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없는 인간의 대기업 퇴사기
스웨덴으로 출장 간 남편에게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귀하를 모시게 되어 기쁩니다’라고 적힌 영문 메일이었다. 드디어 합격했구나.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 아침마다 메일함부터 확인하던 그였다. 스팸메일함까지 찾아보며 초조해하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이제 유럽으로 떠날 일만 남았다.
다음날, 여느 때와 같이 회사에 출근했다. 모든 것들이 어제와 같았고, 내 눈에만 새로운 문이 보였다. 의미 없이 마우스를 클릭 해대며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한 채, 문 너머를 상상했다. 그곳엔 유럽 특유의 느슨한 문화가,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이, 낯선 언어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남편이 합격하면 즐거울 줄만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납덩이를 달아놓은 것처럼 마음이 점점 가라앉았다. 당장 퇴사하고 뭘 해야 할지 계획이 없어서일까. 요즘 퇴사하는 사람들은 다 계획이 있던데, 내겐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고 대기업에서 일하면
인생이 편해진다면서요.
정말?
퇴사를 떠올리면 머릿속이 어수선해졌다. 대학 졸업장, 회사 경력도 버려야 한다니. 어떤 일부터 시작해야 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매몰 비용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에겐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이 아까웠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고 대기업에서 일하면 인생이 편해진다’는 어른들의 말은 내 세계의 전제였다.
교복을 입던 시절, 좋아하던 게임에 눈독 들이지 않고, 눈이 감겨오는 밤에도 책상에 앉아 문제를 풀던 날의 보상은 달콤한 택배 상자로 돌아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현관문 앞에 택배가 놓여 있었다. 박스테이프를 떼고 상자를 열어젖히면 SNS에서 멋져 보이던 귀걸이나 새로 나온 신발이 들어있었다. 사면 살수록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의 소비패턴은 어른들이 만든 전제가 틀렸음을 증명하는 신호이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건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기 위한 의식이었다.
퇴사를 망설였던 또 다른 이유는 ‘한국’에서 ‘대기업’에 다니며 누리는 혜택을 포기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충분한 월급에 매년 챙겨주는 성과급, 결과가 두려운 건강검진, 은근히 쏠쏠한 복지 포인트, 놓치기엔 아쉬운 호텔/항공권 할인, 경조사비 지원. 게다가 누가 직업을 물어볼 때 은근슬쩍 회사 이름을 얘기할 수 있는 자질구레한 것까지도.
게다가 운이 좋게도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고 있었다. 적당한 업무량 덕분에 입사한 지 3년이 넘어갈 때쯤 요령 피우는 법을 터득했다. 몸은 편안했으나 남몰래 부끄러워졌다. 일의 완성도가 낮을 때, 회의 중에 하고 싶은 말을 삼킬 때, 주말까지 일하는 동기가 먼저 승진한 게 부러울 때마다 마음속이 벌게졌다. 낮에 느끼는 부끄러움은 저녁이 있는 삶의 비용이었다.
부모님도 마음에 걸렸다. 두 자식을 뒷바라지하느라 이제는 늙어버린 그들에게 ‘남편 따라서 해외로 홀랑 떠날 거야. 나 보려면 10시간 넘게 비행기 타고 와야 돼.’라고 말해야 한다. 가슴팍에 달려있던 ‘딸내미 대기업 보낸 부모’라는 보이지 않는 훈장도 내 손으로 뜯어내야 한다. 내 말을 들은 후 표정은 어떨까. 엄마를 더 울게 하는 건 아닐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 와중에 남편이 합격한 회사에서 면접을 제안했다. 해외 채용을 할 때는 회사 쪽에서 비자 신청을 위해 함께 오는 가족이 있는지 물어본다. 이때 남편이 아내도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엔지니어라고 말해버린 것이다. 내가 지원했다면 서류 통과도 못했을 텐데. 계획도 없는 내게 튼튼한 동아줄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만 같았다. 과연 이직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