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문학동네
마스크가 얼굴로 다가왔다. 철사가 그의 뺨을 스쳤다. 그때__아니, 그것은 구원이 아니라 오직 희망이었지만, 한 조각 가냘픈 희망이 솟았다. 너무 늦었다. 필경 너무 늦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엘 자기 형벌을 대신 받아줄 단 한 사람__자신과 쥐 사이를 가로막을 수 있는 오직 한 몸뚱이가 있다는 사실을 별안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미친듯이 멈추지 않고 고함을 질렀다.
"줄리아한테 해요! 줄리아한테 해요! 내가 아니야! 줄리아야! 그 여자한테는 무슨 짓을 해도 괜찮아. 얼굴을 갈기갈기 찢고, 뼈다귀가 나올 때 까지 해치워요. 내가 아냐! 줄리아한테 해! 나는 안돼"
그는 뒤로, 쥐들을 피해서 끝없는 심연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의자에 묶여 있었지만 바닥을 뚫고, 건물 벽을 뚫고, 지구를 뚫고, 대양을 뚫고, 대기를 뚫고 떨어져 외부의 공간으로, 별 사이의 심연으로__끊임없이 자꾸자꾸 쥐들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p.349
조지 오웰은 1903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태어나 1950년 폐결핵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두 번의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 대공황 등 인류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간 사람이다. 그는 제국주의, 파시즘, 전체주의, 교조주의, 스탈린체제와 싸웠으며 에세이와 소설에 그 시대를 온전히 남겨놓기도 했다.
에릭 아서 블레어가 그의 본명이며 인도의 벵갈 지역에서 태어났다. 영국의 식민지에 살던 영국인들은 여섯 살이 되면 본국으로 돌아와 교육을 받아야 했다. 영국 행정부 공무원으로 인도 정부 아편국의 하급 관리였던 오웰의 아버지는 1912년에야 영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오웰은 37년간 보수적인 식민지 관료였던 아버지를 부끄럽게 생각했고 <동물농장> 서문에 인도 총독부 공무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여덟 살이 되기까지 거의 보지 못했던 무뚝뚝한 노인"이라고 쓴 에세이와 함께 단 두 번의 언급뿐이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했던 오웰은 세인트 시프리언스에 반액 장하금을 받고 다녔으며 이때부터 가난을 몸으로 체득하며 굴욕적인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인도청 경찰국에 지원하여 경찰공무원으로 버마에서 5년간 근무한다.
버마에서 제국주의 경찰 생활을 하면서 죄의식과 수치심, 식민지국을 탄압하는 제국주의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이 경찰직을 그만두게 했으며 이 경험은 장편소설 <버마의 나날>이라는 작품에 담겨있다.
사회주의자였던 오웰은 스페인 내전 경험을 통해 소련체제에 강한 불신을 가지게 된다. 소련의 행태에 침묵하거나 동조하는 좌파지식인에 대한 분노와 혐오도 커졌는데 이러한 생각들은 <동물농장>, <1984>등의 작품을 구상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조지 오웰은 글을 쓰는 이유를 크게 네 가지로 구분했는데 다음과 같다.
1. 순전한 이기심 :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은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2. 미학적 열정 :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3. 역사적 충동 :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 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4. 정치적 목적: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항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오웰은 이 네 가지 동기 중에서 네 번째 '정치적 목적'이 앞의 세 가지 동기보다 앞선다고 말했다. 그 이유로 그는 시대적 상황을 이야기한다. 평화로운 시절이었으면 앞의 세 가지 동기가 더 중요해졌을지도 모른다. 편향적이라고 할지라도 옳다고 믿는 정치적 신념을 위해 글을 쓴 것이다. 정치적 목적으로 글을 썼더라도 미학적 열정과 역사적 충동이 존재하는 글을 쓰고 싶어 했다.
조지 오웰이 스페인 내전과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나서 쓴 <동물농장>과 <1984>는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전체주의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평생 전체주의를 혐오했고, 전체주의가 주는 해악을 경고했다. <동물농장>은 전체주의화가 되어가는 스탈린 시대의 소련 사회를 우화적 기법으로 풀어나간 소설이며, <1984>또한 전체주의가 양산하는 문제를 풍자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946년부터 집필하여 1948년에 완성한 이 소설은, 완성한 해인 1948년의 뒷자리를 바꾸어 '1984'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미래사회의 모습을 통해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인데, 오늘날에도 대표적인 사회 비판 소설로 읽히고 있다.
<1984> 속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라는 세 강국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이들이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 세 강국 가운데 오세아니아가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다. 오세아니아는 행정부를 4부로 나누어 통치한다. 보도, 연예, 교육 및 미술을 관장하는 진리부, 전쟁을 관할하는 평화부,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애정부, 그리고 경제 정책을 책임지는 풍부부,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진리부는 거짓말을, 평화부는 전쟁을, 애정부는 고문을, 풍부부는 기아를 담당한다. 이러한 자가당착은 우연이 아니라 이중사고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
이중사고란 사람의 마음에 동시에 두 가지 상반된 신념을 갖게 하는, 따라서 그 두 가지를 모두 받아들이게 만드는 능력을 말한다.
행정부를 총괄하는 것은 당인데 텔레스크린과 미이크로폰이 모든 곳에 존재한다. 그리고 어디에 존재하는지도 모를 사상경찰이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가정 또한 안전한 곳이 아닌데 아이들은 부모의 대화나 행동을 엿듣고 사상경찰에게 고발하게끔 훈련되어 있다.
