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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론 Nov 11. 2021

2. 이별 노래

할아버지의 임종만을 기다리고 있다. 한참 상태가 안 좋으셔서 의사 선생님과 면담할 때는 금방이라도 돌아가실 것만 같았는데, 엄마와 이모들이 겨우 마음을 비우고 더 이상 힘들게 하는 치료를 그만하자고 결정한 지 꼬박 4일째가 되어도 할아버지는 버티고 계셨다.


"무슨 미련이 남으셔서 눈을 못 감으시는 걸까"

"우리가 아버지 속을 많이 썩였나 봐... 남아있을 우리가 걱정되셔서 그런 게 아닐까?"


일 년에 두어 번 얼굴 볼까 말까 했던 이모, 삼촌들이 근 일주일째 매일 모여 매일 걱정스러운 얘기를 나눈다. 연명치료 중단을 힘겹게 결정했는데 오히려 버틸 수 있었던 상황을 막아버린 게 아닌지 또다시 후회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할머니의 한마디가 분위기를 깼다.


"망할 하르방, 평생 고생시키고 뒤질 때도 다 걱정시키고. 내가 죽어서 꼭 갚아주든지 해야지 원"

"엄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저 양반, 분명 죽기 전에 아쉬운 것이 있어서 그랴! 내가 알아. 저 고집 때문에 내가 평생을 고생했는디. 그거 못 찾으면 아마 안 뒤지고 눈도 뜰겨."

"좋아하시는 음식도 못 드리고 하는데 그럼 뭘 어떡해... 담배도 못 태우고... 면회할 때 좋은 말이라도 열심히 해드리고는 있어요..."

"내가 담에 가서 시원하게 욕이나 해쌉주"


평소에는 조용하시던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입원하시고부터 내가 알던 할머니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말씀이 많아지셨다. 얼굴을 보고 싶지 않으시다며 면회도 아직 한 번도 안 가셨는데 내일은 동행하시겠다고 한다.


다음날. 할머니 목소리를 들으면 이제 편히 가실 것 같은 생각에 온 식구들이 면회를 갔다. 나는 거동이 불편하신 몸을 부축하고, 이모와 엄마 이렇게 넷이 먼저 들어갔다.


"망할 할방아, 시퍼런 총각 때부터 고생시키더니 뭐가 아쉬워서, 응? 뭐가 아쉬워서어... 얼굴... 보는 것도... (흑..흑...)"


할머니는 차마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할아버지 손을 얼굴에 비비며 울고 계신다. 모두들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제 곧 면회 마칠게요. 마무리해주세요."

"할머니, 이제 면회 시간 끝났대요."

"오늘은 꼭 가슈. 힘들게 그만하고 가슈."


할아버지 손을 겨우 놓고서야 면회가 끝났다.

오늘도 휴대전화를 가운데 놓고 둘러앉아 할아버지 소식이 오기를 기다린다. 기다림이 이렇게 지친 일인 줄은 처음 알았다. 식구들 모두 멍하니 초점 없는 표정이다. 힘 빠지고 쉰 목소리로 엄마가 말을 꺼낸다.


"내일은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노래라도 들려드려야겠어. 아버지 휴대폰에 매일 틀어서 들으시는 노래 있을 거야. 충전시켜서 내일 가져가자."


오늘도 휴대전화에는 소식 없이 지나갔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후회는 더 커져만 가고, 지금이라도 무를 수 있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다들 지칠 대로 지쳐있고, 말수는 점점 줄어든다. 힘없이 다음날도 할아버지 휴대폰을 챙겨서 병원으로 향했다.


"면회 시작하겠습니다"


어제처럼 넷이 먼저 들어갔다. 미리 할아버지 휴대전화에서 노래를 찾아놓고 틀 준비를 해놓았다. 시야에서 제일 먼저 보인 간호사 선생님을 붙잡아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면회할 때 노래 틀어도 괜찮나요?"

"너무 소리가 크지 않으면 괜찮아요"


휴대전화를 할아버지 귀 옆에 놓고 노래를 틀었다. 내가 알만큼 유명한 노래 같진 않았다. 가사도, 멜로디도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엄숙한 면회에 맞지 않게 신나는 노래였던 건 분명했다. 그리고 뚜렷한 '남진' 목소리인 것도 알아챘다. 1절 정도 끝나고 후렴구가 나올 때 즈음이었다.


"어... 보호자분들 잠시만요. 심박수가 조금씩 늘어지고 있는 것 같네요."

"네?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사실 임종을 며칠째 기다려왔지만, 막상 눈앞에서 마주하는 할아버지와의 이별은 모두들 예상치 못했다는 눈치다.

상황 파악 3초, 늘어지는 심박수를 보는 것 3초, 당황스러움 3초.

그리고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오열하기 시작했다. 말 한마디 꺼낼 수 없을 만큼. 심박수가 표시된 큰 모니터에서 숫자가 점점 줄어들었고 머지않아 0이 빨갛게 깜빡였다.


조용히 의사 선생님이 커튼을 걷고 공호흡기를 떼어내고 청진기를 갖다 댄다.


"김기삼 님 10월 8일 12시 40분으로 사망하셨습니다"


노래가 채 끝나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할아버지는 떠나셨다. 여전히 신나는 노래가 중환자실 안을 가득 채웠고, 커튼 너머 다른 환자의 보호자들도, 할아버지를 담당하는 간호사 선생님도, 내 앞에 계신 의사 선생님도 눈시울이 붉어보였다.

면회시간이 끝나가도록 우리는 할아버지를 놓지 못했고, 겨우 진정되신 할머니는 할아버지께 인사를 하셨다.


"사는 동안 고생해수다. 올라가서 그동안 못 누린 거 다 누리고, 편안하게 지내고 있읍서. 우리 애기들 걱정 없게 내가 잘 보살피다가 가겠수다. 적당히 때 되믄 나도 옆으로 가크매 무서워하지말고 편안하게 있읍서"


식구들 모두 인사를 남기고 편하게 올라가실 수 있게 임종 절차를 위해 중환자실 밖으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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