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5월의 마지막 날, 모레부터는 여름날로 들어간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에 베란다 창문을 여니 벌써 더운 기운이 훅~하고 들어온다.
그러나 부엌 창으로 내다보이는 쌈지공원의 나무들과 가로수의 푸르름은 아직 싱그럽고 시원해 보인다.
오늘은 뚝섬 한강공원에서 걷기로 한다.
작년 5월 이곳의 장미원을 찾아온 이후 지난 3월 중순에도 산수유꽃과 더불어 봄맞이를 한 곳이니 이번에는 다른 곳을 찾아가 보려고 하는데 마침 여기서 국제 정원박람회가 열렸다고 한다. 박람회의 공식 기간은 지났지만 이때 전시된 정원은 가을까지 계속 볼 수 있다고 한다. 방송을 통해 광고도 많이 하고 이미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고 하니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지하철 7호선 자양역(뚝섬한강공원역) 2번 출구에서 내려와 청담대교 교각아래 그늘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친구들 열여섯 명이 모인다. 시내에서 가까운 곳이어서 그런지 오늘은 많이 모였다. 그런데 자양역 역사 안에 출구표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지 몇 친구가 2번 출구 찾느라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툴툴거린다.
박람회장 입구 주변은 행사가 끝난 지 얼마 안 되어서 행사에 사용한 천막이나 시설물들을 철거하고 거두어들이느라고 아직 어수선하다.
전시장 입구로 들어서니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 여러 정원으로 가는 길이 펼쳐진다. 길 양편으로 꾸며진 정원들에는 각양각색의 예쁜 꽃과 나무들이 여러 가지 독특한 설치미술 작품들과 아름답게 어울려서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 준다.
그런데 국제 정원박람회라는 제목을 듣고 기대한 것에 비해 규모가 좀 작지 않나 하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뚝섬 한강공원이라는 공간도 순천만처럼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어쩐지 다른 때보다도 좁아 보인다.
본 박람회는 끝났어도 여전히 관람객은 많아서 오늘도 전시된 정원을 차근차근 볼 수가 없을 정도이니 박람회 기간 중에는 이곳이 얼마나 붐볐을지 상상이 된다.
예쁘게 꾸며진 정원들을 지나고 편백나무숲을 지나 장미원으로 들어간다. 일찍 핀 장미들은 벌써 시들어 가고 있어 작년 5월 중순에 와서 활짝 핀 장미를 처음 보고 감탄했을 때를 생각하면 약간 미흡하다. 게다가 우리는 지난주에 과천 서울대공원의 넓고 화려한 장미원에서 이미 눈호강을 하고 왔기에 오늘의 소박한 장미원이 비교됨은 어쩔 수가 없다.
장미원을 지나서 들어가는 자연학습장은 여전히 숲이 울창하고 걷기에 좋다.
숲길을 걷다가 지난 3월 올해의 산수유꽃나무를 처음 본 곳, 자연학습장의 숲이 끝나는 곳까지만 갔다가 되돌아 선다. 강변으로 계속 걸으면 잠실대교까지 갈 수 있지만 오늘은 더 가지 않는다. 자연학습장 숲길에서는 박람회의 관람객은 적고 드문드문 산책객들만 보여서 비교적 조용히 걸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조용한 숲 속에서 좀 머물렀다 쉬어 가려니 벤치가 부족하다. 장미원으로 나가기 전 소나무 숲 주변에 피크닉 테이블이 몇 개 있으나 몇 개 안 되는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모두 앉아 있다.
하는 수 없이 장미원 앞 물가에 있는 전망계단 위에서 자리를 잡기로 한다. 여기에는 앉아서 강물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공연장 객석처럼 만들어진 넓은 계단식 좌석이 여러 층 있는데, 이 계단의 한 개 층이 충분히 넓어서 몇 사람이 둘러앉을 수 있을 정도로 넓다. 머리 위에 그늘막은 없지만 이때 마침 해를 가린 구름이 우리에게 그늘을 만들어준다.
바닥에 깔개를 깔고 열명쯤 앉고 나머지 여섯은 계단 바로 위쪽 정식? 벤치에 앉아 가져온 점심을 풀어놓는다. 개포동 김밥에서 시작하여 양수리 김밥, 옥수동 김밥, 각종 장아찌에, 한 친구는 집에서 호박잎 쌈밥을 만들고 전까지 부쳐와서 완전히 잔칫상이 한상 벌어진다. 게다가 과일, 빵, 떡, 과자, 커피등 후식도 있어 상차림이 훌륭하다.
마침 오늘은 Y가 생일을 맞은 날이다. 점심상이 잔칫상 같기는 했지만 앉는 자리가 좀 어설펐으니 식후에는 제대로 된 자리에 앉아 생일을 제대로 축하해 주자는 제안에 모두 동의한다. 그래서 우리가 이 뚝섬에 올 때마다 들리는 선상 식당 겸 카페로 들어간다. 원래 오늘의 주인공 Y가 우리를 카페로 초대하여 생일파티를 하려고 한 것이나 카페에 들어 가자 마자 다른 친구 J 가 친구의 생일을 축하한다면서 자신이 모두에게 스무디를 사겠다고 한다. 그러더니 또 H는 닭튀김과 맥주를 내겠다고 한다. 이 친구들 점심 먹고 온 것 맞나? 하여튼 고맙기만 하다.
떠들썩한 잔칫상에서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60여 년 전 이곳에 소풍 왔었다는 이야기는 물론이거니와 난생처음 뚝섬에 와 본다는 서너 친구의 이야기도 함께 말이다. 오늘은 옆 자리에 다른 손님이 한 팀 있었는데 우리가 매우 시끄러웠을 텐데도 끝까지 그대로 앉아 있어서 신경이 쓰이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열여섯 명이 한 자리에 모여 있으니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렇게 정원박람회의 꽃구경과 생일잔치도 함께 하며 오월의 마지막 목요일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올해의 봄날은 저만치 가고 만다.
오늘은 만보 조금 넘게 걸었는데 지난주보다는 좀 덜 걸은 것 같다.
2024년 5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