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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로자 Mar 31. 2022

리뷰: Rosalía – MOTOMAMI

#19. 에스파냐 팝 음악 속, 미래적 얼터너티브의 상을 보여주는 수정구

  겨울 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았던 3월 초(아니면 더 전인가?)의 저녁, 이미 얼큰하게 취했던 나는 합정에 사는 친구 집에서 와인에 마저 취해 쓰러질 요량으로 레더 재킷 하나만 걸친 채 칼바람을 뚫으며 홍대입구 앞을 종종걸음으로 지나치고 있었다. 그 날 거리는 평소와 같았지만 단 하나 눈에 띄는 특이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넌 항상 쓰레기 같은 소리만 해/그래 내 화장품은 모두 한국산이지”라는 정체 모를 문구가 적힌 작은 포스터들이 여기저기 잔뜩 붙어 있던 것. 바르셀로나를 여행할 때 보았던, 게릴라처럼 활동하는 아나키스트들이 곳곳에 도배한 조그만 프로파간다 스티커들처럼 홍대 거리를 수놓은 그 정체 모를 선전물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니 로살리아의 이름과 그의 신보의 제목 “MOTOMAMI”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센세이셔널했던 지난 앨범 “El mal querer”(2018, Sony)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 접하게 된 신보 소식도 반가웠고, 로살리아가 머나먼 서울에서까지 이렇게 공세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할 정도로 글로벌한 팝 스타가 되었다는 것도 새삼스레 신기했다.


  2022년 현재, 로살리아는 여러 의미에서 독보적인 팝 스타다. 여러 정체성이 로살리아라는 이름을 교차해 지나가며, 오늘날의 대중음악시장에서 로살리아의 지위를 규정짓고 있다. 우선 그는 동시대에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는 여성 아방가르드 팝 싱어송라이터다. 이러한 범주에 들어맞을 여러 뮤지션들, 가령 로살리아나 FKA 트윅스, 소피나 찰리 XCX 등이 80년대의 케이트 부시나 90년대의 뷰욕을 계보학적으로 뒤따른다는 단순한 정의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 각자의 개성과 비범함을 그렇게 환원해버리는 건 커다란 실례다.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얼터너티브나 하이퍼 팝 문법을 동원해가며 팝의 전형성이라는 것을 망치질하고 극복해 간다. 한 편으로 이들은 이렇게 도달한 대안적 위치에서 여성이자 자기 자신으로서 스스로를 거쳐 간 고유의 경험들을 증언한다.


  여기에서 로살리아가 동료 뮤지션들과 구분되는 지점 하나는 그의 언어와 내셔널리티다. 지금껏 주목받았던 대부분의 여성 아방가르드/하이퍼 팝 싱어송라이터들이 영미권 출신의 영어 화자였던 것과 달리, 카탈루냐 출신의 로살리아는 라틴 팝을 주요한 뿌리로 간직한 채 에스파냐어로 노래를 한다. 전 세계에 로살리아의 이름을 알린 앨범 “El mal querer”는, 플라멩코의 리듬과 애수를 얼터너티브 R&B 그리고 아방가르드 팝 음악의 실험법과 접합해 낸 결과물이었다. 여기에서 로살리아만의 독보적인 얼터너티브 문법을 그리는 청사진이 완성된다.


