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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론 Nov 10. 2021

1-2. 깊은 잠

"지금 당장 수술에 들어가야 하는 위중한 상태구요. 수술이 끝나고 나서도 환자 상태는 시시각각 변화하게 돼서 경과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평소 고혈압약도 복용하고 있고, 술도 매일 마신다고 하ㅅ..."


뒤에 설명은 들리지도 않는다. 죽어가는 환자를 위해 작성해야 하는 서류는 뭐가 이리 많은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싸인을 마무리했다. 뇌 CT를 끝내고 곧이어 차갑고 딱딱한 침대에 뉘어서 수술실로 이동하는 모습에서 차마 눈을 뗄 수가 없다. 어쩌면 며칠 전 통화한 목소리가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생각에 가슴이 찢어진다.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일어난 걸까. 수술실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며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여기저기 연락을 하고 있다.


"회사 걱정 말고 아버지 잘 모시다가 와.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간결한 위로를 받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꿈일 거라 믿고 싶어 오늘 일어난 일을 처음부터 곱씹어본다.

 

6AM

'띠리링'

평소보다 일찍 알람이 울리며 짜증이 났다. 알람을 끄려고 보니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이 새벽에 개념 없이 누가 전화했는지 궁금했다.


"김길동 씨 아드님 번호로 저장되어 있는 것 같던데 혹시 맞으신가요?"


아버지 이름이 다짜고짜 먼저 들리는 이상한 상황이다.


"119에서 연락드렸습니다. 아버님이랑 같이 일하시는 분께서 연락이 계속 안 되신다고 아버님 댁에 찾아갔었는데, 쓰러진 채로 발견이 돼서 병원으로 이송되셨고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로 전화드렸습니다."

"아버지 가요? 어쩌다가요? 크게 다쳤나요?"

"자세한 상황은 저희도 아직 파악 중이고, 집에서 무슨 작업을 하셨던 것 같은데 머리를 다치셨어요. 의식이 없는 채로 발견이 되셔서 병원으로 이송됐고요. 자세한 경과는 병원으로 내원해서 설명 들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순간 벙쪘다.

정신 차릴 기세도 없이 모자만 대충 눌러쓰고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와중에도 내 시선은 전방이지만 신경은 온통 아버지 상태에만 쏠려있다. 얼마나 다쳤는지, 왜 다쳤는지도 모른 채. 이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노력해보지도 못한 채. 오로지 통보를 받아들이러 병원으로 향했다.


이게 끝이다. 고작 오늘 하루라곤 두어 시간 흐른 지금이 끝인 거다.

내가 잠을 자는 동안,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 누워 있었을 아버지를 상상하고 있는 지금이 오늘 하루다. 구급대원 전화를 짜증으로 받아칠 뻔한. 며칠 동안 통화는커녕 관심조차 없었던. 휴대폰에 저장된 가족이라곤 아들 하나 겨우 저장되어 있는데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병원에 온 것. 동의서에 서명한 것.

이게 끝이다. 끝없는 죄책감에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뭐라도 해볼 수 있는 게 있을까 싶어 '뇌출혈'을 검색해보았다. 온통 부정적인 내용이 투성이다. 연관검색어를 따라 내 의식의 흐름이 흘러갔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고 의식불명과 장애라는 말만 가득하다. 결국 여생은 내가 예상하는 삶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뇌출혈 의식불명' ,'뇌사', '연명의료중단'


흐름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길동 님 보호자분, 수술은 끝났고 곧 환자분 중환자실로 이동하실 거예요"

얼핏 봐도 넷은 되는 의료진이 아까 실려 들어갔던 아버지를 데리고 나왔다. 얼마 만에 만나는 아버지의 모습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람인지 기계인지 얼굴과 머리에는 알 수 없는 호스가 잔뜩 꽂혀있다. 내가 아는 아버지의 모습은 이렇지 않은데. 몇 초의 짧은 순간이 끝나고 아버지는 다시 중환자실로 들어가 버렸다.


"보호자분, 일단 환자분이 사고 난 뒤 발견된 시간이 오래돼서 병원에 도착했을 때부터 굉장히 위중했어요. 구명 수술이라고 해서 환자분의 목숨을 우선적으로 살려내야 되는 수술이었고요.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하는데 치료 과정에서 언제든지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상태에 따라서 추가적 수술이 필요할 수 있어요."


"그럼 지금이 의식불명 상태인 것인가요?"

"아직 재우는 약물을 투여하면서 인공호흡기 치료를 지속할 예정입니다만, 이전처럼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이 낮은 편입니다."

"제가 잘 몰라서 뇌출혈을 검색해보니까 뇌사라고 뜨던데, 이게 뇌사상태라는 건가요?"

"뇌사는 아니구요, 경과를 봐야 알겠지만 쉽게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설명드리자면 깊은 잠에 빠져서 살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내가 예상하는 삶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에 대한 힌트인 걸까. 아버지를 담당하시는 주치의에게 직접 들으니 더 와닿는다. 깊은 잠에 빠져 살게 될 아버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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