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앞으로 무슨 일이

by CajaC 카작

2026년 설 연휴 마지막 날. 기분이 예전 같질 않다. 그간엔 주말이든 공휴일이든, 며칠 쉬면서도 출근 부담 따위가 없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일이 재밌었다. 근데 이번은 살짝 다르다. 딱 하루 이틀만 더 쉬고 싶다. 그렇다고 일이 싫은 건 아니다. 그냥 며칠만 더 놀고 싶다.


또 한편으론 올해가 기대된다. 과연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분명 행복하고 기쁜 일들이 가득할 줄 믿는다. 지난 몇 년 내내 그러해 온 덕분이다. 더구나 2025년은 최고의 해였다. 감사하다.


전남 신안군 흑산도.

2025년은 첫날부터 인상 깊었다. 그해 1월 1일, 나는 무려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 있었다. 출장 때문이었고, 일정도 꽤 빡쎘지만, 감회가 남달랐다. 아기자기한 어촌 마을에서 대자연을 바라보며 느낀 감정이 생생하다. 당시 "올해 무슨 일이 생기려고, 새해 벽두부터 이곳에 와 있나" 생각했더랬다.


그 새해 첫날부터 떠난 장거리 출장이 일종의 암시였을까‥그 뒤로 줄줄이 강행군이었다. 12.3 내란 여파는 거셌고, 제주항공 참사에다 윤석열 탄핵과 21대 대선 등이 계속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운 좋게 모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방송 출연 섭외는 이전에도 몇 차례 있었다. 단, 여차저차 이유로 정중히 거절했었는데, 이땐 망설임 없이 승낙했다. 특별한 이유는 아니었다. 부모님이 예전부터 하두 "우리 아들 TV 나오는 거 한 번 봤으면 좋겠네" 말씀하시곤 해서, 이번엔 나갔다.


2025년 3월 '경북 산불' 당시 안동시 한 마을 모습.

그러다 3월, 경북 지역 출장이 또 잡혔다. 산불 때문이었다. 2년 전 경북 예천 산사태 이후 다시 찾은 재난 현장. 산사태와는 또 다른 형태의 참상이었다. 검은 잿가루가 소나기같이, 눈처럼 날리는 풍경에 "지옥이 이런 모습일까" 생각에 잠겼다. 이곳 이재민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나라면 어찌 할까. 세상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다.

출장 중 들렀던 전남 목포성지.

틈틈이 찾은 곳은 단연 성당이었다. 이것저것 청하면서도, 감사 기도를 빠트리진 않았다. 일이든 뭐든 만사 내 맘 같지야 않지만, 뭣보다 여러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성당에선 '파견'이란 표현을 자주 쓴다. 나가서 복음을 전하란 건데, 복잡한 거 다 빼면, 대강 '저마다의 자리로 나아가 신앙인 본분을 다하라' 이런 거다.


성당 공동체엔 신앙 봉사를 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은데, 나의 경우는 일하면서 떠나는 곳, 만나는 사람이 내 파견 장소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제주항공 참사와 경북 산불 등 사태에 이어, 그해 4월 윤석열이 파면됐다. 나는 윤석열 주변인 반응을 체크하는 작업을 거친 뒤, 당장 떠날 채비를 갖췄다.

스페인 바다
그리스 아테네 골목길

그리스 아테네로 향했다. 갑작스런 지시로 부랴부랴 떠난 출장이어서 더 고생이었다. 가뜩이나 그리스 직항 비행기도 없는데, 그∼나마 나은 항공 티켓도 구하기 어려웠다. 결국 인천에서 13시간 비행기 타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 여기서 10시간 대기하고 아테네행 비행기를 탔다. 목적지까지 꼬박 24시간이 걸린 셈이다.


