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by 김범인

오랫동안 내게 산책이란 '걷다'라는 행위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많은 것을 포함하는 단어이지만 나는 그 원초적 행동에 제일 큰 무게를 두었던 것 같다. 어딘가로의 이동, 그것을 위한 내 몸의 움직임이 그 단어의 핵심이었다. 그 외의 다른 것들은 걷기라는 동작을 통해 얻는 부스러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때는 산책이 내 삶에 큰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예전에는 목적 없이 그저 걷기만 한다는 것을 참 무의미하게 생각했다. 명확한 목적지가 있을 때, 어떠한 도구나 수단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공간을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내게 만족스러운 활동이었다. 나의 몸을 쓴다는 것은 내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는 일이었다. 나는 발이 아프고 몸이 피로해질수록 그것을 잘 살고 있다는 은유로 받아들였다. 만약 목적지가 없는 경우라면 걷기를 타인과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활용했다. 나는 마음 맞는 누군가와 함께 풍경과 분위기에 취하고 대화를 하며 걸었다. 공통된 공간과 시간을 지나가며 그 누군가와 더 친밀해지는 행위였으니 그 자체로 목적이 되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먹고 자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인 걷기에서조차 목적지향적이던 나는 요즘 무위의 산책을 즐긴다. 오로지 걷기 위해 걷는다. 이렇게 산책 자체를 즐기게 된 것은 코로나로 인해 외출을 극도로 자제하던 시기부터이다. 나는 잠시의 해방감을 위해 혼자 집 앞 하천을 따라 걷곤 했다. 미지의 장소를 산책하는 것은 아니었다.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오로지 길을 따라 걷기만 했다. 목적지는 없었지만 익숙한 하천을 따라 내가 가고 싶은 곳까지 걷다가 돌아왔다. 좁은 공간 속에서 바이러스를 피해 웅크리고 있는 나 자신에게 갑갑함을 느끼던 중이었다. 해방감 외에는 산책을 하며 얻을 다른 어떠한 효과도 기대하지 않아서일까. 어느 순간 나는 주변을 살피게 되었다. 걷는 동안 보고 듣고 냄새 맡는 모든 것들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조용히 나 혼자만의 생각 속으로 빠져드는 그 순간을 즐겼다. 걷는 것만으로 나의 몸이 아직 세상 속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단지 내 몸이 열려있는 공간에서 움직인다는 사실로 인해 그동안 억눌러오던 세상에 대한 나의 크고 작은 생각들이 폭발했다. 몸의 해방감으로부터 시작하여 얽혀있던 생각들이 해소에 이르자 나 자신은 온전한 자유를 찾은 듯했다. 사람과 부딪혀 사는 것만이 따뜻함을 발견하는 것이라 여기던 내게는 생소한 느낌이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동안 산책을 즐겼지만 처음의 그 느낌은 여전히 나의 마음속에 남았다.


내게 이제 산책은 사유 세계로의 진입이다. 나의 발걸음은 깊기도 하고 얕기도 한 나의 생각에 리듬을 맞춰 빨라지기도 느려지기도 한다. 그 리듬에 몸을 맡기면 어느 순간 걷고 있는 나 자신을 잊곤 한다. 그리고 나는 완벽하게 고독해지기도 하고 완전하게 행복해지기도 한다. 이런 여정을 거쳐 산책을 다녀오면 오늘도 더 건강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나의 에너지를 써서 몸을 움직였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방해 없이 진지하기도 유치하기도 한 생각을 질서 없이 세차게 하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의 무료함이나 삶에서 나의 무력함을 느끼게 될 때면 나는 내면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일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쁜 일이 있을 때는 온전히 그것을 느끼고 싶다. 책을 읽으며 감정의 혼란스러울 때면 생각의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감지한다. 그럴 때면 나는 편한 옷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오늘도 나를 위한 시간을 충분히 보내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