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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영 Sep 13. 2020

엄마가 바쁠수록 식구들은 편해진다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어


나는 장조림에 들어있는 계란 껍질 까는 게
제일 싫어. 손에 간장 다 묻잖아.



대학 때 나의 베프는 늦둥이였다. 언니 오빠랑

열 살 이상 차이 났고, 어머니 연세모르겠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이미 할머니 느낌이었다고 한다.

연로하신 데다 워낙 살림에 흥미가 없으셔서

음식도 거의 안 하신다고 친구가 불만을 토로했다.

나는 늦둥이가 아니었고, 그래서 우리 엄마는

젊은 편이셨지만 살림에 관심 없기는 친구 어머니와

비슷했기에 서로 엄마 흉보기 틀이 이어졌다.

그런데 친구의 저 한마디에 나는 백기를 들었다.
우와....

혹시 내가 잘못 이해한 건가 싶어 다시 한번

물어보았더니 맞단다. 그러니까 친구 어머니는

장조림을 하실 때 귀찮다고 물+계란+간장을

한꺼번에 넣고 삶으신단다.

그러면 각자 밥 먹을 때 계란을 셀프로 까는 거다.

음식 하는 입장에서는 편하겠지만 먹는 입장에서는

밥 먹다 말고 손에 간장 묻히고 흘리면서

잘 까지지도 않는 달걀 껍질을 까야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닐 테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면서, 뭐야 우리 집도 그러는데!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죄송하다.

하지만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불편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기억하는 제일 싫었던 건, 국을 먹다가

멸치를 씹었을 때다. 나는 생선을 싫어하고,

게다가 국물용 멸치는 혐오한다.

국물에 푹 퍼져서 은빛 껍질이 분해되고

갈색 몸통과 퉁퉁 불은 눈 달린 대가리가 드러나고...

그런데 그걸 씹다니 ㅠㅠ
입맛이 뚝 떨어지는데 엄마는

한 번도 육수를 낸 뒤 멸치를 건지지 않으셨다.




세월이 흘러 그녀도 나도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고 살림과 육아를 했다.

가까운 동네에 살고 아이들도 동갑이라 서로

왕래했었는데 우리의 살림 스타일은 조금 달랐다.

나는 과일이든 요리든, 최대한 먹는 사람이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손질을 해서 준다.

솔직히 시간도 많이 뺏기고 꽤나 번거로운 작업이다.

예를 들면 수박은 씨를 다 뺀 다음

포크로 한입에 넣을 수 있도록 깍둑썰기를 해서 내고,

고기는 식구들이 질색하는 비계, 힘줄, 껍질 등은

거의 해부 수준으로 제거해서 요리한다.

생선도 껍질과 가시는 모두 발라서 낸다.

그래서 식구들은 내 음식을 안심하고 먹는다.

볶음밥을 하더라도

버섯과 새우를 싫어하는 둘째에게는

다 가려내서 주고,

파프리카를 못 먹는 큰애의 피자나 불고기는

미리 다 골라내고 준다.

물론 어릴 때엔 편식이 걱정되어

다 먹이려고 시도해봤지만 헛구역질을 하거나

가벼운 알레르기가 있는 걸 알고는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는 달랐다.

딸기를 초록 잎이 달린 꼭지 그대로 주길래

아이들이 먹기 불편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자기는 귀찮아서 그 이상은 못 해주겠단다.
씻었으면 되었지, 그거 하나하나

꼭지까지 따주어야 하냐면서

그런 건 먹는 사람이 알아서 하란다.
자기는 절대로 귀찮은 건 하지 않겠다고 한다.

물론 나도 귀찮고 힘들다.

가족을 너무 사랑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내가 어릴 적에 엄마 밥상을 받으면서 불편했던

점들을 내 식구들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하나라도 더 신경 쓰는 것뿐이다.

친구도 학생 때는 불편한 점들을 토로했으면서

주부가 되더니 자기가 겪었던 불편들을

그대로 물려주고 있다.

그새 잊은 걸까?




부모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 것 같다.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너라도 누리렴 과
나도 못하고 컸으니 너도 그냥 참고 견뎌!

둘 중 뭐가 더 낫다고 내가 말할 수는 없지만
나중에 아이들이 어린 시절의 엄마를 기억할 때
엄마 음식은 비린 껍질도 물컹대는 비계도

질긴 힘줄도 없어서 마음 놓고 먹었지, 

우리 엄마는 항상 우리가 먹기 좋고 편하게

손질해 주셨지,

그런 따듯한 느낌을 갖기를 바란다.

비록 천하일미나 사대별미를 대접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을 배려했음을,

내 어릴 적보다 나은 환경을 마련해주고 싶어 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다정하거나 인자한 분이 아니셨다.

희생적인 분은 더더욱 아니셨다.

먹거나 생활하는 데에서 오는 불편함은

누구나 느낄 수 있으니까 시정이 가능한데,

엄마의 사랑은 어디까지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지

나도 잘 모른다.

남들이 쓴 글을 보아도 추상적인 개념이라

막연히 사랑받았나 보다 희생하셨나 보다

짐작만 할 뿐이다.

그래서 식사나 일상의 편의를 제공해주는 걸로

나는 아이들에게 내 마음을 표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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