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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인 Jul 18. 2024

헤어진 전 남친에게 연애를 상담하다.

이제 우린 정말 좋은 친구이다! 

내가 A를 만난 건 대략 8년 전, 호주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서이다. 

A는 꽤 근사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까만색 단정한 슈트와 와이셔츠가 그의 큰 키와 마른 몸매에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었고, 호주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똑똑한 사람이었다. IT 분야의 전문가로 본인의 사업을 운영하고 있고.. 시드니의 이런저런 사교 모임에서 직함을 가지고 있다, (쓸데없이.)


그런 그가 당시 아무것도 아니었던 내게 호감을 가지게 된 것은 순전히 내가 한국인이고 미술 공부를 한다는 이유였다. 


당시 너무 웃겼던 건.. 미술을 공부한다는 나보다 A가 취미로 그린다는 미술의 수준이었다. 

정말, A는 미술적 재능이 그냥 타고난 사람이었다. 종종 짬을 내서 몇 개월에 걸쳐서 캔버스에 인물화를 그린다거나.. A4 사이즈의 종이에 펜으로 쓱쓱 주변 사람들을 그리는데, 와.. 이 사람은 정말 손과 감각은 타고났더라. 


그런 A가 내게 본인의 그림들을 보여주면서 평가를 요구하는데, 그가 가진 재능들이 질투가 날 정도였다. 


A는 나와 항상 미술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고, 내 주변 미술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어쩌면 그건 A가 가지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동경이었을 테니까. 


어색한 영어로 학교에서 새롭게 배운 것들을 열심히 설명하고 이야기할 때마다 A의 눈은 반짝거렸고, 질문은 짜증 날 정도로 많았다. 


난 밖에서 미술 이야기를 하는 것을 정말 지긋지긋하게 싫어한다. 

집에서 TV를 볼 때도 미술 이야기가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리고는 한다. 아마 미술은 꼴 보기 싫다는 표현이 아마 딱 맞을 것이다. 


A가 정말 좋은 사람인 것도 알았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미술 이야기는 절대 내가 하고 싶은 대화가 아니었으니까. 


그걸 A도 인지했었는지.. 그때부터 눈치를 좀 챙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린 맞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들을 채워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말싸움을 시작했고, 그렇게 우린 헤어지게 되었다. 


A는 헤어진 후에도 종종 인스타로 내게 한국 가수가 부른 노래들을 보내주기도 했는데..

지 나름 미련 있는 마음을 표현한 것 같은데, 항상 내 반응은 "어쩌라고"였다.

생각해 보면 A는 나랑 참 잘 헤어진 것 같다. 응? ㅋㅋㅋ


이상하게 A에게는 100%의 사랑과 마음을 줄 수가 없었다. 그냥 이성적으로 뭔가가 아니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서 A가 다시 진지하게 연락이 왔고, 우린 다시 만나게 되었다. 

어느 날에 A가 점심시간에 날 본인 집으로 초대했다. 


직접 음식을 한가득 만들어주었는데, 솔직히 몇 입 먹지 못했다. 

그때 그 메뉴는 핫케이크였다. 가뜩이나 다이어트 때문에 밀가루 먹는 거 찝찝한데.. 그 핫케이크를 한두 장만 구우면 될 것을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팬케이크가 아주 산처럼 쌓여 있었다. 아마 대략 30장 이상은 부친 것 같았고.. 옆에 슬쩍 보니 밀가루 반죽들이 잔뜩 남아있었다. 정말 너는... 사업적으로도, 요리로도 손이 크구나... 나는 감당을 못하겠다 싶은 마음이었다. 


그림을 그렇게도 잘 그리던 그 손은.. 요리에는 정말 너무너무너무 끔찍하게 소질이 없었다. 

웬만하면 먹으려고 노력했는데, 이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분명 금방 구웠음에도 퍼석퍼석한 생전 처음 경험하는 이 묘한 식감이 버터와 잼을 아무리 발라도 커버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A의 성의를 봐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내가 전부 다 먹어주지 않아서 A는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A 입장에서는 나에게 무언가를 직접 해주고 싶어서 바쁜 시간을 쪼개서 했는데, 기대했던 것 같은 반응을 내가 보여주지 않아서 실망했던 것이다. 


A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아, 그건 너무 이기적인 거라고..... 나 이제 두 번 다시 남자친구 앞에서 울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상처 줄려던 거는 아니었는데................. 그 순간에 나도 왠지 상처를 받아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또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깨져버렸다. 