아테네에 도착한 때가 현지 시각 오전 5시였다. 짐 찾고 버스 타고 머시기하다 보니, 숙소엔 아침 7시 30분쯤에야 도착했다. 곧장 9시에 통역사와 미팅이 잡힌 터였다. 결국 숙소에 짐 풀고 샤워만 하고 바로 통역사와 만났다. 다행히 통역사는 무척 다정하고 친절한 분이었다. 피곤함 속에서도 나름 즐거운 시간은 보냈다. 물론 일 자체는 '겁나게' 힘들었다. 머무른 일주일 동안 관광은 못했다. 그래도 기뻤다. 내가 간 곳, 갈 곳이 많아서였다.

강릉 해변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래, 그래… 또 출장이다!! 대선 후보를 쫓아다녀야 했다. 당연 최대 관심 인물은 이재명. 그가 유세를 다닌 동해안 벨트를 계속 쫓았다. 북한 접경 지역부터 강원 일대가 내 담당 구역이었다. 예로부터 민주당 당선이 쉽지 않다고 꼽힌 곳이었다. 윤석열 내란 이후에는 좀 달라졌을지 살피는 게 내 역할.


역시 만만치 않은 스케줄이었지만 비교적 나았다. 중간중간 요령껏 쉴 수는 있었다. 덕분에 강릉, 삼척 등 해변 산책도 혼자 하고, 저녁에는 간단한 회 안주에 소주도 좀 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론 "아 올해 일이 좀 몰리네" 되뇌었다.


나름 분주하게 보내면서도 큰 투정은 안 했다. 그 덕분인지 예기치 않은 좋은 일이 잇따라 생겼다. 모 기관에서 주는 상을 하나 받았고, 회사에서도 상을 하나 받았다.


윤석열 비리를 폭로한 어느 책에 내 이름이 서너 번 거론되는 경사도 있었다. 내가 윤석열 부정을 들추는 데에 미세한 수준의 기여가 있었다… 없진 않았단 정도였다. 내 이름이 이렇게 기록된단 건 커다란 감사다.

입수한 특검 자료 일부

이후에는 특검 국면으로 정신이 없었다. 쓸 게 많았다. 큰 파급력을 내지 못한 아쉬움은 있다. 그렇지만 열심히 했으니 됐다. 소소한 관심을 끈 결과물은 몇 개 있었다. 이것도 작지 않은 성공이다. 무엇이든 일이 계속 주어진단 게 커다란 감사다.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모든 분에 거듭 감사하다.


한 해가 저물어갈 쯤,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따라왔다. 그간 사용 못 한 연차를 연말에 몰아 소진해야 하는 상황, 딱 그 타이밍에 로마/바티칸에 갈 기회가 생겼다.


원래 가려던 곳은 미국이었다. 하지만 미국 현지서 지내던 친구 일정이 돌연 꼬이면서 취소됐다.


그러다 내가 20대 초반부터 숙식 알바했던 '용인시청소년수련원'(용청수) 룸메이트였던 버블아티스트 A 형님의 KBS <아침마당> 출연 소식을 접했다. 벙개로 여의도서 A 형님을 만났다. A 형님과 자리에서 B 형이 로마에 있단 걸 알게 됐다. B 형은 용청수 과장이었다. A 형님은 "로마에 가면, B가 이래저래 잘 챙겨줄 거야"라고 내게 말했다.


난 해외여행엔 일절 관심 없지만, 로마/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은 언젠가 꼭 가보고픈 터였다. 마침 미국 여행도 취소됐겠다, B 형에 연락했다. B 형은 흔쾌히 "로마에 오라"고 했다. 심지어 "바티칸 등 여행 일정도 잘 짜주겠다" 했다. 그렇게 로마에 갔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미사도 참례했다.


게다가 2025년 희년을 맞아, 이곳 포함 '로마 4대 성당'(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희년의 문까지 전부 통과했다. 정말 상상도 못 했던 행운이었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미사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각 성지를 순례할 때마다 나름 열심히 기도했다. 기도 내내 "내가 어찌 이곳에 와 있는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 무렵 한참 읽던 책의 한 구절도 줄곧 떠올랐다. 성녀 파우스티나 수녀님의 <일기> 한 문구. "하느님 도우심 없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죄짓기' 뿐이다…오, 하느님 사랑은 얼마나 위대한가!".


