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긴장과 두려움
호주 법대에서의 첫날이 오기까지 몇주동안은 새로운 시작에 대해서.. 매우 긴장했고, 무서웠고… 두려웠다.
나는 그다지 똑똑하지도 않고, 영어도 제2외국어라 늘 버벅거리는데, 과연 이곳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심지어 주변 한국 사람들이 너는 못할 것이라며 하지 말라고 하는 부정적 말들에 많이 상처를 받은 터였다. 그래서 법대 입학이 결정되고 드라마들도 좀 있었고.. 주변 인간관계가 많이 바뀌기도 했다.
이틀 전, 교수님에게서 메일이 왔다. 원래보다 일주일 먼저 수업을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거기에다 출석 체크까지 하니 이틀 뒤 수업에 반드시 참여하라는 통보. 한 주에 세 번, 세 시간씩—총 9시간.
“응? 이런 경우가 어딨어? 아… 법대라면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나는 이 소식을 학교 그룹챗에 공유했고, 다들 경악했다. 그 덕분에 나처럼 몰랐던 같은 학과의 몇몇 학생들이 미리 알게 되었고, 나는 그 친구들에게 “너는 나 만나서 완전 럭키비키네!” 하며 실컷 잘난 척을 했다. 다들 “정말 너 만나서 다행이야!”라며 고맙다고 해줬다.
드디어 월요일. 수업은 오전 11시 시작이었지만, 나는 아침 7시 45분에 이미 학교에 도착했다.
나는 학교에서 일해서 직원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었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주차장이 꽉 차기 때문에 마음 편히 주차하려고 집에서 아예 일찍 나섰다. 집에서 학교까지 대략 1시간정도 걸리는데.. 차가 막히는 것도 문제였다. 번잡한 시간을 피하기 위해 아예 좀 일찍 학교로 가는 것이다. 커피를 한 잔 사서 마시며 공부하다가 수업을 기다릴 생각이었는데, 막상 오리엔테이션 주간이라 캠퍼스가 축제처럼 시끌벅적했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프랑스인 친구와 커피를 마셨는데—깜짝 놀랐다. 예전 남자친구와 너무 닮아서.
그 친구보다 덩치는 작지만 눈빛이 묘하게 비슷해 순간 위화감이 들었다. “아, 그 사람이 키우던 퍼그 말고는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는데…” 싶다가도, 이 친구는 독한 순둥이 같은 분위기라 곧 마음이 풀렸다.
또, 뉴칼레도니아에서 온 친구도 만나 셋이서 캠퍼스를 돌아다녔다. 행사가 많아 사람도 북적였고, 함께 웃고 다니며 긴장을 조금 덜 수 있었다.
수업 때문에 난 먼저 일찍 떠났고.. 수업을 준비하려 라커에 가서 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하는 바람에 낭패를 봤다. 법대 직원분의 도움을 받아 겨우 노트북을 꺼낼 수 있었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심장이 쿵쾅거렸다.
“아, 시작하기 전에 별일 다 있네…”
강의실 앞에는 이미 여러 명이 모여 있었고, 자연스럽게 “안녕!” 하며 인사가 오갔다. 옆에 있던 학생 중 한 명도 나처럼 미술을 전공했었다고 해서 금세 반가워졌다. 그 친구와의 사이에서 중간중간 아는 사람들을 발견하며 “세상 참 좁구나” 싶었다.
다들 왜 이 Juris Doctor 과정을 시작했는지, 이전에는 무엇을 공부했는지, 어디서 왔는지 얘기하는데—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다. 심지어 미국에서 온 학생들은 “트럼프 때문”이라며 웃었다.
한편, 의대 출신인 우슬라라는 친구는 다리가 불편해서 골든 리트리버 ‘틸리’를 데리고 다녔다. 아직 한 살 된 강아지였는데, 수업 내내 털을 터는 소리 외에는 정말 얌전했다. 우슬라가 블루마운틴에서 통학한다고 하니 더 대단해 보였다. 틸리가 내 옆에 와서 꼬리를 흔들며 따라주는 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교수님은 온화해 보이지만 만만치 않은 인상의 여성이었다. 15분간 교실 문을 열지 못해 직원이 와서 해결해주었는데, 그 덕분에 우리는 15분 더 수다를 떨 수 있었다.
“혹시 수업 준비해왔어?” 누군가 물었고,
“아니!!!!!!!!” 다 함께 웃음이 터졌다.
혼자가 아니라는 게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오늘 밤부터 열심히 하면 되는 거니까.
호주 친구들이 “너무 긴장돼, 걱정돼” 하길래, 나는 웃으며 말했다.
“너희는 이게 모국어잖아. 제일 걱정되는 건 나라고!”
다들 빵 터졌다.
첫 수업은 어렵지만 흥미로웠다. 교수님이 강조하는 말마다 열심히 필기했고, 오랜만에 ‘공부가 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예습과 복습 없이는 따라가기 힘들겠다는 생각도 했다.
중국에서 온 한 학생이 내 앞에서 일부러 “서울이 어디냐?”라며 시비를 거는 듯한 말을 했는데, 대꾸할 가치가 없어 웃어넘겼다. 이미 몇몇 학생은 첫 수업만 듣고 드롭을 고민하고 있었다. “역시 법대는 만만치 않구나” 싶었다.
수업이 끝난 뒤, 처음의 불안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켠에서는 또 다른 두려움이 고개를 든다.
혹시 다음 주에는 눈물 뚝뚝 흘리며 못 하겠다고 하는건 아닐지...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란다.
그저 무난히, 평화롭게, 졸업까지 갈 수 있기를.
새벽 5시.
다시 책을 펼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