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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Oct 17. 2018

트럼프를 만난 카니예 웨스트

이해는 되지만 용서는 어려운 일편단심 사랑


2000년대 힙합 전설 카니예 웨스트(이후 칸예)가 도널드 트럼프의 열혈 팬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전부터 지지 의사를 밝혀왔던 칸예는, 트럼프 당선 이후 공공연히 소셜 미디어에 트럼프에 대한 일편단심 사랑(?)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선거운동 슬로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공공연히 SNS에 트럼프를 향한 존경과 흠모를 기록하는 모습에 혹자는 노이즈 마케팅을 의심하기도 했다.

결국 카니예 웨스트는 ‘성공한 덕후’가 됐다. 9월 미국 유명 코미디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Saturday Night Live)에 트럼프 모자를 쓰고 출연한 그는 무대 위에서 ‘트럼프는 인종주의자가 아니다‘라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얼마 후 현지시각 10월 11일 백악관을 방문해 ‘우상’ 도널드 트럼프와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미국 흑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초대였다는데, 정작 대화 내용을 살펴보면 셀럽을 향한 열혈 팬의 ‘아무 말 대잔치’에 가까웠다.

대화를 시작 후 5분 동안 속사포처럼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칸예 앞에 트럼프는 멋쩍은 미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애플에게 에어 포스 원(미국 대통령 전용기)를 만들게 하여 아이플레인(iPlane)이라 부르자’, ‘MAGA 모자를 쓸 때마다 슈퍼히어로가 된 것 같다. 당신은 슈퍼맨의 빨간 망토를 내게 만들어준 사람‘, ‘나 같은 XXX가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건 믿기 어려운 일’, ‘나는 힐러리 클린턴을 사랑한다(!)’ 등등. 트럼프는 브렛 커버너 대법원장 후보 청문회로 실추된 이미지를 카니예로 어느 정도 돌렸고 칸예는 현재 그에게 최고의 ‘영웅‘을 만났으니, 결과는 서로에게 윈윈이다.



칸예의 트럼프 사랑은 여타 셀럽들의 정치 의사 표현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여느 정치적 목적이나 여론 전환의 용도보단, 그 자신이 밝힌 대로 ‘용의 심장’을 가진 트럼프가 칸예 본인과 유사했기에 끌렸다고 보는 편이 옳다. 타협을 모르고 단 한 번도 안정된 길을 밟지 않은 칸예의 자존감은 어마어마한 수준으로, 이런 자아 사랑이 2000년대 힙합 음악의 혁신과 거대 패션 브랜드 ‘이지(Yeezy)’를 설립한 핵심 요소다. ‘흑인이면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에 반대하고, ‘자유로운 생각만이 해방의 유일한 도구’가 될 것이라는 칸예의 생각은 낮은 지지율에도 굳건한 지지 계층을 다잡는 트럼프의 거친 행보와 상당 부분 비슷하다.

둘의 만남을 패러디한 10월 14일 SNL은 이런 핵심을 잘 짚었다. 트럼프로 분한 알렉 볼드윈이 ‘칸예는 멈출 줄을 모른다. 자기 말 외 그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아 한다. 그를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누구지?’라 질문하자 그의 내면의 목소리가 ‘앗, 그건 흑인인 나다!’라 소리치는 장면이다. 칸예에게 트럼프는 ‘날 닮은 그대’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단순히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트럼프를 공개 지지하기엔 칸예가 현대 대중문화에서 너무 중요한 인물이라는데 있다. 흑인 민권을 부르짖는 힙합 아티스트들과 소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팝 아티스트들이 빌보드 차트에 오르는 최근 음악 시장에서 칸예의 트럼프 지지는 맥 빠지는 이야기일 뿐 아니라 그가 쌓아놓은 음악 성취 또한 갉아먹는 일이다. ‘니그로’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고, ‘블랙 리브스 매터’ 운동에 ‘올 리브스 매터(All Lives Matter)’로 응답하는 대통령을 힙합의 대표적 아티스트 칸예가 사랑한다니. 좀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최근 긴 침묵을 깨고 민주당 후보 지지 의사를 밝힌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행보와 더욱 대비되며 칸예의 체면은 더욱 구겨진다. 테일러는 지난 6일 인스타그램 글을 통해 11월 6일 미국 중간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 테네시주의 민주당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상대 공화당 후보 마샤 블랙번을 ‘여성 동등 임금, 여성 폭력 방지 법안에 반대했다’며 보이콧했다. 그러면서 ‘후보자를 공부하고, 자신의 신념에 맞는 후보자에게 투표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유권자 등록을 촉구했는데, 이후 16만 명의 신규 유권자가 등록했으며 그 중 6만 명이 테네시 거주자들이었다.

일각에서는 테일러의 선언에 자극받은 트럼프가 칸예를 백악관에 초청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순진한 칸예는 트럼프라는 인물에 반해 덥석 그 제안을 받아버린 것이다. 이 만남으로 트럼프는 약간의 이미지 개선을 얻었지만 칸예는 잃은 것만 많다. SNL은 물론 미 전역에서 그를 비꼬고 풍자하는, 심하면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는 지난 5월의 트럼프 지지 선언 때보다 훨씬 과격해진 반응이다.



인기 여가수 라나 델 레이는 SNS를 통해 ‘그는 우리 문화계의 크나큰 손실’이라는 말을 남겼다. 인기 힙합 라디오 진행자 샬라마뉴 더 갓(Charlamagne The God)은 칸예와의 인터뷰를 ‘생산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취소했다. 인기 배우이자 토크쇼 진행자 데이브 샤펠은 ‘칸예는 내 형제고 나는 그를 사랑하지만, 그런 X소리(S-it)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라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칸예는 트위터에 ‘마음 수련 - 마인드 컨트롤’이라는 제목으로 소셜 미디어 시대의 심리에 대해 긴 글을 올리고, 우간다로 날아가 대통령과 아이들에게 자신의 이지 운동화를 선물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보통 사람이면 아쉬워할 일도 없겠지만 칸예는 현대 대중음악의 흐름을 바꾼 천재 아티스트다. 그의 말마따나 ‘왜 칸예같은 XXX가 트럼프를 지지하는지’, 이해는 가지만 믿기 싫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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