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남성 동성애 문화의 기원에 대하여
들어가며
지난 학기, 동아시아의 문학작품을 장르별로 감상하고 이에 담긴 각 국의 문화에 대해 탐구해보는 강의를 수강했었다. 이때 나의 흥미를 자극한 것은 일본의 괴담이었다. 보통 괴담 속에는 그것이 창작된 국가와 시대의 사건, 의식,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하여 중국과 한국의 괴담에는 유교의 위세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는데, 불교의 융성으로 인해 유교의 영향에서 비교적 벗어나 있었던 일본의 괴담은 여러모로 색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중 유달리 나의 관심을 끄는 제재가 있었는데, 바로 ‘남색’, 즉 남성 간의 동성애이다. 유교에서 동성애는, 인간의 기본 덕목을 지켜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서삼경의 대목을 통해 음양의 조화를 깨뜨리는 행위로 간주되었으며, 간접적으로 부정당했다. 반면, 불교에서는 이성애와 동성애를 문제 삼기보다 ‘성’ 그 자체와 독신 수행 간의 선택을 문제 삼았기에, 동성애 자체에 대한 부정은 없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만일 동성애를 문제 삼는다면, 그것은 계율로 금지된 성행위를 즐겼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문제였다.(다만, 불교 전통 안에서 많은 다양성이 존재했던 만큼, 동성애에 관한 태도도 국가 별로, 혹은 국가 내의 다양한 분파별로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인도 불교의 경우 동성애를 직접적으로 반대하기도 하였다.) 이와 결을 같이하는 일본의 불교는 대체로 동성애의 관습에 대해 관대했고 심지어 이를 권장하고 확산시킨, 남색(男色)의 금자탑과도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화적 요인 탓에 『요재지이』를 저술한 중국의 포송령이 남색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보인 것과 달리,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이하라 사이카쿠의 괴담에는 남성 간의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가 미화된 형태로 자주 등장하고, 이를 이성애보다 더욱 칭송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하여 이 글에서는 일본 전통사회의 문화적 단면을 파악하는 데에 있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남성 간의 동성애, 즉 ‘남색’이라는 제재를 중심으로 이것이 어떻게 일본에 정착하게 되었는지를 간략히 알아본 뒤, 남색이 가장 성행한 에도시대에 창작된 괴담에서, 남색의 양상이 어떻게 드러나 있는지 살펴보며 일본의 괴담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일본의 남색 문화에 대해 밝혀보도록 한다.
일본에서 성행한 남색의 기원과 의미
일본의 남색 풍속은 헤이안 시대 중기 무렵부터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때,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것이 바로 불교 사원의 영향이다. 불교가 전파되기 전부터 일본 사회에 남색이 존재하고는 있었지만, 이것이 명료하게 관념과 습속의 형태를 갖추어 유행한 것은 불교가 전래된 이후였다. 본질적으로 불교에서는 성행위를 금하였고, 여성의 존재를 원죄(原罪)라 하였기 때문에 승려들은 여성과의 성교를 범죄로 간주했다. 이러한 이유로 승려들에게 여색이 금지되었는데, 이때 이들의 성욕을 해결하는 대상으로 꼽힌 것이 불교 사원에서 일하던 반속반승의 소년들, ‘갓시키(喝食)’(승려들에게 큰 목소리로 식사 때임을 알렸기 때문에 갓시키(喝은 외치다, 꾸짖다라는 뜻)라는 명칭이 붙여졌다고 한다. 사원에서 급식 담당으로 일하거나 혹은 손님을 모아 기부를 받는 것이 갓시키의 본래 역할이었다.)였다. 그리하여 사원에서는 승려들을 위해 갓시키로 일할 소년을 사들이는 등 남색 행위를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해, 일본의 불교는 승려들의 남색에 대해 매우 관대했던 것이다.
이렇게 승려들 사이에서 성행하기 시작한 남색은 헤이안 시대 이후 귀족계급으로 향유계층이 확대되었고, 무사가 권력을 잡자 무가 사회에도 퍼졌으며, 에도시대에 이르러 ‘슈도(衆道)’라는 형태로 양식화하였다. 또한, 서민층의 경제력이 향상되고 조닌 계층이 형성되면서, 이들의 사회에도 남색 풍속이 스며들었다. 이처럼 여러 계층에서 성행한 남색은 매색(賣色) 문화의 번영기였던 에도시대에 남창 유곽의 흥행과 남색 매춘으로 이어지며 더욱 활발해졌고, 이러한 풍경이 가부키, 소설 등의 예능에도 스며들게 되었다.
남색 풍속을 바라보는 일본의 시선은 놀라울 정도로 관대했다. 근대화 전까지, 이 남색은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어엿한 쾌락의 한 분야로 인정받았다. 이러한 모습은 일본 사회가 성적으로 어느 정도 개방되어 있었는지를 가늠하게 해주기도 한다.
