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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영 Mar 16. 2023

이달의 이웃비

10. 지구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이야기하지 않은 것에는 이런 대화도 있다.

   그날, 처음으로 실종자를 찾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병식은 원래 이웃 마켓에 올린 갈까마귀를 적은 종이만 네모반듯하게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책도 가져가요, 했더니 무릎 위에 놓인 책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동석에게 물었다.


   “이거, 나 읽어요?”

   “아니 안 읽어도 돼요.”

   “근데 왜 줘요?”

   “그냥 주고 싶어서요.”

   “왜요?”

   “왜냐면.”


   벌레 잡는 데 쓰라고요. 장난처럼 대답하려다가 동석은 솔직히 말했다.


   “내가 그냥 그러고 싶으니까요.”


   병식은 잠시 고민하더니 그 책을 내려놓았다.


   “그냥은 안 돼요.”

   “왜요?”

   “아빠가 그냥은 없다고.”


   배철영 씨는 현명했다. 그래 그냥은 없지. 동석이 말하는 그냥이란 사실 그냥이 아니라는 걸 동석도 알고 있었다. 동석은 그것을 병식에게 그냥 주는 게 아니었다. 자기에게 형과 관련된 그 책의 없음을 완료하고 싶어 병식을 죄책감 없는 쓰레기통으로 이용하는 것뿐이었다. 동석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그러면 제가 문제를 낼게요. 그럴듯한 답을 말하면 병식 씨에게 상으로 그 책을 줄게요.”

   “상이요?”

   “네. 상.”


   병식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상은, 좋아요.”


   그래서 동석은 책의 접힌 부분을 펼치고 이 문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은…” 깊은 생각이 말했다.
  “해답은…!”
  “그 해답은…” 깊은 생각이 말을 멈췄다.
  “해답은…!!!”
  “42입니다.” 무지무지하게 엄숙하고 침착하게 깊은 생각이 말했다.     


   “이 해답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들이 많아요. 병식 씨는 왜 삶과 우주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이 이거라고 생각해요?”


   동석이 책에 적힌 42를 가리키며 물었다. 대단한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고,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다정한 말을 건네며 상으로 책을 줄 계획이었다. 한참 몸을 좌우로 움직이며 생각하던 병식이 되물었다.


   “답이, 사이예요?”

   “네, 그러니까, 궁극의 답이 왜 사이인지,”


   동석이 다시 덧붙이려다가 멈칫했다. 병식은 이미 그 해답의 이유를 동석에게 찾아 준 거였다. 사십이가 아닌 사이,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병식의 해답은 ‘사이’였다.     


   안다. 이 책을 쓴 더글라스 애덤스는 미국의 작가다. 그가 이 책을 쓸 당시에 숫자 42가 한국어로 ‘사이’로 발음될 수 있으며 그것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 하나의 무엇과 다른 무엇을 잇는 거리나 공간, 그 연결됨을 의미하는 사이와 동음이의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 몰랐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해석이 나올 거라고는 짐작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깊은 생각이라면, 깊은 생각이라면 알 수 있지 않았을까? 귀에 바벨피시를 넣으면 어떤 언어로 이야기한 것도 즉시 이해할 수 있게 되듯이 깊은 생각은 깊은 생각이니까.


   병식이 그런 의미로 이야기한 건지는 중요치 않았다. 동석은 병식에게 그가 원하는 해답을 들었고, 그 대화는 이음 커뮤니티에 올리던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ㅂㅅㄱ>을 위한 마지막 에피소드로 아껴 두었던 것이었다. 이것은 진짜 있었던 일인가? 분명한 것은 병식이 없었다면 동석은 결코 그런 해답을 듣지 못했을 거라는 거였다. 모든 것의 해답이 되는 ‘사이’에 대해서 모른 채 살아갔으리라는 것이다.      

  



   이 책 5장의 제목은 이렇다. <대체로 무해함>

   그것이 다른 행성에서 온 포드가 지구를 15년간 관찰하며 얻은 결론이었다.      

  



   사실 병식에게 들어야 할 것은 삶과 우주와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이 왜 42인지 같은 게 아니었다. 병식에게 진짜 들어야 할 답은 이런 것이었다.


   “병식 씨는 무한도전 멤버들 중에서 누가 제일 좋아요?


   비슷한 질문을 전에 한 번 한 적 있었는데 병식은 매우 복잡한 표정으로 한참을 고민하다가 말했다.


   “너무, 너무 어려워요. 나중에, 나중에 대답해도 되나요?

   “그럼요. 다음에요.”

   “다음에요? 우리 또 만나요?”

   “네. 다음에 또. 언제든지.”

   “언제든지요?”

   “네. 언제든지.”     

  


  

   - 다정한 이웃이 되기란 쉽지 않다. 피터 파커는 다정한 이웃이 되기 위해 스파이더맨이 되었다. 손에서 거미줄이 나오고 뉴욕의 고층 빌딩 사이를 곡예하듯 넘나들며 악당과 싸우는 초능력을 가진 히어로의 꿈은 단지 다정한 이웃이 되는 것. 그렇게 다정한 이웃이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러나 둘러보면 우리 곁에는 언제나 영웅처럼 위대한 다정한 이웃이 있다. 우리는 이제 한 다정한 이웃의 이름을 안다. 그의 이름은 배순경이다.      


   동석이 이음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지우러 들어가 보니 실종자를 찾는 에피소드 아래 이런 댓글이 달려 있었다. 동석은 병식의 이야기를 지우지 못한 채 커뮤니티를 빠져나왔다.      




인용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권, 더글러스 애덤스 저, 김성형, 권진아 (공) 역, 책세상, 2004, 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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