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를 끓이는 일

5장. 나무의 이름

by 양율





너구리 봉지를 열면 검은 다시마부터 꺼냅니다.


여유가 있다면 1리터의 물에 다시마를 중불에 30분은 끓여냅니다. 만일 시간이 없다면 생략해도 좋을 것입니다.


집에 가다랑어포가 있다면 한 주먹 넣어 잠깐 끓여줍니다. 육수가 배어 나오면 남은 가다랑어포는 체에 걸러 맑은 물만 남깁니다.


물을 끓이는 중에 허기가 진다면 마른 라면 귀퉁이를 조금 부수어 먹어봐도 좋습니다. 조금만 드셔야 합니다.


다른 냄비를 꺼내 다진 마늘을 약불에 볶습니다. 마늘이 갈색으로 구워지면 안 될 일입니다. 색이 진해진 마늘은 쌉싸름한 맛이 납니다. 그 위에 양파와 고춧가루를 넣고 다시 볶아줍니다.


이제부턴 냄새가 근사합니다. 당분간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도 좋겠습니다. 춤이라도 추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오늘 끓일 라면엔 메인 재료가 필요한데 냉장고를 열어 두리번거려 봅니다. 새우나 조개 같은 해물이 있다면 가장 좋을 것이고요. 그렇지 않다면 냉동삼겹살이나 양지도 좋습니다. 어묵은 면과 씹는 맛이 특별히 남다른 면이 없어 추천하지 않습니다. 쫄깃쫄깃한 면엔 뭉근히 이빨에 씹히는 해물이나 고기가 잘 어울릴 것입니다.


어릴 땐 자주 혼자 밥을 해 먹었습니다. 부모님은 맞벌이를 했고 각자 취미를 하거나 친구를 만나는 일이 많았습니다. 혼자 라면을 끓이는 일이 잦았습니다. 특히나 일요일 저녁은 집이 종종 비었고, 그때 저는 혼자 목욕탕에 다녀온 후 라면을 끓여내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이 일주일 중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땐 양파라거나 대파라거나 마늘의 소용을 몰랐던 시절이었습니다. 뒷면 사용설명서 대로 물과 라면으로만 끓여 냉동만두를 몇 개 넣어 밥과 함께 넓은 접시에 담아 내 방에 데려와 <블레이드 러너>라거나 <레인맨>과 같은 영화를 보며 후루룩 넘기면 그것으로 더없이 눈이 반짝였던 시절이었습니다. 방학이 들던 평일 점심에는 냉동 햄이나 떡갈비에 반찬통을 꺼내 파김치와 밥과 함께 한 끼를 해 먹었습니다.


몇 번은 쓸쓸한 마음에 반항 반, 번거로운 마음 반으로 저녁을 거르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내가 저녁을 걸렀다는 걸 알아채고는 내게 화를 냈습니다. 육중한 노동으로 지친 마음에 내가 걸식을 했다는 것이 당신 마음은 더욱 고난했을 것입니다.


마늘과 양파가 볶아졌으면 그 위에 준비한 육수를 부어줍니다. 약간은 자작하게 해 먹는 것을 좋아해 조금만 넣어줍니다. 물이 많다 싶어도, 적다 싶어도 상관없습니다. 많으면 더 많이 끓여내고 적으면 물을 다시 넣으면 그만입니다.


물이 끓는다 싶으면 메인 재료를 넣을 차례입니다. 대파도 썰어 준비합니다.


조금 더 커서는 라면을 혼자 먹어 본 일이 적습니다. 대학 시절 학식으로 나오는 라면은 항상 친구들과 먹었고, 술에 밤을 지새운 뒤 아침 라면은 요리 깨나한다는 그 녀석이 전담했습니다. 제가 라면을 별다른 재료 없이 쓸쓸히 끓이고 있으면 그 녀석이 팔을 걷고 제 자리로 끼어들었습니다. 그 라면엔 입대하기 전의 우울함, 진로에 대한 걱정, 숱한 연애 사연들이 둥둥 떠다녔습니다.


이제 수프봉지를 뜯어 삼분의 이만 넣습니다. 그리고 굴소스 한 스푼, 설탕 조금, 후추 약간을 넣습니다. 간을 맞추다 적당할 때 라면을 넣습니다. 대파는 반만 넣고, 반은 불을 끄기 30초 전에 넣습니다. 곁들일 김치를 꺼내 자르는 동안 면은 잘 익혀져 있을 것입니다.


요새는 혼자 라면을 끓이는 일이 적습니다. 건강도 걱정되고요. 그보다 좋은 음식은 어디든지 있습니다. 어릴 때 먹었던 라면엔 걱정이 없었습니다. 하루를 때우는 일에 순박했습니다. 계란 없이도, 대파 없이도 충분히 매 끼니가 아름답게까지 느껴졌었습니다. 어쩌면 구불구불한 라면은 제 옛날의 기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면이 잘 익었다 싶으면 노른자를 하나 얹어 라면 한 그릇을 접시에 잘 담에 내어드립니다. 해물로 끓여 낸 너구리입니다. 어릴 적 혼자 먹었던 라면과는 사뭇 다릅니다.


당신과 한 젓가락 나눠먹으며 새로운 기록을 기념했습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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