텍스트에 드러난 남색의 양상 – ‘소년애’와 ‘슈도(衆道)’
일본 남색의 특징 중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이것이 언제나 성인 남성과 미소년 간의 관계, 즉 ‘소년애’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남색의 가장 초기 형태인 승려와 갓시키 간의 관계가 계승된 것으로 이해되기도, 고대 일본에 만연했던 소년 신앙의 영향이라 이해되기도 한다. 이러한 ‘소년애’의 양상은 이하라 사이카쿠가 창작한 『남색 대감』의 「우산을 써도 비 맞는 몸」에서 잘 나타나 있다. 작중 호리코시 사콘이라는 무사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열두세 살 정도의 미소년을 주군에게 소개하여 그의 애인이 되도록 돕는다. 이때 주군 앞에 선 소년의 외양을 묘사할 때 강인한 남성의 면모를 부각하기보다는 검은 머리카락, 연꽃 같은 눈가, 휘파람새 같은 목소리 등 소년이 지닌 아름다운 부분을 부각해 시적으로 표현한다. 이는 당시 일본 사회가 어린 소년을 향해 갖고 있던 성애적 시선을 잘 나타내고 있는 대목이다. 이 괴담은 ‘외눈박이 스님’과 ‘늙은 너구리’의 등장으로 괴기한 분위기를 연출해내기도 하지만, 이는 주군이 소년을 더욱 총애하게 되는 장치에 불과했다. 주된 내용은 주군의 사랑을 받던 소년이 다른 청년과 사랑을 나누고, 이를 알게 된 주군이 분노하여 소년의 양손을 자른 뒤 죽이자 소년과 사랑을 나눈 청년이 할복하여 따라 죽고 마는, 남성 간의 사랑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여주는 것은 마찬가지로 이하라 사이카쿠의 「안마를 시키는 귀신의 집」이다. 이 작품 역시 열일곱 살 미소년과 오쿠에몬이라는 무사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서는 미소년을 향한 성애적 시선과 남색의 모습뿐만 아니라, “남성 간의 사랑의 굳은 의지라는 것은 여성과의 교제와는 전연 다른 특별한 것이었다” 라며 동성애를 칭송하는 경향도 포착된다. 또, 무사와 미소년의 관계가 사제 관계였고, 작품의 마지막에서 “남색의 정, 무도의 훌륭함, 인간의 귀감이라며 소문이 자자했다.”, “이는 무사의 본래 모습으로서 모두 이와 같이 되었으면 한다”라며 사제 간의 남색을 본받아야 할 모습으로 칭송하며 마무리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 작품이 ‘슈도(衆道)’(‘와카슈의 도(若衆道)’를 단축한 말. ‘와카슈’란 관례하기 전의 젊은 남성, 즉 소년을 의미한다. 이 ‘슈도’는 무가 사회의 남색을 의미하기도 한다.)를 매우 잘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중 오쿠에몬과 남색 관계에 있는 소년, 효노스케는 오쿠에몬 가문의 적인 우에몬 앞에서 자신을 ‘오쿠에몬의 남동생’이라 소개한다. 또, 오쿠에몬의 복수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우에몬과 대적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슈도’의 이상적인 모습을 매우 잘 드러낸 대목이다.
에도시대의 남색은 와카슈를 대상으로 한 남색, 즉 ‘슈도’였는데, 이는 단순한 성적, ‘소년애’적 관계를 넘어 무사 계급 내의 봉건적인 책임과 의무를 함께 하고 정신적으로 서로를 고양하는 관계였다. 그리하여 이것은 정신적 가치가 부여된 이상적인 남색 관계로 칭송받게 되었다. 이 작품 역시 초반부에 ‘귀신의 집’, ‘여덟 개의 뿌리가 달린 소의 모습을 한 것’ 등이 등장하여 기괴한 분위기와 공포스러운 상황을 연출하지만, 이는 오쿠에몬이 ‘훌륭한 용자’임을 인정받고 신망과 직책을 얻게 되는 장치로 작용한 후 그 효용을 다 한다. 이후의 내용은 오쿠에몬과 효노스케 사이의 슈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나가며
개인적으로 일본 문화 저변에 깔린 호색함은 이미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일본 역사에서 동성애가 흔한 소재였고, 이것을 성행하게 만든 것이 불교와 승려들의 남색 풍속이었다는 사실이 다른 무엇보다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기에 이 소재가 나의 흥미를 자극한 듯싶다. 또, 특정 괴담에서 귀신보다 남색이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하며 내용 전개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 인상 깊게 느껴진 탓도 있었기에 타국의 문학에 관심이 있는 다른 사람들도 흥미롭게 읽어보길 바라며 글을 작성해보았다. 최대한 사실에 기반해 작성하려 노력했으나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가볍게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 :)
윤유숙, "전근대(前近代) 일본사회 남색(男色) 풍속의 역사에 관하여", 『외국학연구』, 제37호 (2016),
393-421
이지형, "일본문학 : 일본 LGBT문학 시론-남성 동성애문학을 중심으로", 『일본연구』, 제21집 (2014),
101-122.
허남결, “동성애에 대한 불교의 관점-역사적 사례와 잠정적 결론”, 『불교평론』, 제34호, 2008년 3월 24일.