, 아니야. 지금 할 수 있어. 할머니 얼른 손 씻고 갈게."




# 할머니의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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