내 삶도 쭉 훑어봤다. 한국 귀국 즉시 새까맣게 잊고, 또 각종 죄를 지을 게 빤했지만, 암튼… 매사에 최선 다 하기, 겸손해지기, 보이지 않는 선행하기 등등 온갖 좋은 건 다 하며 살고 싶단 다짐이 생겼다.


물론 예상대로 귀국하자마자 다 까먹었다. 지금 글 쓰고 보니 다시 떠오를 뿐‥역시 '인간은 죄 뿐'이라는 파우스티나 성녀 말씀이 백 번 천 번 옳고 옳도다… 하, 나란 인간은 참.

N수 끝에 입학 허락받은 대학원 합격 메시지


2025년 대미는 대학원 합격이 장식했다. 평소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등등을 검증한답시고 뒤를 쫓는 일을 주로 해왔다. 아직은 젊어서 그런가, 재미는 남아 있다. 다만 50대, 60대 나이가 돼서도 이를 지금처럼 즐길 수 있을지가 항상 의문이었다. 내 전문 분야를 미리 만들어 두는 게 낫지 싶었다.


대학원은 이런 생각으로 지원했는데, N수 끝에 합격했다. 학부 시절 엉망인 학점에 발목이 세게 잡혔다. 면접 내내 처참한 학부 학점을 소명하느라 애 먹었다. 이후 지원 때는 서류 단계부터 디펜스 치는 전략으로 나섰다. 이 작전 덕에 합격한 건진 모르겠다. 교수님들이 "얘 죽지도 않고 또 왔네" 하며 붙여준 걸 수도‥이렇든 저렇든 붙었으면 된 거다.

2026년 시작도 출장이다. 경북 울진 바다가 보이는 우동집에서.
지난 1월 22일부터 3박 4일 동안은 수원교구 청년성서 탈출기 연수에 다녀왔다.

2026년은 어떨까. 무슨 일들이 펼쳐질까. 기대된다.


올해 첫 시작도 어김없이 지방 출장이었다. 경북 울진 아름다운 바다가 훤히 보이는 작은 식당에서 대게 육수를 낸 우동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어 지난 1월 22일부터 3박 4일 동안은 수원교구 청년성서 탈출기 연수에 다녀왔다. 재작년 창세기 연수 때 종일 칭얼댄 흑역사를 지우고자 이번엔 나름 열심히 했다(관련 글 : 초고난도 '성의 있는 삶' 도전). 곧 죽어도 못할 듯했던 성가 율동도 소심하고 어색하게 어찌어찌 하긴 했다.


자, 이제 연휴도 끝났고, 2주 뒤면 또 출장이다. 벌써 피곤하다. 하루 이틀만 더 쉬면 좋으련만 어쩔 수 없다.


그래, 그냥, 하자. 열심히! 올해는 무슨 기쁜 일들이 펼쳐질지, 끊임 없이 기대하며.

유튜브 '풍동성당 엘로이 성가대' 영상. 가톨릭 성가-'기대'.
가톨릭 생활성가-기대

주안에 우린 하나 모습은 달라도
하느님 한 분만 바라네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를 격려해
따스함으로 보듬어 가리
주님 우리 안에 함께 하시니
형제자매의 기쁨과 슬픔 느끼네
네 안에 있는 주님 모습 보네
그분 기뻐하시네

주님 우릴 통해 계획하신 일
부족한 입술로 찬양하게 하신일
주님 우릴 통해 계획하신 일
너를 통해 하실 일 기대해
주님 우리 안에 함께 하시니
형제자매의 기쁨과 슬픔 느끼네
네 안에 있는 주님 모습 보네
그분 기뻐하시네

주님 우릴 통해 계획하신 일
부족한 입술로 찬양하게 하신 일
주님 우릴 통해 계획하신 일

너를 통해 하실 일 기대해
너를 통해 하실 일 기대해
너를 통해 하실 일 기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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