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쳐 에세이
2020년 장마는 역대 가장 긴 장마로 중부지역 기준 54일을 기록했다. 코로나19로 이미 지쳐던 마음을 여름 햇볕으로 치유하고자 했지만 '비'의 연속이었다. 얌전히 내리다가 지나가기는 커녕 여러 곳에 생채기를 남겨두고 떠났다. 비를 잔뜩 머금은 숲은 검푸른 빛깔로 변했고 먹구름으로 가득하여 햇빛을 받지 못한 바다는 짙푸른 빛깔을 내었다.
푸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푸르다'는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풀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라는 뜻을 지녔다. 푸르다의 뜻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단어는 '가을'이다. 사계절의 맑은 하늘 중 '가을'을 지목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푸를 청 (靑)은 초록과 파랑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영어로 하면, blue일까 green일까. 검푸르다는 'dark blue', 짙푸르다는 'deep blue'로 번역된다. 푸르름이 파랗다의 'blue'만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 서양화가들의 푸르른 여름날 풍경을 통해 살펴보자.
푸르른 여름날을 찾아서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의 <여름>은 녹색 빛깔의 푸르름으로 가득하다. 짙푸른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고 있는 여름 햇빛은 굉장히 뜨거워보인다. 사진인지 회화인지 다소 헷갈리는 이 작품은 프로젝터로 캔버스 위에 사진을 비춰 대상의 형태를 그린 것이다. 일부러 유화를 얇게 발라서 핀트가 맞지 않는 이미지로 흐릿하게 표현되었다.
카롤라(Carola Eleonore Thiele)의 <여름의 중턱> 은 사치갤러리에서 판매하고 있는 작품이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카롤라는 리히터처럼 독일 사람인데, 그림 속 구도와 분위기가 유사하다. 물론, 리히터의 <여름>보다 파란색 빛깔이 더 많이 포함된 푸르름이 표현되어있다. 여름의 중턱을 넘어서고 있다
이고르 그라바(Igor Grabar)의 <여름저녁>은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듯 싶다. 그라바는 러시아 화가로 1923년 늦여름과 가을사이 모스크바 시골의 풍경을 그렸다. 안료를 짙게 사용하여 짙푸른 여름날을 입체감있게 표현하였다. 낮은 수평선 따라 녹색 빛깔의 푸르름이 펼쳐진다. 다소 답답해보일만큼 덮여있는 수풀은 더운 여름을 잘 나타낸다.
뭉크(Edvard Munch)의 <여름밤>은 노르웨이 오스고르스트란(Åsgårdstrand)의 밤하늘을 표현한 작품이다. "풍경은 보는 사람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진다." 라고 말한 뭉크는 특유의 화법인 느슨하고 흐르는 붓놀림으로 '여름밤'을 표현하고 있다. 고흐의 별헤는 밤 속의 별처럼 반짝거리지는 않지만 여름밤의 별빛이 존재한다. 북유럽의 지역적 특성을 보여주듯 시원한 푸른색 빛깔로 가득하다. 무더운 여름 밤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A landscape will alter according to the mood of the person who sees it, and in order to represent that particular scene, the artist will produce a picture that expresses his own personal feelings." - Edvard Munch
뭉크의 <여름밤의 꿈>은 사랑의 순환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다. 노르웨이의 긴 한여름 밤 가운데 전통적인 데이트 장소였던 Borre Forest에 희미하지만 섬뜩해보이는 빛을 받고 있는 여자가 서 있다. 사춘기 초기에 일어나는 성적인 각성상태를 희미한 빛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름다운 여름밤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지기보다 다소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티스(Henri Matisse)의 강렬한 원색을 대담하게 대조시켜 사용하기로 유명하다. 그는 랑스 남동부 지중해 해안지역인 니스(nice)와 방스(vence)에 머무르며 집 안에서 바라보는 바다풍경에 주목하였다. 위의 그림은 그의 유작으로 남은 방스 인테리어(Inteior of Vence) 연작 중 하나이다. 사람들의 움직임을 그려 넣지않고 모든 사물에 푸른색 색조를 사용하여 일종의 생동감 부여하고있다.
"Absorbed by light, I was breaking loose from the space that was the background, sensing something beyond it, a cosmic space in which there were no walls" – Henri Matisse
페데르 세베린 크뢰이어(Peder Severin Krøyer)는 덴마크 예술계에서 주목받았던 화가이다. 그에게 덴마크의 최북단에 위치한 작은 마을, 스카겐(Skagen)은 남다른 곳이다. 그곳에서 아내와 결혼도 하고 동료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평생을 보냈다. 스카겐의 고요한 바다 너머를 바라보며 달빛이 물에 반사된 모습은 아주 평화롭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주는 여름밤의 풍경을 자아낸다. 수평선에 내려앉은 저녁 안개와 바다에 반사된 푸른 빛깔이 인상적이다.
절반 푸르른
여름날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