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에 도서관 두 곳이 있다. 한 곳은 걸어서도, 차를 타고도 갈 수 있고 한 곳은 등산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무조건 차를 타고 가야 한다. 대중교통은 마을버스뿐이라 타고 가면 버스 따라 뱅글뱅글 도는 게 기본이기에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무리 좋아도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곳으로 자주 가게 된다. 그곳도 뒤쪽으로 산이 있어 숲속에 있는 기분까진 아니더라도 자연 속에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실제로 생각 정원이라 만들어진 쉼터 뒤로 편백나무 삼나무 등등이 울창하게 뻗어있어 쉬면서 묵은 마음 같은 걸 털어낼 수 있다. 또 가는 길에 어릴 적 여러 번의 수술과 입원을 했던 대학병원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데 여러 개의 별관까지 만들어져 지나갈 때마다 추억 아닌 추억에 젖게 된다. 외래진료를 받은 날엔 지금은 거의 사라진 근처 골목 식당가에서 엄마는 늘 달래듯 밥을 사주었다. 엄마를 독차지하고서 맛있는 밥까지 먹으니 어렸음에도 무서운 엑스레이 촬영과 피검사를 잘 참아냈던 것 같다. 물론 울기는 했다.
쉬는 날이면 습관처럼 도서관으로 향한다. 이번엔 빌려온 책을 다 읽지 못하고 반납이다. 어떨 땐 다 읽어 더 읽을 것이 없고 어떨 땐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도서관 행이다. 마을버스와 병원으로 가는 순환버스 둘 다 운행시간이 정해져 있어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오래 기다리는 통에 오늘은 걸어가기로 한다. 팔지 않아도 되고 사지 않아도 되는, 아무 이유도 관계도 없는 사람들과 스치며 걸으니 이 세계의 자연스러운 풍경이 된 거 같아 들뜬다. 나는 고작 이런 일로 들뜬다. 트랙이 있는 운동장을 지나 오랜만에 육교 위를 걷는데 속이 울렁거린다. 어릴 적엔 뛰어도 다녔는데 나이 탓인지 이제는 거의 사라진 육교를 걷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모르겠다. 저 멀리 산꼭대기 집들만 바라보며 걷는다. 예기치 못한 난관이 생겼으므로 여기 도서관 가는 것도 고민이다. 멀쩡한 척 다 걷고 내려와 잠시 서서 숨을 내쉰다. 도서관까지는 적어도 5분 넘게 더 걸어야 한다.
병원 입구 쪽엔 사람 반 택시 반이다. 한번은 일부러 병원 안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부산한 듯 가라앉은 분위기와 알코올과 주사액 냄새 같은 게 여전했다. 계속 있으면 기분이 끝없이 가라앉을 거 같아 서둘러 나왔다. 병원을 지나 올라가면 등산로 입구가 나오고 옆으로 난 좁은 길로 조금 올라가면 도서관이다. 빌려온 책을 반납하고 둘러본다. 신간 코너부터 살핀다. 들어오는 책을 조절하는 것인지 책장이 거의 비어 있다. 사람들의 독서활동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면 좋은 일이지만 아니라면 아쉽다. 시간이 넉넉하니 자세히, 꼼꼼히, 호기심을 가지고 들여다본다. 온종일 책에 둘러싸여 있는 나도 여기선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몰라 망설인다. 사람들이 책방에서 책을 고르지 못할 때 핀잔 아닌 핀잔을 주기도 했는데, 핀잔은 내가 들어야 한다. 책방에 널려 있는 게 책인데 볼게 마땅치 않다고 말하는 사람의 마음도 이해하기로 한다. 읽어본 적 없는 작가의 책 몇 권을 집어 든다. 설레는 일이다. 그 마음 가득 담고서 이번에도 버스 말고 걸어 내려간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에 따스함이 묻어 있다. 봄이 오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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