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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그니 Mar 14. 2020

1년 지나 올리는 CES 2019 이야기

길을 찾은 어린 양은 이제 어디로 갈까?

* 작년에 쓴 글입니다. 늦기 전에 CES 2020 글 등록하려고 보는데, 작년에 쓴 CES 2019 글도 등록 안 한 걸 발견해서(...) CES 2020 글 올리기 전에, 미리 올립니다. 지금 상황과 달라졌거나 판단이 틀려진 내용에 대해, 괄호(  )로 추가합니다.


지난 2019년 1월 8일부터 11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CES 2019가 열렸다. 연초부터 안 좋은 뉴스가 연달아 전해지는 만큼 화려하진 않았지만, 다른 의미로 재미있는 행사였다. 스마트폰 다음 먹거리를 찾아 헤매던 지난 5년간의 방황을 끝마칠 때가 왔다고나 할까. 길 잃은 어린양이 길을 찾았다. 그 길은 어떤 길이고 어떻게 찾았으며 이제 어디로 갈까? 인공지능, 합종연횡, 본질 집중이란 3가지 키워드로 풀어가 보자.








모든 곳에 인공지능이 강림하사



30여 년 전 시작된 컴퓨터 시대, 20여 년 전 막을 올린 인터넷 시대, 10여 년 전 세상을 사로잡은 스마트폰 시대에 이어 인공지능 가전 시대가 막을 올리고 있다. 네트워크에 연결된 컴퓨터가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제품에 들어가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스마트홈, 또는 홈 오토메이션에 대한 꿈이 갑자기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로봇(Robot)’이란 말이 체코어로 강제 노동을 뜻하는 ‘robota’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 귀찮고 반복되는 일을 기계에 맡기고 싶은 꿈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2020년대에 만나게 될 사물 인터넷 시대는 그런 귀찮은 일을 가전제품이 알아서 대신해줄 가능성을 찾았다. 해답은 역시 인공지능이다. 우리가 ‘알파고’에서 느꼈던, 인간을 능가하는 그런 섬찟한 지능을 가진 AI는 아니지만.



작년에 비교해 크게 넓힌 구글 부스는 구글 어시스턴트로 할 수 있는 많은 일을 경험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10억대의 스마트 기기(스마트폰 포함)에 탑재됐다고 자랑하는 구글의 소비자용 인공지능은 다양하게 쓰인다. 스마트폰 안에서는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 무엇이 있는지 인식하거나 화질을 향상하는 용도로 쓰인다.





스마트홈 기기에서는 일상생활에서 궁금한 여러 질문에 대답한다. 주방에서는 조리법을 안내하고, 스마트 TV에선 보고 싶은 콘텐츠를 찾아준다. 여행을 떠나면 날씨와 관광지와 동선을 알려주고 통역도 해준다. 구글이 가진 풍부한 데이터베이스와 결합하면서 찾고(구글 검색) 보여주고(유튜브) 안내할 수 있는 일(구글 지도)이 무척 많아졌다.



이를 비웃는 업체는 아마존이다. 비록 전체 기기 판매량은 1억 대 정도로 구글에 밀리지만, AI 스피커 점유율로 따지면 세계 1위로 스마트 스피커 시장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장본인이다. 스마트 스피커를 비롯해 스마트 조명, 조리기, 전자레인지, 시계, 안경, 세탁기 등 다양한 제품이 탑재되고 있다.



MS 코타나, 애플 시리, IBM 왓슨 같은 경쟁 인공지능이 소비자 가전 시장에서 존재감이 사라져 버리면서 이들 두 플랫폼의 존재감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애플이 Qi 무선 충전 방식을 채택하면서 무선 충전 시장이 Qi 방식으로 정리되고 다양한 제품이 쏟아지고 있는 것처럼, 플랫폼이 정리되기 시작하면 사물 인터넷 가전 시장은 앞으로 더 뜨겁게 달아오를 가능성이 크다.



합종연횡, 이젠 적과 아군을 구별하지 않는다





스마트 기기 시장이 정체기에 들어서면서, 주요 회사가 사용한 전술은 3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선도 투자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기술격차를 크게 벌리는 일이다. 주요 기술 산업은 시장 성장이 막히면 몇몇 업체만 남아 시장을 장악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하나는 특허권 등을 활용해 신규 업체나 경쟁 업체의 확장을 저지하는 방법이다. 기술 특허권 분쟁은 시장 성장기 내내 계속되다 막바지에 이르러 흐지부지 평화협정을 맺고는 한다.



마지막 하나는 프리미엄 제품 개발 등을 통해 자체 생태계, 나쁘게 말하면 자사의 제품을 계속 사게 할 가두리 양식장을 만드는 일이다. 지난 2018년은 그런 IT 업계의 전략이 한계에 부딪혔음을 알려준 한 해였다. 정상에 오른 사람에게 남은 것은 내려가는 일밖엔 없다.



위기의 깊이와 변화의 속도는 궤를 같이한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와 인터넷 시대의 개막,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와 스마트폰 시대의 개막이 엇비슷하게 맞물리는 이유다. 그때 같은 큰 경제 위기 상황은 아니지만, 2019년 세계 경제는 성장률 정체가 예상된다.



