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국수난기 11 - 마음고생 편
- 합격수기 -
살면서 많은 시험을 치른다.
내가 어릴 적에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시험을 쳤었다.
방금 찾아보니 잊혀진 그 이름.
연합고사
한 반에 50명 내외의 학생이 있었는데
그중에 20명 정도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30명 정도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지망했다.
적어도 내 기억에
친구들은 기다란 세로형 B4 용지 크기의 문제집을 풀면서 시험을 준비했다.
그리고 가끔 합격선을 넘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는 그때 어디로 갔을까.
사실 우리 때, 즉 대학 90년대 학번들까지만 해도
국민학교(!) 시절부터 시험에 이골이 나있었기에
연합고사 정도야 큰 시험은 아니었다.
초1부터 받아쓰기 시험 - 열 칸 네모 공책을 펼쳐 선생님이 불러주시는 단어나 문장을 받아 적는다. 띄어쓰기도 채점대상이다.
초2부터 쪽지시험 - 누런 똥종이(재생지)를 세로로 길게 반으로 접어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주시는 문제에 답을 적는다. 기억나는 건 연필로 꾹꾹 눌러쓰다 보면 구멍이 나서 찢어지던 원망스러운 종이. 그 종이들은 지금 다 어디 있을까.
초4부터 중간. 기말고사. - 이때부터 올백.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도덕.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음악. 체육. 미술... 전 과목을 필기시험으로 치른다. 중간. 기말고사 중간에 또 작은 시험을 계속 친다. 단원평가 같은.
당시에 미술 작품의 작가에 관한 것 중 옳은 것이 아닌 것은. 판화를 만드는 순서대로 쓰시오. 다음과 같은 업적은 남긴 위인은 누구인지 쓰시오. 농구에서 경기는 몇 세트로 이루어지나. 뭐. 이런 문제들이 정말 방만하고 방대하게 출제되었다.
그리고 체육시간에는 섭씨 30도를 넘는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PT체조를 동반해, 물구나무서기, 앞 구르기, 뒷구르기, 뜀틀, 평균대, 철봉, 줄넘기, 100미터 달리기, 장애물 달리기 등등 각종 올림픽 종목을 섭렵했다. 그리고 모두 점수화했다. 10점 만점에 몇 점.
음악시간에는 50여 명의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순서대로 노래를 불렀고, 리코더를 불었다. 그리고 그것 역시 점수화했다.
뭐. 끝이 없다.
시험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던 거 같다.
뭐랄까.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도그럴것이
우리의 점수화는 ‘내신성적’을 위한 것은 아니라서.
그저 학습의욕고취라던가. 학업성취도 평가를 위한 것이어서. 어쩌면 그때뿐인 점수였다.
중학교, 고등학교도 마찬가지로 각종 시험과 점수화, 줄 세우기는 지속되었다.
연합고사, 라는걸 치르고 고등학교에 가기 전에 배치고사를 친다.
배치고사는 말 그대로 반 배치를 위한 시험이다.
그래서 1-1반에 배치고사 1등이 간다는, 카더라가 있었다.
고등학교 내내 교무실 앞에 전교 1등에서 몇 등까지 명단이 붙었다.
그래서 전교 1등을 두 번 이상하면 그 아이의 별명은 전교 1등이 되곤 했다.
중간- 기말 - 더 무서운 모의고사. 를 매달 치르고 나면.
수능을 친다.
그 수백 번, 어쩌면 수천번 일지도 모를 크고 작은 시험의 끝에 비로소 만나는
끝판대장. 대학수능시험.
그러고 잠시 소강상태를 경험한다.
대학에 가서도 시험을 치지만, 나땐 말이지. 정말 아이 돈 케어였다.
지금까지 봤던 시험들에 대한 복수라도 하듯이 맹렬히 논다.
남자 사람친구들은 죄다 학사경고를 2번 받은 후 군대로 갔다.
학사경고 3번은 제적. 이기에 그들은 또 다른 시험. 신체검사.라는 시험을 치르고 군대로 갔다.
아마 거기서도 많이들 시험을 쳤겠지.
나는 안 가서 잘 모른다.
군대 간 동기들이 돌아올 때 즈음부터
다시 진짜 시험이 시작된다.
