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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Jul 25. 2022

뉴진스는 흥미롭다.

노스탤지어 파도 위에서 서핑하는 뉴진스 기획의 힘




뉴진스 첫 음반은 파우치 형태 백 한정판 앨범이 있다. 동그란 모양의 귀여운 파우치다. 가방만 파는 건 아니다. 가방 안에 CD와 포토카드가 들어있는 구성이다. 블랙, 화이트, 레드 3색에 앨범과 포토카드가 들어있다. 오늘 민희진 대표가 인스타그램에 밝힌 제작 배경이 재미있다. 


"제가 어린 시절에 cdp를 항상 들고 다녔는데, 마땅히 맘에 드는 사이즈의 가방이 없어 예쁜 파우치를 많이 찾았었어요, 그때 기억으로 음반을 가방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구요. 그래서 cdp가 들어갈 수 있는 사이즈로 제작!"



CD를 담는 가방은 꽤 있었다. 책보다 약간 작은, 오늘날 박스 케이스 사이즈의 작은 가방 지퍼를 열면 수십 장의 얇은 CD 비닐 케이스가 펼쳐졌다. 하지만 CDP 전용 파우치나 가방은 없었다. 하긴 2000년대 중반이었으니 CD로 음악 듣는 것도 구식이었다. 당시는 10만 장 판매 앨범이 세 장밖에 나오지 않던 한국 가요계 최악의 불황기였다. 


중학교 입학하던 2007년, 수학여행에 가지 않는 조건으로 엄마는 그토록 바라고 졸랐던 5만 원대 소니 CDP를 사주셨다. 껌전지를 넣고 떡볶이 리모컨을 연결해 재생 버튼을 누르면 CD 플레이어는 윙-윙 소리를 내며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주었다. 처음으로 내 돈 주고 산 CD는 에미넴의 The Marshall Mathers LP였다. 용돈은 빠듯하고 음악은 듣고 싶어서 유치원 다닐 때 엄마가 오디오로 들려주곤 했던 추억의 디즈니 메들리 CD까지 넣어 들고 다녔다.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실 나는 이듬해 다시 한번 떼를 써서 mp3 플레이어까지 손에 넣었다. 하지만 CD로 음악을 듣는 건 왜인지 모르게 신성한 느낌이었다. 진짜 음악을 듣고 있다는 허세를 충족하기에 그만한 행위가 없었다. 틈틈이 한 장씩 사서 모은 앨범을 절대 중간 멈춤, 넘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들었다. 19세 미만 청취 불가 딱지가 붙어있던 SOAD와 그린데이 CD는 친구 부모님께 부탁했다. 밖에서는 mp3를 들고 다녔지만, 집에서는 무조건 CD로 음악을 들었다.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나는 고향을 떠나 눈 내리는 경기도의 새벽에 내던져졌다.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 광역버스 첫차를 타고 가던 나의 등하굣길은 20km였다. 6시 첫차를 타지 못하면 무조건 지각이었다. 심지어 한동안은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자고, 할머니 댁에서 아침을 해결한 후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걸어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다녀야 했다. 미처 올라오시지 못한 부모님께 택배를 부탁드렸다. 죽기 전에 들어야 할 노래/음반 책 두 권과 시규어 로스의 Agaetis Byrjun, 뱀파이어 위켄드의 Contra였다. 


정확히 한 시간 달려 학교 앞에 도착하던 그 버스 안에서 매일같이 CD 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었다. 책가방 안은 수능 교재와 더불어 CD 5~6장으로 빼곡했다. 등교 때 들을 진지한 앨범,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위한 서너 장, 지친 새벽의 하굣길을 채워줄 마지막 한 장이었다. 떡볶이 리모컨에 선물 받은 하이엔드 이어폰을 연결하고 가방 끈에 이어 나름 멋도 부렸다. 하나도 근사하지 않았고, 음악 듣느라 공부는 항상 뒷전이었다.


군에서도 CD플레이어의 활약은 계속됐다. 고등학교 시절 대충 훑었던 스페인어를 공부한다는 핑계로 검토필증을 받아 CDP로 많은 음악을 들었다. 듣고 싶어 정신 나갈 것 같던 비욘세의 Lemonade를 돌려 들었을 때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폴 사이먼의 Graceland와 베이비페이스의 The Day, TLC의 앨범을 들으며 이건 내 인생작이다라고 멋대로 정해버렸다.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겨울왕국 OST는 두말할 것도 없다. 


