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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카 Oct 08. 2024

완전히 미친놈이 제대로 말아주는 광란의 질주

Geordie Greep, <The New Sound>를 듣고

Geordie Greep, <The New Sound> / 2024.10.04

    black midi가 보여준 <Schlagenheim>, <Cavalcade>, 그리고 <Hellifre>까지로 이어졌던 3부작의 스튜디오 앨범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멤버 개개인이 추구하던 원초적인 방향성은 눈에 띌 정도로 달랐었지만, 그 셋이 어찌어찌 이루어낸 조화가 거칠고 기괴한 심연 속의 마법을 선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점화된 불꽃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그들은 여러 피치 못할 사정의 이유들로 해체의 수순을 밟았으며, 이 전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결별은 필자를 포함한 수많은 리스너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해체 이후, 바로 발매된 멤버 조르디 그립(Geordie Greep)의 싱글 "Holy, Holy"와 솔로 앨범 <The New Sound>가 발매된다는 소식으로 인터넷이 활활 불탈 때, 본인은 과연 그가 멤버들 없이 솔로 활동을 잘 이루어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Holy, Holy"를 처음 감상하고 나서 바로 들었던 생각은 그냥.. 혼자서도 잘 하겠네. 이 정도였다. 말은 이렇게 해도 완전히 압도당했었다.


    그렇다. 많은 이들의 염원 끝에 발매된 <The New Sound>. 확실히 그립은 음악을 잘한다. 본작에서 보여준 그의 퍼포먼스는 black midi의 아성에 비견될 정도를 넘어 일정 부분 능가하는 순간들이 여럿 존재했으며, 25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란한 테크닉과 천재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는 확실히 자신의 독창적인 음악성과 방향성을 전부 녹아내려고 하였고, 또 black midi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곳곳에서 두드러진다. 그의 건조하고 날카로웠던 보컬은 더욱 풍미 있게 감정이 스며들어졌으며, 또 이전에 선보여주지 않았던 다양한 장르들을 혼합해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The New Sound>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바로 다양성에 있다. 항상 실험적이고 독특한 음악을 보여주던 그였지만, 특히나 이번 앨범에서는 예상치 못한 장르들이 화려하게 어우러지고 있는데 — 우선 앨범 전반에 걸쳐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라틴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상파울루에서 대부분 녹음되었던 것 때문인지, <The New Sound>에는 살사와 삼바, 또 MPB와 같은 전통적인 브라질 음악 — 그리고 특유의 독특한 리듬이 적극적으로 활용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영향을 집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트랙은 "Terra"인데, 브라질 현지 타악기 연주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살아 숨 쉬는 리듬감을 자랑하는 뱅어 트랙이다.


    그러나 그립은 이에 그치지 않고 ECM 스타일 재즈, 프로그레시브 록, 프랑스 대중 민요, 쇼툰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며 또 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는데에 성공한다. "Blues"는 전통적인 블루스 코드 진행을 따르나, 동시에 그립 특유의 변칙적인 리듬과 디스토션이 가미된 기타 사운드가 더해져 기존의 블루스와는 상당히 다른 형태로 탄생되었으며, Frank Sinatra의 노래를 커버한 "If You Are But A Dream"같은 곡에선 그립의 호소력 짙은 보컬과 재즈, 뮤지컬적인 요소들을 합치고 비틀어 만들어진 훌륭한 결과물이다. <The New Sound>의 각각의 트랙들은 저마다의 세계를 구축해 살아 숨 쉬고 있으며, 하나의 장르에 안주하기보다는 매번 새로운 느낌을 주는 길을 택한다.


    그립의 보컬 역시 <The New Sound>에 생기를 불어넣는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그의 독특한 보컬은 곡의 감정의 폭과 깊이를 극대화하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black midi 시절보다 더욱 자유분방하고 재치 있는 모습들을 보여주어 마치 한 편의 무대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Holy, Holy"에서의 퍼포먼스는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하며, "Blues"의 쫓기듯이 노래하는 퍼포먼스 역시 매우 인상적이다. 또한 그립은 본작에서 남성성을 강하게 내비치는데, 한 여성을 대상으로 하여 자신의 매력을 계속해서 어필함과 동시에 기이하고 그로테스크한 노랫말들을 보여준다. "Through A War"의 '여자가 염소를 낳는 걸 본 적 있어? 그게 바로 용기야'라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가사와, "Bongo Season"의 '방구석에서 두 마리의 쥐새끼가 꼬리를 내리네'라는 표현들 역시 <The New Sound>만의 재치와 재미를 풍부하게 불어넣는다.


    앨범의 하이라이트 "The Magician" 이야기 역시 빼놓을 수 없는데,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본 트랙은 2024년 최고의 트랙이다. 그립의 송라이팅과 작사 능력은 본 트랙에서 그야말로 완벽한 융합을 이루어내며 <The New Sound>를 집약하고 상징하는 놀라운 트랙이 탄생하게 되었다. "The Magician"은 이전 트랙들보다 훨씬 우울하게 시작한다. 느려진 속도, 후회, 거짓말, 실망 등의 주제를 다루며 슬픔의 젖은 화자의 독백이 이어지고, 곡이 4분 30초를 향하고 느린 템포로 갑작스럽게 전환될 때 그립은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진실을 숨기려 했던 과거를 한탄한다. 그의 삶은 이후 8분 동안 점차 무너져내려간다. 12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구성은 그야말로 예술에 가까운 면모를 띤다.


    그러나, 이 무수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The New Sound>가 그 정도로 엄청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본작이 과할 정도로 불친절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음악은 쭉 불친절했다, black midi 3부작 시절부터 그가 손을 댄 모든 곡들은 쉽사리 범접할 수 없게 설계되어 있었다. 그러나 <The New Sound>는 유독 강하다. 물론 이에 환호하는 이들 역시 많겠지만, 1시간 내내 쉴 틈도 주지 않고 테크닉 자랑만을 고집 있게 밀고 나가 적지 않은 피로함을 준다. 분명히 그립이 본작에서 보여준 예술성과 실험 정신은 경이로운 수준이지만, 그 모든 것이 지나치게 집약되어 있어 정작 접근성이라는 측면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앨범 전반에 깔려있는 복잡한 리듬 구조와 예측 불가한 전개, 각 트랙마다 쏟아부어지는 수많은 변주들은 앨범에 집중을 한다고 해도 쉽게 놓치게 되는 부분들이 많다.


    결론적으로, <The New Sound>는 우선 엄청난 작품이다. 2024년 현재 이 정도로 현란한 음악을 보여줄 수 있는 자는 몇 존재치 않으며, 그런 의미에서 본작은 올해 최고의 이벤트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는 풍부한 장르적 이해도와 재능이 뒷받침해 주어 발현될 수 있었던 결과물이었을 것이며, 지난 10년을 통틀어보아도 본작만큼 인상적인 감상을 주는 레코드는 몇 없다. 그러나 <The New Sound>는 그립의 창의성이 전반에 드러나기는 했을지언정, 다소 과하다 느껴질 정도로 복잡한 음악만을 계속해서 보여주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The New Sound>는 여전히 성공이다. 그가 보여줄 것들은 아직 너무나도 많이 남아 있을 것이며, 다음 작품에서는 이보다 더욱 대단한 작품을 들고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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