취업을 위한 시험.
온갖 시험.
토익, 토플, 정보처리기사, 컴퓨터 활용능력, 서류전형, 1차 면접, 2차 면접....
다들 어찌 사는지 점점 소식이 뜸해지는 시기.
그렇게 각기 제 갈길로 간다.
시험 성적에 따라.
경우에 따라, 고시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 뉴 버전의 수능시험을 객관식, 주관식으로 치르게 되는데
뭐. 말하고 싶지 않다. 너무 지난하고 어둑하니.
이렇게 또 시험에 시험을 거듭한 후에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잠깐 종이로 치르는 시험을 멀리한다.
중간중간 치더라도 뭐 별거 아니다. 더한 것도 해봤으니.
그리고 그 후에 모든 시험들은
정답도 없고, 순위를 매기기도 난해하고, 일등이 일등인지, 망하는 길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가끔 수능시험 치는 꿈이나 다시 군대로 끌려가는 꿈을 꾸면서
다들 기성세대가 되어간다. 더 이상 내가 낸 답안지를 평가받지 않는.
탬버린 흔들며 부장님 비위 맞추고, 보고서 쓰면서 몇 번 반려되는 수치심을 느끼기도 하지만. 결국에 우리는 기성세대의 반열에 오른다.
나는 그렇게 전형적인 기성세대가 되었다.
이제 누군가에게 시험문제를 낼지언정, 평가받거나 불합격할까 밤을 지새우는 기회는 매우 희박한
좀 지루하기도 한 그런 세대.
미국에 오기 위해 다시 영어시험도 치고 미국대학교에서 시험도 치지만 이런 건 all or nothing이 아니기에
90년대 학번인 나에게 별일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 나를
밤잠 설치게 한 시험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브런치 작가 신청, 이다.
와.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저 재미없는 90년대 현대사를 장황하게 풀다니.
이래서 내가 4번이나 불합격한 건가 싶다.
나는 다섯 번째에 브런치로부터 작가님. 호칭을 들었다.
첫 도전은 당연히 너무 쉬웠다.
미국에 왔으니 미국 이야기를 쓴다고 해야지.
나는 평범하니까 솔직하게 평범한 주부라고 소개하면 되고
목차? 아직 쓰지도 않는 이야기에 뭔 목차람.
sns? 그런 거 하면 내가 브런치 신청을 하겠어? 생략.
그리고 그간 브런치에 적어둔, 내가 종종 들르는 비공개 카페에서 수많은 댓글을 받은 히트(?) 작을 참고글로 올렸다.
금요일 저녁이었기에
답은 월요일 오전에 확인할 수 있었다.
설마 인터넷상에 글 쓰는 플랫폼인데 글 쓴다는 사람을 거절하겠어?
나는 그날 첫 탈락 메일을 받고서야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게 그리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동네 산책이나 해보려 나간 그 길 위에서
이런 메일을 확인하게 될 줄이야.
너무 충격받아서 메일함을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보고 또 봤다.
그리고 친절한 브런치에서 참고하라고 보내준 링크에는 나처럼 5수 만에 합격한
나와는 다른 유명 작가님의 합격수기가 올라와있었다.
이런 사람도 5수를 하는데 뭐. 그래 내가 너무 얕잡아 봤구나.
그리고 또 썼다.
이번에는 자기소개도 좀 더 상세하게, 책 주제도 좀 더 정성스럽게, 목차도.
이번에는 답장이 하루 만에 왔다.
뭐지. 사람이 평가를 안 하나.
그냥 로봇이 키워드만 보는 건 아니겠지?
나의 유려한(?) 문장을 AI는 이해 못 하는 거 아닐까.
그리고 또 썼다. 이번에는 유튜브와 검색사이트를 통해 합격자들의 노하우를 좀 배웠다.
정말 더 자세히. 나만의 이야기를 쓰라니까. <나만의 이야기>처럼 보이게...
하루도 안돼서 불합격했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온 후 다시 마음을 잡고 또 썼다.
요때는 정말 자신 있었다.
처음과는 접근 방식을 완전히 바꿔서. 목차도 완전히 뒤집어엎어서...
