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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론 Nov 10. 2021

1-4. 데자뷰

겨우 든 잠을 신경질적이게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엊그제처럼.


"병원입니다. 지금 환자분 상태가 좋지 않은 상태여서 담당 과장님이 면담을 좀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셔서..."


부랴부랴 옷을 주워 입고 급하게 밖으로 나왔다. 뭔가 그저께보다 더 습하고, 싸늘한 날씨다. 겉옷을 챙겨 입을 정신도 없이 아무 티셔츠나 주워 입고 나와서 그런가 보다.

택시에서 내려 도착한 병원은 여전히 고요하고 긴장감이 흐른다.

중환자실에 도착해 벨을 누르고, 의사 선생님이 나오셨다.


"지혈제를 쓰면서 피검사도 지속하고 있고, 씨티로도 관찰을 계속하고 있습니다만, 출혈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어 수혈을 하면서 버텨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환자분 컨디션이 전반적으로 나빠지시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는데요. 콩팥 기능이라던지, 뇌부종..."

"이제 돌아가시는 건가요"

"단언할 수는 없으나 생각을 하고 계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오래 버티신 거겠죠. 혹시 그 연명치료중단인가 그거 할 수 있나요?"

"흠, 가족분들끼리 충분한 상의가 필요한데 괜찮으시겠어요?"

"가족이 저뿐인데요. 형제도 없고, 아버지 부모님도 다 돌아가셨고, 자식도 저뿐이에요."


나는 누가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이렇게 보호자를 해본 적도, 의사와 대화를 해본 적도, 연명치료중단이라는 단어를 써본 적도 없다. 어쩌다 보니 이런 선택을 하게 되는 상황을 마주한 것뿐이다. 마치 결말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이미 시뮬레이션을 마치고 얘기하는 것 같다. 사실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시뮬레이션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침까지 병원 로비에 앉아서 멍 때렸다. 오늘은 별 생각이 안 나더라. 9시쯤 되니 연명의료 담당자와 몇 가지 절차를 진행했고, 다시 중환자실의 벨을 눌렀다. 비닐우비 같은 것을 입었고 알 수 없는 기계와 알람 소리와 소독약 냄새로 가득한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다 똑같은 옷에 멀쩡한 사람이라곤 하나 없는 침대가 수십 개가 정렬되어있어 간호사 도움 없이는 아버지를 찾을 수 없겠더라.


아버지의 자리는 결코 평온하지 않았을 것 같은 흔적이 여기저기 많이 보였다. 간간이 전화로 튜브를 꽂는다고 연락 왔던 게 이런 거였다니 미안한 마음도 든다. 이제라도 저 얇상하고 삐쩍 마른 몸에 뭐를 더 안 집어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위안 삼았다.

그래도 아직 아버지의 손은 따뜻했고, 추워 보여 이불이라도 덮어드렸다.



나도 기진맥진했는지 면회를 마치고 집에 오니 잠이 쏟아진다.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 그럼 조금 더 편하게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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