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 이어를 네 개의 막으로 설정하다.
나의 갭 이어는 조금 특이할 수도 있다. 요즘 갭 이어를 보내고 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나의 방식을 이야기하면 대부분 '이런 방식도 갭 이어인가요' 하며 신기해하였다. 보통은 퇴사를 하고 쉬면서 나에 대해 발견하고 갭 이어를 갖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나는 좀 다르다. 나도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본다는 것은 동일하지만 갭 이어를 선언하고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일'이었다. 딱히 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하루하루를 무언가로 계속 채워 넣고 싶었다. 7월까지 N잡을 하면서 나름대로 일을 닥치는 대로 하였다. 돈이 목적이 아니었고 그저 할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갭 이어 1막을 7월을 끝으로 종료했다. 키워드를 뽑자면 단연 '일' 일 것이다. 계속 N잡을 할 수도 있었지만 딱히 돈이 목적이 아니었고 좀 더 다양한 활동을 해보고 싶었다. 벌어 두었던 돈이 있으니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행사 등을 참여하고 싶었다. 정확하게는 새로운 사람들이 궁금했다. 여기에는 계기가 있다.
먼저 N잡을 하면서 자투리 시간에 책을 자주 읽었고 이 중에는 여행 에세이가 포함되어 있다. 원래 여행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싫어했다. 그러던 중 '여행자 MAY' 님의 <반짝이는 일을 미루지 말아요>를 일게 되었다. 여행을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을 하면서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고 사람 만나는 것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그리고 다른 여행 에세이도 읽어보면서 여행을 통해 만나는 새로운 인연에 대해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가장 큰 계기는 이렇다. 6월이 시작하고 얼마 후. 평소처럼 일하던 수요일 아침이었다. 수요일 오전 9시에는 내가 가장 애정하는 뉴스레터가 온다. 'SIDE 뉴스레터'이다. 뉴스레터를 읽고 있던 중 하단에서 어떤 행사 모집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하고 싶은 거 못 하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컨퍼런스가 열립니다'라는 첫 문장에 시선이 갔다. 갭 이어를 하고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고대하고 있었지만 이런 행사는 참여해 본 적이 없어서 고민이었다. 게다가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오전 일이 끝나고 오후 일을 하러 가면서도 거듭 고민하였다. 일에 살짝 집중을 하지 못할 정도였는데 결국 일을 하다가 잠시 바람 쐬러 나간다며 밖에서 조용히 나갔다. 혹시 고민하던 중 마감이 되었으면 어쩌나 싶었다. 다행히 아직 마감이 되지 않아서 빠르게 신청하였다.
약간의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을 하며 행사 당일이 다가왔다. 사직동에 위치한 공간에서 진행되었다. 처음 가보는 동네여서 약간 늦었는데 그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 차서 놀랐다. 어색하고 쑥스러웠지만 비어 있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행사는 시작되었고 내가 애정하는 'SIDE 뉴스레터' 크루 '희'님과 강점 코치 '온슬'님의 경험담을 들었다. 나는 두 분을 여기 와서 처음 알았는데 주변 분들은 이미 알고 있던 눈치였다. 심지어 희님이 사이드 크루이신 것도 몰랐다. 모집 설명에 쓰여있었는데 못 봤다(이후 모집 글을 잘 안 읽는 건 이후로도 이어진다). 두 분의 이야기가 끝나고 내가 질문한 내용이 있었는데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다'라는 것에서 '우연히'는 정확히 어떤 구체적인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당시만 해도 우연히 일어나거나 우여곡절이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우연히 로봇 관련 일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내가 스스로 참 웃기다. 답변이 정확히 어떠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답변을 듣고 늘 준비가 되어있는 분이셨기에 기회를 잡으셨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늘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분의 이야기가 끝나고 밸런스 게임을 하였는데 질문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vs 잘하는 일을 해야 한다'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는 쪽이었고 그 이유를 발표할 수 있었다. 나는 이때 내가 정의하는 하고 싶은 일이라는 범위에 대해서 설명했다. 내가 선택한 일이라면 그것은 하고 싶은 일이었다고, 따라서 나는 지금까지 늘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답을 하고 스스로에게도(꽤나 대답을 잘했다고 생각하며) 큰 깨달음을 얻었던 말이었다.
밸런스 게임도 끝나고 테이블에 같이 앉은 사람들과 자유롭게 네트워킹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나 포함 네 명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종료 시간이 되었을 때 어찌나 아쉽던지 이래서 사람과 교류하며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 중요하구나 몸소 깨달았다.
내가 선택한 일이라면 그것은 하고 싶은 일이다. 앞으로 내가 어떤 일들을 선택하게 될 지 궁금하였다. 행사가 끝나고 이런 사람들과 조금 더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만의 이야기를 그들과 나누고 싶었다. 당연히 하루 14시간 일하면서 할 수는 없었다. 뭔가 새로운 계기가 필요했다. 8월 갭 이어 1막을 종료하고 2막을 시작하면서 나의 새로운 갭 이어가 이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