스마트폰 시장은 2018년부터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으며, 소비자는 지갑을 닫고 있다. 제조업과 IT 산업이 협업할 수밖에 없는 시대도 이미 다가왔다. 인공지능부터 네트워크, 제품 디자인 및 생산, 콘텐츠 제작까지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잘하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위기가 다가올수록 변하는 속도도 빨라질 수밖에 없다. 결국, 서로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는 회사끼리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이번 CES 2019에서는 이런 합종연횡이 두드러지게 보였다. 애플은 삼성, LG, 소니 등 TV 업체와 손을 잡았다. 소비자가 애플 TV를 따로 사지 않아도 이 회사들이 만든 TV에서 애플 아이튠즈에서 산 콘텐츠를 볼 수 있게 됐다. LG는 MS를 비롯해 네이버, 미국 인공지능 스타트업들과 손을 잡았고, SK텔레콤 역시 자율주행 스타트업들과 협약을 맺었다.



현대 자동차는 전기자동차를 개발하면서 동시에 바이두 같은 자율주행 플랫폼을 만드는 IT 회사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 인텔은 워너브라더스와 힘을 합쳐 콘텐츠를 제작하고, 알리바바와 협력해 인공지능 기반 기술을 개발할 예정이다. 도요타는 우버에만 공급하던 자율주행차 기술을 다른 회사에도 팔기로 했다. 바이두는 미국 자율 배송 스타트업과 손을 잡고 월마트 물건을 배송하는 시범 서비스에 나선다.



... 혼자서 이길 수 없는 시대, 모든 회사는 함께할 동료를 찾기 위해 필사적이다.




본질에 집중한 제품만이 살아남는다



업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 역설적으로 제품은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고 있다. 스마트 TV는 콘텐츠를 큰 화면에서 편하게 보기 위한 기기다. 자신이 산 콘텐츠를 보기 위해 그걸 볼 수 있는 하드웨어를 또 갖춰야 하는 일은 얼마나 슬픈가. 이제야 아이폰으로 샀든 안드로이드에서 샀든 유튜브로 보든 상관없이 하나의 TV에서 간편하게 즐길 수 있게 됐다.



소니 ‘아이보’가 큰 인기를 얻은 탓일까. LG나 삼성이 선보인 서비스 로봇도 있지만, CES 2019에서 주목을 받은 로봇은 더욱 단순해졌다. 일본 업체가 선보인 러봇(LOVOT)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반려 로봇이다. 체온을 가지고 있고, 사람의 터치에 반응하며, 다른 특별히 유용한 기능은 없다. 내부에 각종 센서 및 카메라가 장착되어서 자율주행이 가능한 로봇임을 생각하면 개발자가 온갖 욕심을 꾹꾹 참은 결과다(2020년에 상용화).



중국 링테크에서 만든 ‘루카’라는 부엉이 로봇은 오직 ‘책을 읽어주는 일’만 한다(상용화). 콩 모양으로 생긴 로봇 섬녹스(Somnox)는 잘 때 끌어안고 자는 로봇이다(상용화). ‘폴디메이트’는 티셔츠를 개는 일만 하는 로봇이고(파산), ‘브레드 봇’은 빵을 직접 반죽해서 구워 파는 로봇 자판기다(상용화). ‘LG 시그니처 올레드 TV R’은 돌돌 말아 화면을 접을 수 있는 기능만으로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미출시).





올해 CES에서 주목받은 제품은 대부분 올해 처음 발표된 제품이 아니다. 지난 2~3년간 실증 테스트를 마치면서 개량된 제품이거나, 다른 제품을 만든 사람이 나와서 만든 제품이다. 폴디메이트나 섬녹스는 2017년에 처음 발표됐고, 러봇은 페퍼를 개발했던 사람이 나와 만든 제품이고, 돌돌 마는 TV는 이미 작년에 관계자들에게 한번 선보였다. MWC 2019에서 공개될 예정인 삼성 폴더블 폰 역시 마찬가지다.



개발자가 꾸는 꿈과 소비자가 원하는 기능은 다르다. 그걸 얼마나 빨리 받아들여서 개량하는가에 따라 제품이 받아들여지는가 아닌가 가 결정된다. 자율주행차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거창한 비전을 내세우며 사람들을 유혹했지만, 그건 소비자가 마음을 열고 기다릴 인내심을 주기 위한 설레발에 가깝다. 


막상 현실에 등장한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 구글 ‘웨이모 원’과 자율주행 배달 서비스는 평범한 모습이다. 올해 자동차 회사들은 자율주행차의 본질을 ‘스스로 운전하는 차’에서 ‘이동하는 시간에 무엇인가를 빌릴 수 있는, 공간을 대여하는 서비스’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결국, 제품의 본질, 업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대응하는 기업과 기기만이 살아남는다. 올해 CES 2019는 화려한 수사에서 벗어나, 신기술을 이용해서 진짜 할 수 있는 것을 어느 정도 찾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한국 회사들 역시 이런 큰 흐름 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열심히 찾고 있었다. 이런 기술과 제품은 언제쯤 우리 삶에 들어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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