  로살리아가 오랜 시간 공들여 준비한 “MOTOMAMI”는 장르음악적 성격에 한층 더 힘을 싣고 나왔다. 이는 대중음악이 아닌 하나의 장르음악 범주로서 ‘팝’이라는 것의 정체성에 힘을 주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MOTOMAMI”의 오프닝 트랙으로 싱글 컷이 된 ‘SAOKO’에서부터, 앨범의 사운드는 야심차고 도발적이다. 대디 양키의 활약 덕분에(?) 일렉트로니카를 활용한 2010년대 라틴 팝의 가장 기본적인 댄스 리듬으로 자리잡은 레게톤 비트가 중독적인 루프로 흘러 나오기 시작한다. “쿵-짝 쿵짝”이 반복되는 레게톤 리듬은 ‘SAOKO’와 ‘CHICKEN TERIYAKI’ 같은 싱글들을 위시한 이번 앨범의 여러 트랙에서 주요한 토대로 활용된다. 하지만 로살리아는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양산형 레게톤 트랙들의 전형성을 이탈한다. 가령 ‘SAOKO’에서는 프리 재즈나 모달을 연상케 하는 뒤틀린 피아노 브릿지가 댄서블한 분위기 사이에 재치 있게 끼어든다. 하지만 ‘SAOKO’가 보여주는 형식적 기발함보다도 흥미로운 것은, ‘SAOKO’가 오프닝 트랙으로서 확실히 정립해 가는 컨셉트 앨범 “MOTOMAMI”의 주제의식이다. ‘SAOKO’라는 트랙의 제목 그리고 후렴으로 등장하는 “Saoco, papi, saoco”는 대디 양키가 ‘Saoco’라는 곡에서 사용하기도 했던 일종의 ‘플러팅 멘트’다. 매력적인 타자를 객체화하는 플러팅 멘트를 후렴으로 가져오는 로살리아는 그 앞에 “Chica, ¿qué dices?”(“야, 도대체 뭐라는 거야?”)라는 질문을 붙여 비웃고, 곧 ‘내’가 어떻게 전진하고 임파워링되는지를 노래하기 시작한다. “바이크(‘MOTO’)를 타는 어머니(‘MAMI’)”의 이분법을 교란하는 상을 통해 주체적 여성성을 포착하고자 하는 로살리아의 기획이 선언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요즘 한창 바쁜 위켄드가 피처링한 앨범의 리드 싱글 ‘LA FAMA’는 서정적 색채로 다시 풀어낸 레게톤 트랙 ‘CANDY’를 뒤따라 온다. 다른 트랙들에 비해 조금 더 전통적인 바차타 사운드를 담고 있는 ‘LA FAMA’는 사실 로살리아 본인이 인정할 정도로 평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마냥 혹평 받기에는 아까운, 위켄드의 에스파냐어 보컬과 로살리아의 보컬이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두 뮤지션이 보컬리스트로서 가진 매력을 근사하게 보여주는 잘 짜인 팝 트랙이다. 인더스트리얼의 강렬함으로 풀어낸 레게톤 싱글 ‘CHICKEN TERIYAKI’를 지나 반전적 분위기를 풍기며 등장하는 ‘HENTAI’는 피아노 한 대와 현악을 중심으로 미니멀하게 풀어가다 IDM적 요소와 부딪히는 발라드 트랙이다. 여기에서 로살리아는 로맨스와 섹스 사이를 화려한 언어로 줄타기한다. 한 편 여덟 번째 트랙 ‘G3 N15’이 선사하는 개인적 감상과 서정도 인상적이다. 팬데믹의 한가운데 미국에 홀로 고립되어 있던 때를 노래하는 발라드 트랙은 로살리아의 목소리와 오르간에 의지해 출발하다, 어느 시점에서는 오르간 사운드에 힘을 주어 미니멀리즘에서 맥시멀리즘으로의 전화를 이룬다.


  앨범의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완급 조절 사이에서 불쑥불쑥 두드러지는 실험적 면모들이 눈에 들어온다. 제임스 블레이크가 참여한 ‘DIABLO’에서 발라드적 분위기를 뚫고 나오는 하이 게인의 전자음과 글리치 사운드는 아르카를 연상케 한다. ‘CUUUUuuuuuute’에서는 IDM 풍의 전형성을 이탈하는 일렉트로닉 리듬이 본격적으로, 그리고 공격적으로 펼쳐진다. 고전 영화의 사운드트랙이나 옛 스탠더드 팝의 낭만을 가리키는 ‘DELIRIO DE GRANDEZA’나 레게톤 리듬 위에 앰비언트적 감각을 부여한 ‘LA COMBI VERSACE’, 마치 FKA 트윅스가 “Magdalene”(2019, Young Turks)에서 했던 것처럼 숭고한 상승을 통해 앨범의 문을 닫는 ‘SAKURA’ 등등, 여러 트랙들이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놀라움을 선사한다.


  “MOTOMAMI”는 여러 지점에서 아티스트 로살리아의 전진을 확인시켜주는 매력적인 앨범이다. 앨범은 라틴 팝의 여러 요소들, 예컨대 레게톤에서 플라멩코, 바차타의 리듬을 들이마시고 수용하지만 무엇 하나로 환원되지 않고, 동시에 재즈와 일렉트로니카의 실험법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지만 이를 에스파냐 팝의 정체성을 해치거나 가리기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경계에서 뒤섞이며 새로운 것을 드러내는 것은 “MOTOMAMI”가 간직한 최고의 매력이다. 형식에서의 이러한 인상은 두 가지의 젠더 이분법적 이미지를 접합해 여성혐오와 젠더 이분법을 교란하는 여성주의적 서사로 다시 빚어내는 로살리아의 메시지와 놀라운 정합성 속에 마주친다. “MOTOMAMI”는 ‘에스파냐’ ‘여성’ ‘아방가르드 팝’ 뮤지션이 그려갈 디스코그라피의 멋진 미래를 미리 갈무리해 보여주는 앨범이다.



“MOTOMAMI”, Rosalía


2022년 3월 18일 발매
정규 앨범
장르: 익스페리멘털 팝, 아트 팝, 아방가르드 팝, 라틴 일렉트로닉, 얼터너티브 레게톤
레이블: Columbia
평점: 7.8/10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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