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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May 26. 2024

국립박물관 정원의 작약에서 서래섬의 유채꽃까지

5월은 꽃도 많이 피지만 행사도 많아 여간 바쁘지 않은 달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같은 가족행사로 시작하여 학교에 재직했었다고 스승의 날 초대에도 참석해야 하고 또 여고동창회까지 있다. 또 그 사이사이에 꽃구경도 놓치지 않으려니 정말 “백수가 과로사?”할 지경이다. 은퇴한 노인이 바쁘다고 질러대는 행복한 비명이라고 해야 할까?


이번주 목요일에는 동기동창회 정기총회가 열릴 예정이어서 우리 목은산회의 산책모임은 쉬게 된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용산 국립박물관 정원에 작약이 활짝 피었다는 소식이 날아오고 어젯밤에 본 유튜브 방송에서는 이촌 한강공원에 대나무 숲길이 있다고 보여주지 않는가?  한강공원에 대나무숲길이?  처음 듣는 소리여서  궁금했다.

그래서 오늘 급히 소규모 답사팀?을 만들어 이 길을 걸어  보기로 했다.

전철  4호선과 경의중앙선이 만나는 이촌역에서 나와 박물관 앞마당에서 친구들을 만난다. 작약밭은 박물관 뒷마당에 있다. 뒷마당  가는 길은 이른 봄에 진달래와 철쭉이 피어 화려하던 길이다. 이제 박물관 건물 왼쪽의 사무동 쪽으로 가다 보면 예쁜 한옥 돌담이 나타나는데 이 돌담 안쪽으로 들어가면 돌담 옆으로  궁궐에서 볼 수 있는 화계 정원처럼 꾸며져 있고 여기서부터 모란과 작약 밭이 시작된다.

모란꽃은 이미 지고 나서 열매를 맺고 있고 작약꽃도 절정기를 지난 듯하다. 하지만 그늘 아래서 늦게 핀 작약이 아직 자태를 뽐내고 있다. 화계 정원에는 이곳에 어울리게 경복궁 교태전 뒤의 아미산 굴뚝 모형도 똑같이 재현해 놓아 운치가 있는데 모란이 한창 필 때면 이 아미산 굴뚝과 어울려 더욱 아름답다.

모란은 나무이고 작약은 다년생풀이라는 사실과 두 꽃의 차이를 여기서 다시 한번 복습하고 돌담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니 이번에는 하얀 꽃이 핀  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그 꽃을 가리키며  친구는 함박꽃이라고 말한다. 아니? 작약의 우리말이 함박꽃이라던데 목련 같이 생긴 이 꽃이 진짜 함박꽃이란 말인가?  함박꽃은 건물 뒤  그늘에 서 있어서 그런지 하얀 꽃봉오리가 채 피지도 못하고 누렇게 마른 채 매달려 있는 것이 있어 안타깝다.


박물관 뒤편으로 남산이 보이는 넓은 마당에 이르니 수련이 막 피기 시작하는 연못이 있다. 이른 봄에 이 근처는 매화가 만발하고 향기가 진동하는 곳이어서 초조하게 봄을 기다리던 우리가 제일 먼저 찾는 꽃밭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꽃은 연못의 수련과 그 옆의 작약밭이다. 절정기는 지났어도 화려한 작약의 아름다움은 여전하다. 이렇게 사철 다른 꽃을 볼 수 있어서 우리는 이 박물관 정원을 아주 좋아하고 즐겨 찾는다.

작약과 만났으니 이제 두 번째 목적지인 이촌 한강공원 대나무숲길을 찾아 발길을 돌린다. 이촌역으로 다시 들어가서  4번 출구로 나가면 아파트 사이 길을 통과하여 한강공원으로 갈 수 있다.

한강변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동작대교가 오른쪽으로는 한강대교가 보인다. 오늘은 동작대교 방향으로 걷는다. 인터넷 방송에서는 이촌 한강공원의 세 가지 산책길로 이팝나무길, 미루나무길, 대나무숲길을 알려주었다. 우선 이팝나무길로 들어섰다가 죽죽 벋은 미루나무길의 그늘이 좋아 보여 미루나무길을 걸으려  했으나 지금은 이 길을 정비하는 중인지 길이 파헤쳐지고 진창이어서 걸을 수 없다. 할 수 없이 물가 옆 길로 좀 걷다가 동작대교 가까이 가니 대나무가 빽빽이 서 있는 곳이 보인다. 바로 강북 강변도로 옆이다.  우리나라 남쪽에나 가야 볼 수 있던 대나무숲 길이 서울에도 있다니?!  이곳 대나무들은 오래되지는 않아 줄기가 아직 굵진 않지만 제법 잎이 무성하여 숲길을 이루고 있다. 여태 몰랐던 길이고 처음 걸어보는 길이다! 강변도로의 자동차소음이  들리지 않고 바람에 스쳐 사각거리는 대나뭇잎 소리만 들린다면 좋겠다고 그런 숲길을 상상하면서 한번 걸어 본다.

대나무숲길이 끝나니 저 앞에 반포대교와 잠수교가 보인다. 새로 알게 된 대나무숲길 답사를 마치고 우리는 한강대교 쪽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가 잠수교를 건너서 강 건너편에 있는 서래섬까지 걷기로 한다. 마침 서래섬 유채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잠수교를 건너면 잠원  한강공원으로 왼편으로는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오른편에는 세빛 둥둥섬이 보인다.

우선 잔디밭에서 그늘을 찾아 앉아서 갖고 온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한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강물과 강 건너 풍경을 보니 평화롭기 그지없다. 때를 맞춘 듯 반포대교에서는 분수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점심과 커피까지 마치고 서래섬으로 유채꽃을 보러 간다. 유채꽃 축제는 벌써 며칠 전에 시작하였다고 현수막이 걸려 있으나 오늘의 유채꽃밭은 예전처럼 풍성하지 않고 좀 빈약해 보인다. 아직 꽃이 덜 피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약간  실망하면서 유채꽃밭을 다 둘러보지 않고 도중에서 돌아가기로 한다. 오늘 여기까지 오느라고 벌써 만 육천 보 이상 걸었기 때문이다. 돌아갈 때는 올림픽대로 아래의 잠원한강공원 진출입로로 들어갔다가 나오니 큰길에서 우리가 헤어질 역, 고속터미널역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보인다.


오늘 새로운 길 하나를 찾아보고 마음이 뿌듯하여 집에 돌아오니 만 구천보나 된다.


2024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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