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장, 가서 소면 하나랑 만두 한 판 내오슈

신촌. 구복. 샤오롱바오 & 기스면.

by Gozetto
"어디 먼 길 가시나 봅니다?" "그렇소. 그러니 가서 소면 하나 말아주고 만두 한 판도 가져다주쇼. 죽엽청도 있으면 주고."

아마도 어느 무협 책에서


무협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모든 무협 책에서 꼭 봤을 장면이다. 왜들 그리 먼 길은 많이 가고 그 와중에 객잔에 들러 소면 한 그릇과 만두 한 판을 먹는지. 죽엽청은 대체 뭔 술이길래 그리들 한 잔씩 반주로 마시는지. 그러다 꼭 다른 무림인들과 시비가 붙거나 사악한 마두에 대해서 듣고 의협심이 생기기도 하고. 드넓은 무림 이곳저곳을 오고 가는 무림인들이 지나쳐 가는 객잔은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곳인 게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림인들은 급히 먼 길을 가다가 지칠 때면 허름하건 휘황찬란하건 어느 객잔에 들러 소면 한 그릇과 만두 한 판을 주문한다. 그만큼 빠르게 먹을 수 있으면서도 기력을 단숨에 보충해주는 음식이기에 빠지지 않는 것일 게다.


신촌 명물길 골목 어딘가에 위치해 딤섬을 파는 구복은 신촌에 숨어 있는 무협 객잔이다. 그것도 현대판 무협 세계를 보여준 주성치 감독의 <쿵푸허슬>을 떠올리게 하는 객잔이다. <쿵푸허슬>에는 무림의 고수들이 일반인 인양 숨어 살던 돼지촌에서 만두를 만들어 팔던 창의 대가가 등장한다. 그렇다고 사장님이 대머리 무림인이라는 건 아니다. 돼지촌의 모습과 비슷하게 오래된 명물길 중에서도 구복의 겉모습은 상당히 오래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음식 단상을 올린 글을 보고 10년 전에 많이 갔는데 아직도 있느냐는 답글을 보기도 했다. 죽엽청은 없지만 소면인 기스면과 만두인 샤오롱바오(小籠包)는 있는 명물길의 무협 객잔인 셈이다.

가게 내부부터 꽤 오래된 객잔 같다. 들어서는 순간 신촌이라는 한국의 공간은 떨어져 나가고 가본 적도 없는 홍콩과 상하이 혹은 약 6년 전에 가본 타이페이의 정경이 덧붙여져 연속하는 기분이다. 특히 가구들이 한국의 식당에서는 볼 수 없고 중화권에서 좀 오래된 식당에 가면 볼 수 있는 가구들이다. 8인용 정도로 긴 나무 식탁과 의자, 4인용 인양 커다랗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2인용 나무 식탁 등. 나무 가구에 가게 벽도 회색으로 칠해져 있고 군데군데 보이는 중식 벽걸이 장식이나 자기, 주방과 홀을 나누는 나무벽이 중화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여기에 파는 음식들도 준비만 해놓으면 금방 낼 수 있는 면과 만두가 중심이다. 닭고기 육수에 닭고기 토핑을 올린 기스면, 소 육수에 빨간 소스를 넣어 푹 끓이고 소고기 토핑을 올린 홍샤오 우육면. 뜨거운 돼지고기 육수를 품고 있는 용이 또아리를 튼 모양을 닮은 기본 샤오롱바오에 각각 새우와 꽃게를 올린 버전. 거기에 매콤한 소스에 두부와 다진 돼지고기를 볶은 마파두부. 한국에서 딤섬(點心)을 파는 식당치고 메뉴가 다양하지 않은 곳이 없는데 외진 마을의 작은 객잔처럼 메뉴는 단촐하다.

가격 대비 양이 상당하다. 7500원에 샤오롱바오 7개가 한 판이다. 크기도 다른 곳에 비해 작은 편도 아니다. 기스면은 7000원인데 그릇이 그렇게 큰 편은 아니지만 그릇 자체를 소면이 꽉꽉 채웠다. 참고로 딤섬은 마음에 점을 찍듯 가볍게 먹는 식사라는 의미의 점심으로 중국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말 그대로 마음에 점을 찍듯 소량의 음식을 다양하게 먹는 음식을 의미한다. 다만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대체로 기름진 음식이기 때문에 차를 함께 마시며 기름기를 씻어낸다고도 한다. 실제로 기스면과 샤오롱바오의 기름기가 굉장하다. 그 덕분에 추운 날씨에 아주 제격이다.


기스면은 닭곰탕에 소면이 담긴 느낌이다. 닭곰탕의 달달한 닭육수에 소금간이 세게 된 느낌이며 그러한 육수를 소면이 가득 머금고 있다. 소면이 따끈한 육수를 잔뜩 머금고 입으로 들어오면 몸이 금세 데워진다. 거기에 닭의 고소한 기름기가 단짠의 맛을 더 진하게 만들어 데워진 몸에 열기를 더한다. 올려진 닭고기 토핑은 닭가슴살인 듯한데 퍽퍽하지 않고 육수에 푹 고아서 그런지 부들부들하다. 샤오롱바오는 육수를 잘 머금고 있다. 전반적으로 맛 자체는 갈비만두보다 덜 달되 돼지고기의 감칠맛이 더 강한 단맛으로 한 입 먹으면 보양이 되는 기분이 들 정도로 기름기가 넘친다. 크기가 꽤 되는 편이라 한 입에 느껴지는 포만감이 크다. 다만 가능하면 빨리 먹는 게 좋다. 너무 오래 놔두면 안에 머금은 육수와 만두피가 말라 찐득하게 마른 식감이 든다.

그릇을 모두 비우고 나니 든든하기 그지 없다. 먼 길을 떠나야 할 무사가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쉬면서 가다듬고 다음 마을까지 갈 힘을 얻기에 너무나 적절한 식사이다. 기름기가 좀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기름기 때문에라도 차나 술을 곁들이는 듯하다. 아쉽게도 무협의 죽엽청 같은 백주는 팔지 않고 칭다오 맥주를 팔고 있어서 혼자 먹으면 오히려 배가 터질 듯하다. 다만 기름기로 봤을 때는 맥주 안주로도 분명 적절하기에 3명 정도가 와서 다양한 요리를 주문한 다음 칭다오를 곁들이면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구복을 방문했을 시점만 해도 일교차가 커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은 많았지만 일교차가 커 정신 없을 몸의 건강을 보양하기에 적절한 식사였다. 지금은 이제 날이 추워졌으니 그만큼 몸에 기름기를 더해 추위에 대비할 시기이니 마찬가지로 보양하기에 적절한 식사일 것이다. 뭔 소리냐고? 그냥 가서 먹자는 거다. 이유 따지지 말고 가서 만두 한 판에 국수 한 그릇 호기롭게 주문하고 쭈욱 비워보자. 여럿이 다함께 가 만두를 2판, 국수를 두 그릇 주문하고 맥주를 곁들여 호방하게 시간을 보내보자. 무협 객잔의 기운을 가득 머금은 식당에서 호기와 호방을 느끼며 배에 기름칠을 해보자. 다가올 추위를 버티며 먼 길을 가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