당은 역사를 날조하고 과거도 통제한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라는 이론을 만들어 과거의 기록들을 끊임없이 고친다. 진실과 허위를 구별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당은 인간의 사고 능력을 통제하기 위해 신어를 만들기도 한다. 옛날부터 써온 언어를 구어라고 해서 폐기해 버리고 이를 대체하는 신어를 만들어 인간의 사고범위를 축소시킨다.
<1984>의 주인공인 윈스턴은 당의 감시와 통제, 날조, 사고의 축소 등에 저항하는 인물로, 인간성을 지닌 마지막 인간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기를 쓰고 사랑을 나눈다. 일기는 인간의 가장 사적인 활동이지만 이곳에서는 반역 활동이다. 줄리아와 사랑을 나누는 것 또한 반역죄다.
유일하게 인간성을 지닌 윈스턴은 당에 저항하다가 결국 고문에 의해 철저하게 무너지는데, 그는 그토록 싫어하던 빅 브라더를 찬양하며 끝내 인간성을 잃은 채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이중사고란 사람의 마음 가운데 동시에 두 가지 상반된 신념을 갖게 하는, 따라서 그 두 가지를 모두 받아들이게 만드는 능력을 말한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그것을 진실이라 믿고, 과거를 잊어버렸다가 필요할 때 다시 망각 속에서 기억해 낼 수도 있다. 자신이 현실을 조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중사고가 현실을 왜곡하거나 악화시키지 않는다고 믿는다.
이중사고의 대표적인 형태가 '전쟁은 평화, 자유은 굴종, 무식은 힘'이라는 슬로건이다. 전쟁 뉴스의 이런저런 대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 전쟁 자체가 허위라는 것,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거나 발표된 것과 전혀 다른 목적을 위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전쟁은 평화'라는 이중사고 때문에 사람들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뿐 아니라 전혀 문제시하지 않는다. 당의 모든 계책은 이 이중사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윈스턴이 반역의 무리라고 믿었던 오브라이언은 사상경찰의 우두머리였다. 그는 윈스턴을 완전한 당원으로 만들기 위해 윈스턴이 가장 무서워하는 쥐를 이용하여 악랄하게 고문한다. 이로 인해 엄청난 공포에 빠진 윈스턴은 끝내 자신을 괴롭히지 말고 줄리아를 괴롭히라고 소리치게 된다. 자신이 아닌 줄리아에게 모든 죄가 있다고 떠넘기며 그녀를 배신해 버린다.
자백하게 만들 수는 있을지언정 마음속까지 어쩌지는 못할 거라고 믿었던 생각과는 달리, 너무도 쉽게 사상 개조가 이루어진 것이다. 결국 윈스턴은 당의 지도자인 빅 브라더를 사랑하며 죽을 날을 기다리게 된다.
두번째로 자네가 알아야 할 것은 권력이란 인간 위에 군립하는 권력이라는 사실이야. 인간의 육체위에 군림하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권력이지. 물질에 대한 권력, 그러니까 자네가 말했던 외적인 실재에 대한 권력은 중요하지 않아. 물질에 대한 우리의 지배는 이미 절대적이니까. p.322
사생활 없음, 사랑 없음. 가정 붕괴, 신어로 인해 협소해진 언어 능력 등이 바로 전체주의가 파괴하는 인간의 삶이다. 문명이 더 발전한 21세기, 무엇이 크게 달라졌을까? 가짜뉴스, 댓글부대, 검찰공화국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시민의 안전과 편의라는 핑계로 빅 데이터의 수집은 이제 당연시가 되었다. 범죄율을 낮추는 등의 이점도 있지만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들이 오갔다.
개인 정보 동의 없이는 핸드폰을 개설할 수도 없고 카드를 만들 수도 없다. 실제로 IT업계에서 일한다는 회원의 배우자는 집안의 TV, 노트북, 핸드폰의 카메라를 모두 덮어놓는다고 한다.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정보는 그 소유자가 누구인지도 모를 권력의 관계망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도심 곳곳의 CCTV, 자동차 블랙박스, 카드, 인터넷, sns, 알고리즘, 메일들을 통해 각자의 생활방식이 누군가에게 읽힌다. 이제 사람들의 모든 행동은 자료화된다. 행동뿐만 아니라 사상과 감정, 아이디어와 표현의 영역까지도 그렇다. 그것도 누구의 강제가 아닌 사람들의 반자의에 의해.
마지막으로 윈스턴의 죽음에 대한 해석이 무척 재미있었다.
그는 그 거대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대체 어떤 미소가 저 검은 콧수염 속에 감춰져 있을까 알아내는 데 사십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오, 잔인하고 불필요한 오해! 오, 저 사랑이 넘치는 품안을 떠나 고집스럽게 스스로 택했던 유형! 술내나는 두 줄기 눈물이 코 옆으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잘 되었다, 모든 것이 잘 되었다, 투쟁도 끝났다. 그는 자신을 이긴 것이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p.361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고문으로 변절했던 한 시인이 생각나기도 했다. 고문에서 과연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인간의 마음까지 지배할 수 있다는데 과연 인간이 자신의 의지를 갖고 살아간다는 것이 유토피아적인 사고가 아닐까.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그럼에도 나는 이 부분을 윈스턴이 자신의 이중사고를 끝낸부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스스로 투쟁을 끝낸 거니까 실패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현재 윈스턴이 아니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여전히 소름 돋는 소설 <1984>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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