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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영 Mar 15. 2023

이달의 이웃비

8. 불구하고


  

  동석이 말하지 않은 것은 이런 것이다.

   어느 날 병식을 만나러 도서관에 갔는데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병식이 보이지 않았다. 연락해 보니 그는 지하 휴게실 한구석에서 책을 펴놓고 있었다. 그저 자리를 옮겼나 보다 심상하게 생각했는데 휴게실에 들어오던 직원 두 명이 병식을 보고 무어라 수군대더니 돌아서 나갔다. 병식이 작게 중얼거렸다. 씨발년. 무슨 일이 있었구나 짐작만 할 뿐, 병식에게 물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동석은 두려웠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일까 봐. 병식을 이웃으로 더 이상 둘 수 없는 매우 불온한 어떤 진실과 마주치게 될까 봐.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것이 솔직하지 못한 건가? 의도한 ‘선한 목적의’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 입체적인 한 사람을 납작 눌러 평면적으로만 그리는 왜곡과 오류가, 그것이 더 많은 다정함을 위한 거라면, 그래도 꼭 나쁜 것인가?


   동석은 병식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실제로 잘못 들은 걸 수도 있으나 동석은 사실을 확인할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못 들은 척했다,라고 믿어 버린다. 설령 나쁜 말을 했으면 어떤가. 병식이 욕설을 내뱉는 걸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러니 한 번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니, 한 번은 괜찮다니. 그러면 두 번은, 세 번은? 동석은 병식을 이웃으로 받아(들여) 줌에 있어 매우 엄중한 아웃 제도가 자기 안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사실 동석도 욕을 한다. 입 밖으로 내뱉는 건 드물지만 마음속으로는 매우 자주. 그러나 병식에게는 한 번은 괜찮다고, 대단한 선심이라도 쓰듯이 한 번의 잘못만을 허락해 준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작인 너를 감히 내 이웃으로 계속 남기를 수락해 준다,라는 듯이.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결코 하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가 없다.

   그 욕설을 목격한 이후에도 동석은 계속 다정한 이웃 병식의 이야기를 커뮤니티에 올렸다. 세상에는 더 많은 다정한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동석은 생각했다. 나쁜 이야기, 그런 건 얼마든지 있다. 수많은 사건 사고 속에 인류애를 충전시키는 미담들의 존재는 소중하다. 미담의 주인공들이 완전무결하기만 할까. 그들이 늘 무해하기만 할까. 어느 순간 그들도 욕을 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한 번쯤, 혹은 더 많은 무례를 범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영웅에게서 영웅답지 않은 어두운 면을 굳이 드러내지 않는 것이 우리가 더 많은 영웅과 함께 살아남는 방법 아닌가. 그러니 좋은 이웃에게 굳이 나쁜 일화를 캐내지 않는 것이 우리가 더 많은 좋은 이웃들과 살아가는 법이라고 동석은 믿기로 했다. 그렇게 더 많은 거짓말을, 더 많은 무해함을, 더 많은 모자라지만 착한 면들만을 부각하고 순백의 언어로 이야기하면서 그렇게 더.

   

   그 무렵 동석은 누군가 도서관 열람실 자리에서 음란한 행위를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한 직원이 그 광경을 보았고 도서관에 출입 금지를 요구했으나 그와 관련된 규정이 없어서 아무런 대책 없이 해프닝으로 끝났다는 이야기였다. 그 남자가 병식이라고 동석에게 알려 준 사람은 없었다. 병식이라고 의심할 만한 어떤 미심쩍은 이야기도 들은 바 없었다. 그럼에도 동석은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배병식, 혹시 당신인가. 당신이 그 소문의 주인공인가. 길에서 함부로 xx 붙는 떠돌이 개처럼, 수치라고는 모르는 짐승처럼, 그렇게 공공장소에서 음란한 행위를 한 게 병식 당신인가. 동석은 병식이 순진하고 어리숙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그 입에서 나온, 혹은 나왔다고 믿는 씨발년이라는 단어를 떠올렸고, 그때마다 그 무지의 얼굴, 무언가 실종된 상태로 처음부터 없음이 완료된 자의 깊고 투명한 어둠을 보며 역거움을 느꼈다. 그럴수록 동석은 더 평소와 다름없이 병식을 대했고 결코 그에게 자기의 의심을 묻거나 진실을 듣고자 하지 않았다. 진실이 어느 쪽이건 감당할 수 없으리라는 걸 동석은 알았다. 진실은 하나였다. 자기가 아무 근거 없이 병식을 나쁜 소문의 주체로 의심한다는 것. 사건의 진실이 궁금하지 않고 해명을 듣고 싶은 것도 아니며 단지, 자신은 계속 병식을 의심하며 그 의심을 품고도 병식을 이웃으로 두는 것으로 자기만의 어떤 부채감을 메꾸길 원한다는 것. 그런 식으로 그동안 지불하지 못한 이웃비를 몰아서 병식에게 지불하며 어떤 상실감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는 것.

   그럼에도 동석은 자기가 이런 일로 병식을 내치지 않고, ‘불구하고’ 여전히 병식을 이웃으로 받아들여줌으로써 비로소 자신이 병식과 (같은) 이들의 (진정한)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느꼈다. 병식을 위해 참고 견디면서 다시 참고 견디고 돌보는 자의 지위를 되찾게 되었다고 말이다. 동석은 자기가 그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더 단단해졌다고 느꼈다. 이웃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인류애와 절제된 선한 욕망에 의해. 자신은 병식을 통해 더 높은 차원의 ‘고매한’ 이웃으로 거듭난 것이다.

   가끔은 병식의 뒤통수를 치고 이 미친 새끼가, 이 모자란 새끼가 어디 남들 다 보는 데서 짐승처럼, 응? xx 붙는 개처럼, 이라고 중얼거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하지 않았고 그런 마음은 결코 드러내지 않았다. 그 감춤이 동석이 병식에게 지불하는 가장 비싼 이웃비였다. 그것으로 병식이 동석에게 지불한 이웃비는 충분히 갈음되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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