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지 않은 상자
슈뢰딩거의 고양이
상자 안에 고양이 한 마리,
옆에 방사성 물질(원자) + 독약 장치가 있고,
정해진 시간 안에 그 원자가 붕괴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실험을 고안했다.
우리가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는
원자가 붕괴됐는지 안 됐는지 알 수 없다. 거기에 따른 고양이의 생존 여부도 알 수 없다. 양자역학식으로 말하자면, 상자를 열기 전까지 고양이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슈퍼포지션 상태에 있다. 뉴턴이라면 누군가가 상자를 열거나 말거나, 고양이는 죽거나 산 상태, 둘 중의 하나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코펜하겐 학파들은 모든 가능성이 공존하다가 마침내 누군가가 상자를 열어 보는 순간에야, 모든 상태가 하나로 고정된다고 주장한다. 양자 세계의 애매함을 그대로 일상으로 올려오면 이렇게 기묘해진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슈뢰딩거가 제안한 일종의 사고 실험이다.
누구에게나 열지 않은, 차마 열지 못한 상자가 있을 것이다. 열어보기를 미뤄둔 메일, 받자마자 확인하지 못하는 문자들, 끝끝내 "왜"냐고 묻지 못했던 뒷모습. 연락은 끊겼는데, 마음 어딘가에서는 아직 박스 안에 남아 있는, 끝났다고 말하기엔 어정쩡하고, 계속된다고 말하기엔 이미 오래 연락이 끊긴 관계들.
그 사람들과의 사이에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고양이들이 여럿 누워 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왜 연락을 끊었는지 묻지 못하고, 저지른 과오를 똑바로 볼 용기가 나지 않아서, 내가 준 상처가 시간의 치유로 저절로 나아 탓하지 않는 날이 오기만을 바라면서, 나의 존재를 지우기 전에 잘못을 먼저 잊는 요행을 기다리면서. 확인하지 않은 잘못은 잘못이 아니고, 드러나지 않은 상처는 상처가 아닌 것처럼 그렇게 모른 척하는 시간들.
나의 상자는 문자나 메일 단위, 물음이 아니라 시공간이다.
돌이킬 수 없는 잘못된 판단으로 주변에 있던 모두를 혼란스럽게 하고, 상처 주었던 과거의 어느 때와 그때 머물렀던 공간은 아직도 진공으로 박제되어 있다.
살고 싶지도, 죽고 싶지도 않았던 시간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침잠하고 다시 떠오르기를 반복한 끝에 나는 전보다 안정이 되고 회복이 되었는데, 돌아보니 주변은 초토화된 현실. 보살피지 않은 공간이 엔트로피로 쓰레기장이 되었는데 한 몸 누일 곳만 동그마니 비워 몸을 웅크리고 잠든 나의 모습이 이제야 거울에 반사된 빛으로 보이기 시작한 순간.
관측은 잔인하다.
어둡던 마음이 작은 햇살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순간이 가장 잔인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목구멍으로 울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 애써 무뎌졌던 마음의 틈을 비집고, 똑바로 보라고, 네가 한 짓을, 어떻게,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겠냐고,, 마주 보기가 두려워 상자를 열지 않으려고 버텨왔던 그 순간에도 고양이는 엄연히 살아있었다고, 방사선에 노출되어 죽어버렸다고. 너의 시선과 손길과 수습을 기다리면서,
아니,
너의 관측을 기다리면서.
그리고,
지금도 기다린다고..
햇살은 재촉한다.
얼른 상자의 문을 활짝 열라고.
"
내가 없는 동안,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
"
오래 닫혀 있던 상자 하나를 조심스럽게 여는 순간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상자를 열기 전까지 고양이는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는 것처럼
겹쳐진 상태로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사고 실험.
관측은 그 겹쳐진 가능성을 하나의 결과로 고정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