(다른 쪽으로 재능이 너무너무 많던 A는 요리에 절대적으로 심하게 재능이 없었다. 아, 공평하다를 처음으로 느꼈다.)




하지만 내 생일날에는 매년 꼭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작년에 페이스북으로 다시 온 친구 신청을 내가 받아들여주면서 슬며시 연결이 된 A와 나는 서로 선을 철저하게 그으면서 친구 관계로 지냈다. A는 나에게 복수라도 하듯이 지금 데이트하는 이성과 매우 행복하다고 했으며, 나는 그런 말을 들어서 매우 기쁘다고 답해줬다. 


A의 데이트도 깨지고, 나의 데이트도 깨진 후.. 

나는 개인적인 다른 일들도 겹쳐서 좀 많이 우울감에 빠졌었고, A는 자신의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A와 점심을 먹으면서 말했다. 


"나에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라고 내게 일어난 일들을 A에게 차근차근 말했다. 가만히 듣던 A는 말했다. 


"나도 그런 일이 좀 많아. 근데, 시간이 좀 지나가면 또다시 다 괜찮아진다?"라고 말해줬다. 


그렇지,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지겠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처럼. 




"내 연애가 또 깨져버렸어. 문제가 뭐였을까.. 남자의 관점에서의 생각과 의견이 필요해."라고 내가 물어보면 A는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 봐. 그럼 내가 내 생각을 말해볼게"라고 또 속도 없이 말한다. 


"이건 남자인 내가 들어도 네가 잘못한 거 없는데???"라고 눈치가 예전보다 100배는 늘어난 A. 


"아마 이런 과정을 통해서 너는 서두르지 않는 인내를 배웠을 거야. 솔직히 우리 만났을 때는 서로 인내심이 없었잖아. 

우리가 더 이상 연인 관계는 아니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여전히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어. 또한, 네가 호주에서 큐레이터로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게 된 것에 대해 난 매우 감사해. 너의 모든 것들이 여전히 매우 흥미로워. 


넌 좋은 사람이야. 난 그것을 알고 있어. 네 가치를 몰라주는 멍청한 바보는 절대 만나지 마. 

어쨌든, 너는 곧 다시 발란스를 찾게 될 것이고,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야.


What would you improve about yourself next time by learning from this experience?

이 경험을 통해 너 자신에 대해서 무엇을 향상할 것인지 생각해 봐."


"It’s like a magnet; it depends on your thinking and attracts those thoughts. If you say it is hard, it gets hard. If you constantly say things are not right, not right will come to you. You can tune your mind and focus, and things will be much better. 자석을 생각해 봐. 모든 건 너의 생각에 달려있으며, 그 생각들이 자석처럼 모든 것을 끌어당기지. 만약 네가 힘들다고 말하면 힘들어질 거야. 만약 네가 끊임없이 뭔가 옳지 않다고 말한다면, 진짜 옳지 않은 일이 찾아올 거야. 넌 네 스스로 네 마음에 집중할 수 있고, 더 좋은 생각으로 바꿀 수 있어. 그러면 상황이 훨씬 좋아질 거야."


"Whatever you assume you need to improve, you focus on it. I think there is nothing wrong; life is just about simple, constant improvement. 너 자신에 대해 발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집중해 봐. 내 생각엔 잘못된 건 아무것도 없어, 인생은 그저 계속해서 발전하는 것일 뿐이야."


고마워... 


그리고 A는 말했다. "다음번에 연애할 때는 너는 그를 도와주고 서포트해줘야 해. 아마 남자에게는 그게 필요할 거야. 

그럼 그는 너에게 사랑을 주고, 너는 그를 강력하게 지지해 주게 되겠지."라고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넌 너야라는 말을 많이 해준다. 절대 자신을 잃지 말라고. 


좋은 와인도 마시고, 좋아하는 향의 캔들도 켜놓고.. 혼자서 시간을 보낼 때도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대접하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좋은 것들이 너에게 자석처럼 오도록 더 나은 것들에 집중하라고 말해준다. 


"Dress up, use makeup, care about yourself and everything will be fine. 예쁜 옷을 입어, 멋지게 화장을 해, 그렇게 자기 자신을 아껴주고 돌봐줘. 그러면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질 거야."




"근데, 다음번에는 나 딴 남자 이야기 너랑 안 하고 싶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ㅋㅋㅋ

미안, 다음번 연애는 정말 잘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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