정말 좀 두근 했다. 설마 이렇게 좋은 기획을 거절당하면 나는 정말 안되는 거야. ㅠㅠ
- 응. 그래. 안돼. -
거절을 어쩜 저리도 정성스럽게 할 수 있지.
절대 미련을 못 버리게 하는 저 진정성 있는 말투는..
정말 안되는 거야?
내 글이 그렇게 구린가?
나 따위는 나만의 이야기를 못할 것처럼 보였나
내가 그렇게 별로야? 나는 안되는 거야?
어떤 분은 그냥 자기소개 한 줄, 참고 글도 없이 올려도 한 번에 합격했다는데
나는 뭐지.
울적해졌다.
그리고 그날밤.
오랜만에 취했다.
미국 오고부터 알코올을 장복하고 있기는 하지만
취하는 일은 좀체 없는데 그날은 좀 취했다.
나의 무능력을 4번이나 목도한 내가.
나의 글이 그렇게 구리다는 걸 깨달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지난주에 마시다 남은 와인을 콸콸 마시는 거뿐.
그렇게 나는 내가 제출한 지도 기억 못 하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비로소 합격 메일을 받았다.
제목부터 달랐다.
결과를 알려드립니다. 이런 무미건조하고 매력 없는 제목이 아니라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라는 갬동 가득한 제목.
처음에 든 생각은
이 사람들 정말 일 잘하는구나.
두 번 째는
정말 진심처럼 말하는구나.
도대체 누가 보고 누가 평가하고 누가 메일을 보내는 거지.
나는 이제 중년의 여성이니 웬만한 칭송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다 사회생활을 위한 위장, 이라고 생각한다.
오, 그런데
네 번 만에 받은 저 야박한 브런치의 메일은 제목부터 나의 마음을 뒤흔든다.
작가,라는 그 호칭이 진정으로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나는 2주째 열불 나게 일 잘하는 브런치를 들락거린다.
일 잘하는 그들에게 글 잘 쓰는 작가로 인정받고 싶어서.
나처럼 네 번. 다섯 번 신청한 분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
솔직히 합격메일을 받고 읭? 했다.
뭐지. 그전 신청서가 훨 좋았는데?
정말 AI가 일하나? 아님 이번에는 내 글 스타일을 좋아하는 평가자를 만난 거야?
이런 생각.
그런데 이제 2주 정도 지나고 내 신청서를 다시 떠올려보니.
살짝 조언을 할 수도 있을 거 같다.
- 목차를 잘 쓰세요 -
- 그리고 자기소개와 내가 쓰고 싶을 글을 좀 연결 지어 보셔요 -
두 가지다.
바뀐 것은 두 가지뿐이기에
첨부한 내 글은 재탕이었다.
솔직히 자포자기여서 정성도 없었다.
나는 여타의 어떠한 채널도 운영을 하지 않는 유령이었다.
술에 취해 에라이 안되면 내일 또 쓰지. 하고 보낸 신청서는
이전보다 50자는 덜 적은 자기소개
감성을 배제하고 시험답안지 쓰듯 써내려간 목차.
두 가지였다.
글의 주제도 감성은 배제하고 쓰고 싶은 내용을 썼다.
담담하고 겸손하게.
감성에세이를 쓰겠다고 신청했으나
감성을 최대한 절약하고 썼다. 아니 썼더라.
다섯 번의 도전동안 유일하게 신청서를 캡처한 것은 필시 알코올의 힘이거늘.
저처럼 감성충만하신 분들.
엄청 드라마틱한 역사가 있으신 분 제외하고요
저처럼 그냥 평범한 인생 살아오셨다면 그냥 출판사 사장님 버전으로 한번 해보셔요
출판사 사장님들 취향을 전혀 모르지만,
그냥 내 마음에 취하는 목차 말고, 객관적으로 책에 들어갈 제목으로 구성된 목차요
그리고 응원합니다
저는 정말 행복해요
생전에 남보는 글이라곤 백일장 말고는 안 해본 제가
글을 쓰고 매일 몇 명이 읽었나 기웃대는 모습이라니.
정말 행복하답니다
문장력의 문제가 아니라.
내 글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한거 같다고)
그렇게 제 미국수난기 11편을 마무리해봅니다
생전 처음 써보는 합격수기랍니다.
합격의 기쁨을 상기시켜 준
브런치에 이 영광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