NewJeans (뉴진스) 'Attention' Official MV


뉴진스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혁신과 새로움보다는 순수한 즐거움과 그리움이다. 


오래된 스마트폰 레이아웃 위 복고적인 폰트와 디자인으로 꾸며진 뉴진스의 홈페이지에는(웹사이트보다 ‘홈페이지’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기에) 2000년대 포털 사이트의 향수가 가득하다. 아이디카드를 발급받으면 다이어리 꾸미기, 베이킹, 서핑 클럽의 일원이 된다. 전용 앱 포닝(Phoning)은 2000년대 감성의 과장된 디자인과 폴더폰, 스마트폰에서 볼 법한 UI로 꾸며져 있다. 최근 몇 년 간 1990년대 중후반의 음악과 2000년대의 문화 요소를 기억하는 세대의 집단적 향수가 유행으로 거듭나는 모습이 보였고, 팬데믹 시기는 Z세대로 하여금 Y2K 문화를 소환하게 했다.


‘Attention’, ‘Hype Boy’, ‘Hurt’가 펼쳐 보이는 세계는 어떤가. 1970년대 소울/펑크, 1990년대 TLC, 엔 보그, SWV 등이 떠오르는 몽롱한 음악과 해외 로케이션으로 촬영한 미국 어딘가의 하이틴 무비 세트장 뮤직비디오 위에서 멤버들은 능숙하게 스마트 기기를 꺼내 들며 청춘의 한때를 보낸다. 


뉴진스의 세계는 누군가의 기억 속 동경, 낭만, 풋풋한 시기에 대한 회상으로부터 씨실과 날실을 뽑아내어 실밥 하나 없이 매끈하게 직조해낸 디지털 태피스트리다. MZ세대(여기에는 유효한 개념이다)가 노스탤지어라는 단어 아래 연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요소가 뮤직비디오 속 거대한 모바일 세계의 바다를 둥둥 떠다닌다. 쌉싸름한 짝사랑도, 미묘한 친구들과의 관계도 지나고 보면 언제나 좋았던 순간뿐이다. 민희진 대표의 인스타그램 게시물이 발랄하고 두근두근대는 이유다. 



에프엑스, 레드벨벳, 샤이니, SM 등 여러 팀의 이름과 대표의 존재감이 많이 언급된다. 그러나 다르다. 뉴진스는 뉴진스다. 


에프엑스를 예로 들자면, 뉴진스는 에프엑스를 닮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강한 개성과 독특한 취향을 가진 새로운 세대 등장'을 선언하며 'NU ABO'를 부르던 그 시절에 대중문화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던 이들의 취향을 저격하고 있다. 


동시에 그 세대가 이야기하는 '살아보지 않은' 2000년대의 추억이 궁금한 Z세대에게도 폭넓은 취향의 파도를 일으켜 마음껏 서핑하며 노스탤지어에 흠뻑 젖게 만든다. 지금까지 내가 바라본 뉴진스 기획의 힘이다. 


데뷔 단계에서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나는 뉴진스 멤버들이 민희진 대표가 공들여 깔아 둔 멋진 파티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마음껏 만끽하고, 당당하게 성장하여 세상을 바꿀 주체적인 메시지를 소리 내어 말하는 단계까지 이르기를 바라고 있다. '민희진 대표가 프로듀싱한 걸그룹'으로 커리어를 쌓아나가길 원하지 '민희진 걸그룹'으로 남길 원치 않는다. 누군가의 취향을 담는 그릇에 머무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비애티튜드와의 인터뷰에서 민희진 대표가 자신을 '엄마를 대신하는 역할이자 친구의 마음'을 가진 육성자라 이야기한 대목이 떠오른다. 우리가 뉴진스를 바라보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혼자 다가오지도 않은 먼 미래를 자꾸만 그려보게 된다. 그만큼 지금의 뉴진스는 흥미롭다. 


*글을 쓰다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내 CD플레이어가 현재 네이버에서 110만 원(!)에 팔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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